[한성규의 하좀하]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30년 넘게 살아온 내가 순식간에 돈 안 되는 놈이 된지 8개월 정도 지났다. 나도 한때는 돈 되는 놈 축에 속했다. 그것도 돈이 꽤 되는 놈이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도 시험까지 치고 들어가 월급 받으며 공군장교로 제대를 했다. 제대 후 남들이 해외취업을 꿈꾸거나 공무원 시험 준비에 바쁘기에 나는 압도적으로 잘나 보이고 싶어서 외국의 공무원 시험을 쳐서 뉴질랜드 국세청에 입부를 했다.

외국 공무원이 되면 일과생활의 밸런스 위에 안정적이라는 공무원의 장점까지 더해져서 마냥 행복해질 줄만 알았다. 다 때려치우고 온 지금까지도 도대체 어떤 일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무슨 애널리스트라는 직급까지 올라가서 입부 5년차에 내 연봉은 7만 달러 근처를 찍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내 자랑을 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안심하셔도 된다. 나도 여러분처럼 한국 사람이고, 백수다. 4개 국어를 거의 모국어처럼 하지만, 취직? 안 된다.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나도 항상 돈 되는 일만 하고 다닌 건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작년 8월부터 장기휴직을 하고 제일 돈이 안 된다는 직업 중 하나인 글쓰기를 하고 있다. 예술을 한답시고 그림을 그리면 디자인 일감이라도 떨어지지, 이 글쓰기라는 게 누가 잡일도 주지 않을뿐더러 글을 쓴다고 말하면 자기네들도 글을 쓴단다, 인터넷 댓글.

©픽사베이

어머니는 내가 눈에 띄기만 하면 묻는다. “이제 뭐 할 거냐?” 내가 글을 쓴다고 하자, “그래 글은 쓰고, 이제부터 뭐할 건데”라신다. “그러니까 글 쓸 거라니까요”하면 다시, “그래. 글은 많이 쓰고,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도대체 뭐할 건 데!”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더 이상 대답할 말이 없다. 다른 일 안 하고 글을 쓸 거니까.

8개월 동안 참고 지켜보던 아버지도 어느 날 신문 기사 한쪽을 깔끔하게 오려 와서 건네주고는 화장실 쪽으로 총총총 사라졌다. 그 기사에는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었다. 첫째, 부모를 잘 만나면 된다, 그게 아니면 하는 일마다 대박을 터트리면 된다, 보통은 이도 저도 아니니 남들보다 더 성실히 사는 방법밖에 없다. 내가 그 짧은 기사를 다 읽었을 즈음 아버지께서는 천천히 다시 나타났다. 자기가 돈이 많지 않고 당신이 보기에 나는 사업한다고 까불다가 대박은커녕 쪽박을 차지만 않으면 다행인 스타일이니 성실히 살라는 말씀같다.

나는 내가 충분히 성실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노는 것 같이 보여도... 오늘도 남들이 아직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을 무렵인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글을 썼다. 또 화요일에는 인문학 수업을 듣고 수요일에는 연극 연습에 나갔다. 목요일에는 합창을 할까 생각 중이며 토요일에는 글쓰기 수업에 나간다. 목공예와 도자기도 배워볼 생각이다. 어차피 다 돈은 안 되는 짓이니까 열심히 하든, 빈둥거리든 다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쓸데없는 일인 거 같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인터넷신문기자 생활을 2년이나 했다. 일본에 특파원 생활도 1년하고 종이 신문에도 이름 석 자도 나오고 라디오 방송 출연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공중파 방송을 타자 그 라디오를 들으신 아버지는 갑자기 내가 하는 말을 맹신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이 그랬는데 말이야, 일본까지 가서 신문기자 하는 우리 아들 말이라니까 하시며 큰소리를 치고 다녔다. 그러자 사람들은 지금은 고인이 된 대통령 탄핵사건의 향방이나 정치인의 당락여부, 어느 곳의 땅값이 오를지 등등,  심지어 축구경기에서 어느 팀이 이길지조차 내게 묻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는 한때는 말도 돈 되는 소리만 했다.

휴직을 하고 고향에 내려와서 동네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하자 동네 어른들은 나만 만나면 취직이 되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라는 소리를 한다. 내가 다 들으라고 큰소리로 외국에서 무신, 에널리스트 한다고 지랄 떨더니만 쯧쯧쯧, 이란다. 한 번은 너무 화가 나서 말 귀가 통할 것 같은 이장님을 붙잡고 AI의 발전이니, 4차 산업혁명이니, 지식이나 창조적인 직업 외에는 전부다 로봇의 차지가 되기 때문에 연극이나 글쓰기 같은 창조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하자 이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돈 안 되는 소리.”

한때 황금 냄새가 솔솔 날 것 같던, 마을 제일의 돈 되는 입을 달고 다니던 나는 이제 돈 안 되는 소리만 지껄이는 동네 꼴통청년이 되어버렸다. 그 와중에 돈 되는 짓만 한다는 금전의 신, 전직 대통령이 잡혀 들어갔다. 돈 되는 짓만 하는 것도 꼭 좋은 일만은 아닌 모양이다. 돈 되는 짓만 하고 최고의 출셋길을 달리던 사람도 감옥에 가는 형편이니 좋아하는 일만 하는 나 같은 꼴통에게도 면죄부가 주어지지 않을까? 이제 당당하게 말하고 다니련다. 논다고. 놀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 열심히 한다고. 돈이 된다는 명목으로 남 피해주는 짓거리 같은 건 하지 않고 논다고.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작은 선택들이 모여서 한 사람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 돈이 되냐 안 되냐의 기준에서 보면 나는 지금 엄청나게 나쁜 결정들을 해나가고 있는 셈이고, 작년에 잘나가던 외국의 직장을 박차고 나오기 전까지는 좋은 결정만을 한 셈이다. 하지만 인생의 기준을 바꾸어보면 그 판단 결과는 반대가 된다. 돈이 되냐 안 되냐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의 기준을 들이대서 선택을 할 생각이다. 어차피 내 인생을 사는 것은 남이 아닌 나이니까. 이 새로운 기준에서 보면 나는 매일매일 좋은 결정을 하는 셈이다.

당신에게 묻겠다. 언제 마지막으로 열심히 놀아봤냐고. 유치원을 졸업한 이후로.

전 국민 하좀하<하고 싶은 일 좀 하자의 약칭>연대 대표 백수 한성규

한성규

현 뉴질랜드 국세청 Community Compliance Officer 휴직 후 세계여행 중. 전 뉴질랜드 국세청 Training Analyst 근무. 2012년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수상 후 작가가 된 줄 착각했으나 작가로서의 수입이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음. 글 쓰는 삶을 위해서 계속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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