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주의 혜윰 행(旅), 행(動), 행(詩)]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쉬는 시간이 지나 교실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달력에 모여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다. 가뜩이나 기념일이 많은 5월 달력 한 장이 꽉 찼다. 국어 교실이라는 우리의 이름 아래.

‘은실이 생일! 쌤 알죠?♥’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중 2학년 수학여행’
‘1학년 수련회’
‘재형님 탄생일’

피식. 웃음이 났다. ‘나도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을까봐 한 달 전부터 생일을 알리던 그런 학창 시절이 있었지.’

그 때 공부는 안하고 늘 개구쟁이 역할이던 한 녀석이 ‘선생님 생일은 언제예요?’ 한다. 날짜를 말해주니 빨간 펜을 꺼내 달력에 무언가를 적는다.
‘국어 쌤, 생일. 준영 케익.’

감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야야, 내가 이날 케이크 사올 건데, 꽃은 누가 사올래? 아 그래? 그래, 재노 니가 사온나. 그럼 선물은 누가 사올래?”

‘이 녀석들이 아니면 언제 어디서 이런 대단한 챙김을 받아볼까.’

©최미주

몇 주가 지나 가정의 달인 5월과 함께 생일을 맞이했다. 휴대폰이 고장 나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작년부터였다. 생일이 마냥 축하받는 날이라기보다 점점 멀어지는 친구들을 알게 하는 날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건. 수업 준비 하려고 컴퓨터를 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신저도 덩달아서 켰다.

‘국어 쌤, 생신 축하드려요. 어서 휴대폰 고치세요. 전화해서 노래 부르려고 했는데.’
‘친구야, 생일 축하해. 보기 힘들다. 그치? 그래도 12시 땡! 하면 너 챙기는 건 나밖에 없지?’

아직은 존재감 있는 사람이구나 하며 안도감이 들면서도 씁쓸했다. 아무리 스크롤을 내려 봐도 기다리던 친구에게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핸드폰이 꺼져 있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아이들은 자신이 한 말을 잘 잊는다. 아무 생각 없이 교실로 들어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업을 시작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재노와 준영이가 케이크를 들고 들어왔다.

“선생님! 20살처럼 보여서 초는 2개! 잘했죠? 초코 케이크예요! 사온다고 힘들었어요!”
얼마 후 종훈이가 선인장을 낑낑거리며 들고 왔다.

가슴이 뭉클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한 친구에게조차도 연락 한 통 못 받은 슬픈 날인 줄만 알았는데, 안 지 4개월도 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내가 이런 과한 축하를 받다니. 그것도 자신들의 기념일인 ‘어린이날’ 받은 용돈의 힘을 발휘하여.

5교시가 모두 끝나고 집에 도착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컴퓨터를 켜고 메신저로 들어갔다. 역시나 그 친구에겐 연락이 없었다. 그러나 어떤 학생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선생님, 케이크 2학년 애들이 사준 거예요? 저는 3학년이나 돼서 왜 그 생각을 못했죠? 그래도 학원 애들 중에 1등으로 축하 메시지 전해서 기분 좋았는데. 죄송해요.’

연락 한 통 하기 힘들어진 어른들과 연락하고도 케이크를 못 사줘서 마음이 쓰이는 중학생.

“1등! 재형아, 쌤 나이가 되면 있잖아. 못 보던 친구한테 갑자기 연락해서 생일 축하한다다는 말 전하기도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우리 재형이 멋지다. 네가 어른이다. 어른.”

직장인들의 책상에는 대부분 달력이 하나씩 있다. 그것은 대부분 해야 할 일들을 잊지 않기 위한 수단이다. 해야 할 일 챙기기에만 급급해 주변의 소중한 사람과 점점 멀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사람과 사람의 달력이 아닌 일과 일을 위한 기록만 적혀있지는 않은지. 5월의 가정의 달 일정은 어떤 것들로 채워졌는지.

‘나’의 개인 달력에 ‘너’의 기념일을, ‘우리’의 기념일을 적어 두고, 잊지 않고 문자 메시지 한 통 보내는 일이 어려운 듯 하면서도 쉬운 일이라는 것을. 사소한 듯 하면서도 가장 특별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아이들을 보며 깨닫는다. 

최미주

일에 밀려난 너의 감정, 부끄러움에 가린 나의 감정, 평가가 두려운 우리들의 감정.

우리들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감정동산’을 꿈꾸며.

100가지 감정, 100가지 생각을 100가지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쪼꼬미 국어 선생님.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