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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냄새[이명렬의 맹렬시선]
이명렬 | 승인 2018.05.31 15:04

[논객닷컴=이명렬] 매일 지하철 7호선을 타고 한강을 건너 출근한다. 이 시간 지하철에선 매혹적인 향수 냄새, 덜 마른 샴푸 냄새, 달큰한 섬유 유연제 냄새, 매캐한 환풍기 먼지, 누군가의 체취가 뒤섞인 냄새가 난다. 지하철 칸마다 향내와 농도가 다르지만 이를 따질 새 없이 빈 공간이 나면 얼른 올라탄다. 빼곡한 승객들 사이를 비집고 힘겹게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다. 연예계 가십 뉴스를 스크롤하며 훑어보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강 다리를 건너고 있다. 문득 강 냄새가 그리워졌다. 본능적으로 코를 씰룩이며 옛 냄새를 더듬어 본다. 오랜만에 어머니의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를 맡으면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처럼 후각에 남은 기억은 매우 강렬하다. 기생수처럼 들러붙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옆 승객의 찐득한 담배 냄새를 뚫고 비릿한 강 냄새가 스멀스멀 떠올랐다.

©픽사베이

난 매일 강을 보며 자랐다. 낙동강이 지척이고 강 너머 공항에선 비행기가 수시로 착륙하던 마을이었다. 집은 언덕 위에 있었고 집 아래는 공장들이 가득했다. 강변에는 철강 공장, 신발 공장, 가죽 공장들이 몰려있었고, 컨테이너를 실은 트레일러들이 쉴새 없이 오갔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산 중턱 집에 돌아오면, 2층 옥상에 올라 강을 내려다보곤 했다. 강물은 흐르지 않아 고요했고 한 여름에도 꽁꽁 얼어버린 것처럼 잔잔했다. 어렴풋이 보이는 강 하구에는 크레인 달린 둑이 바다로 가는 길을 애써 막아서고 있었다. 사람과 자동차는 자유롭게 둑을 건너 다녔으나, 강은 둑 너머 드넓은 바다로 나아가지 못했다. 강은 바다의 것이 아니었다. 때마다 날아온다는 철새의 것도 아니었다. 강물은 논밭으로, 공장으로, 수도관으로 가야 했다. 강은 오롯이 사람의 것이어야 했다.

한바탕 비가 내리고 난 다음날이면 비릿한 개펄 썩은 내와 독한 약품 냄새가 거리 곳곳에 배어 있었다. 길가 웅덩이에는 무지개 빛 기름이 둥둥 떠있었다. 선생님들은 한사코 창문을 못 열게 했다. 비를 틈 타 주변 공장들이 오폐수를 몰래 내다버려 그런다고 했다. 공기 청정기는커녕 선풍기도 없던 시절이었다. 40명이 넘는 학생들이 내뿜는 날숨에 교실은 금방 눅눅해졌다. 혈기 넘치는 청춘들은 체육시간만 기다렸다. 곳곳에 물 웅덩이가 고인 운동장에서 공을 던지고 차고 달렸다. 수업이 끝났다는 체육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나면 모두들 수돗가로 달려갔다.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수돗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알싸한 소독 냄새가 목구멍을 타고 가면 온몸이 깨끗해지는 기분이었다.

봄이면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을숙도에 소풍을 가곤 했다. 하구둑을 반쯤 걸어가면 을숙도가 나온다. 교과서 사진과 달리 철새는 눈에 띄지 않고 갈매기만 떼로 날아다녔다. 키를 넘어선 갈대는 울창한 숲을 이루었고 질척한 개펄에선 역한 냄새가 가득했다. 철새가 없어도 철없는 우리는 잘 놀았다. 빈 공터에 둘러 앉아 김밥 먹고 노래하며 술래잡기를 했다. 도망치다 펄을 잘못 밟으면 발이 푹푹 빠지고 시궁창 내가 났다. 소풍이라고 예쁘게 차려 입은 여자아이는 울상이 되었다. 용감한 녀석들은 게를 잡아 사이다 병에 채우고, 잡은 게를 미끼삼아 낚시를 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소풍이 끝나면 온 길을 되돌아 하구둑을 건넜다. 바람 부는 방향에 따라 오른편의 비릿한 바다 냄새와 왼편의 역한 펄 냄새가 밀려왔다. 둑 위로 공사 트럭이라도 지나가면 매캐한 매연 냄새도 따라왔다. 내게 강 냄새는 비릿하고 역하고 강렬했다.

얼마 전 베트남 다낭을 여행 삼아 다녀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낭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 이름도 한강이다. 4월 말과 5월 초는 전승 기념일과 노동절이 겹쳐 주 6일제 근무가 일상인 베트남에선 큰 연휴 기간이었다. 외국인과 현지인들이 모두 강변으로 몰려나와 불꽃 축제를 벌이고, 노점에서 맥주병을 기울였다. 오토바이 매연과 불꽃 화약 냄새가 섞여 왔지만 남국 특유의 강 냄새는 말랑말랑했다. 전쟁의 상흔으로 얽혀있는 인연이건만 베트남 사람들의 웃음은 해맑았고, 강 냄새도 따스했다. 신기루 같은 여행은 금새 끝이 났고 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넜다. 서울에 자리잡은 기간이 10년이 넘어가지만 서울 한강 냄새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한강변 아파트에 사는 것은 아직 머나먼 꿈이고, 주말엔 아이와 함께 한강 시민 공원이나 가야겠다. 기름진 치킨 냄새와 알싸한 맥주 냄새를 가득 안고서. 

이명렬

현 메타비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달거나 짜지 않은 담백한 글을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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