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완의 애, 쎄이!]

[오피니언타임스=우디] 당신은 악의를 갖고 글을 썼어요. 2일 전 어떤 남자가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실제로 실수를 하긴 했다. 남자가 보낸 3줄짜리 메일을 제대로 읽지 않고, 글을 썼다. 마지막 메일이 오기 전, 나는 이미 그에게 2번의 메일을 보냈었고 그 때마다 남자는 입장을 전하지 않을 것이며 법적대응을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남자가 다니는 회사 때문에 불편을 겪은 사람들은 70명이 넘었다. 나는 마지막 3번째 메일을 보냈고 남자는 그제야 답을 했다.

나는 글을 수정하고 남자에게 미숙해서 죄송하고,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스럽다고 문자를 보냈다. 노기가 가득차서 ‘악의’를 여러 번 뱉었던 남자의 목소리를 다시 듣기는 힘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잠이 들었지만 꿈속에서 ‘악의’라는 말이 몇 번이나 들려서 잠을 설쳤다. 고작 단어 하나에 흔들리는 유약한 내 자신이 싫어서 덮고 있던 이불을 펑펑차면서 다시 눈을 감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악의’라는 단어가.

©픽사베이

절대 선과 절대 악을 믿지 않았다. 성선설이나 성악설도 믿지 않았고. 선악의 경계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경계도 없고 착하기만 한 사람도, 악하기만 한 사람도 없었다. 매일 아침 매초 매순간 살아가기 위한 선택을 할 뿐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깨 위에 짐이 가득하고, 소매 끝에서 먼지 냄새가 나는 어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악을 가장하고 살아야한다고 얘기해줬다. 그리고 선을 잃어버려선 안 된다고, 문학과 영화가 얘기해줬다. 학부 시절에 나는 미움 받을 용기에 대해서 생각했다. 누구나 나를 좋아할 것이라고 믿는 오만에 대해서, 살아가면서 타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내 힘에 대해서. 매일이 어려웠다. 어느 날 후배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있겠어요?”라고 물었다. “그렇네...” 그때에 나는 그렇게 답했다. 선도 악도, 주관에 있어서 명확한 결정 없이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건 어렵겠구나, 그런 생각을 조오오오금 오래 했었다.

‘악의’라는 단어를 입 안에서 여러 번 굴려보았다. 내 글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있었다. 남자는 당연히 피해를 입었을 거고, 내 사고를 같이 수습해준 어른들도 시간을 잃었다. 나 하나로 여럿이 골머리를 앓았을 것을 상상하니 무서웠다. 도망치고 싶었다.

펜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던데, 죽이진 않았지만 나 때문에 그들은 펜촉에 살갗이 쓸려 짜증이 났겠구나. 자꾸만 고개가 숙여졌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 글이 없었을 때 짜증이 났을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글이 업이 아니고, 생을 위한 본업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아내에게 선물할 운동화를 구매했는데 아내의 생일이 한참 지나도 배송되지 않는 물건을 속수무책 기다린 남편이나 아이에게 먹인 과일에 방사능 물질이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된 엄마나, 음이온 침대라고 믿고 구매 했는데 되레 병을 얻은 가족들이나. 더 나아가 어느 날 인터넷에서 자신의 나체 사진을 보게 된 여성이나, 회장 사모님에게 어깨를 맞고 도망치다가 머리까지 맞은 어린 사원을. 이 세계에서 각각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내 옆의 존재들을 보았다.

어학, 공부, 대기업 입사에는 재주가 없었고, 돈을 벌라고 하면 돈을 쓰기만 했다. 내가 가진 재주는 잘 노는 것이랑 여행과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 아주 조금 글을 쓸 줄 안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일찍이 나의 게으름을 눈치 채서 네 맘대로 살라고 했다. 큰 돈 벌어오라고 하지 않을테니, 먹고 살라고만 했다. 아주 철없는 나는 다행히 직장인이 되서 죽진 않게 되었다. 그 밥줄이 ‘글’이었고 다행이구나 싶었다.

나의 삶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캡틴 아메리카가 아니다. 타노스가 손가락으로 세계를 없애면 나는 아마 1순위로 사라질 인물일 것이다. 존재감으론 「1987」 속 연희의 친구 정도 일 텐데, 책을 들고 등교하면 똑똑 해보일 것이라면서 실없이 웃는 아이였다.

완벽한사람이나 똑똑한 어른, 능력 있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다. 큰일을 해주실 어른들이나 똑똑한 사람은 아주 많으니, 나는 쌀벌레 직장인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어리고 작은 목소리를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악의적인 글’이라고 욕을 먹어도 사회의 아주 작은 구석에도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계속 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귓가에 ‘악의’라고 소리치던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은 작아졌다. 다음에는 실수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진짜 정말 악의적인 글을 쓰진 말아야지. 그렇게 되뇌니 잠이 왔다. 어깨가 무거웠다. 

 우디

글을 읽고 영화 보고
여행 갈 돈을 차곡차곡 벌고 있는 쌀벌레 직장인
소비자가만드는신문 기자

전직 청년백수 쌀벌레 글쟁이
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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