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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사는 행복[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이호준 | 승인 2018.06.05 10:25

[논객닷컴=이호준] 일찌감치 아침을 차려 먹고 문을 활짝 엽니다. 빗소리가 바람을 타고 우르르 밀려들어옵니다. 산골인데다가 비까지 내리니 살갗에 돌기들이 우수수 일어날 만큼 쌀쌀하지만, 늘 그렇듯 가슴 설레는 아침입니다. 오늘 새벽에도 뻐꾸기 소리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아! 비를 맞으며 울고 있는 존재가 지척에 있다니요. 날마다 제 창을 두드리는 저 녀석은 아직까지도 짝을 찾지 못한 게 틀림없습니다. 얼마나 다급하면 쉬지 않고 여명을 열어젖힐까요.

그 심정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아 고개를 주억거리다, 커피 물을 올립니다. 서울에서는 마시지 않던 커피가 입에 달아 아침마다 하루를 함께 시작합니다. 뻐꾸기 울음 사이로 아래 절의 풍경 소리가 슬그머니 끼어듭니다.

©픽사베이

요즘 산골 마을에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핑계지만, 대작을 쓸 일도 없으니 세상에서 도망쳐왔다는 설명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4년 전 직장을 퇴직하고 시인으로서 여행작가로서 그럴 듯한 포장 속에서 살아왔지만 늘 편하지 않았습니다. 떠들썩한 것이나 화려한 것보다는 조용하고 쓸쓸한 것을 더 좋아하는 성격 때문일 겁니다. 그 성격이 제 생애를 관통하는 통점(痛點)이기도 합니다. 따지고 보면 소망의 유폐기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이곳에 온 뒤 보통은 일찍 아침밥을 지어먹고 산책을 나갑니다. 산책코스는 일정하지 않습니다. 산에 오를 때도 있고 내를 따라 걸을 때도 있습니다. 세상은 그날그날 다른 모습으로 저를 맞이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코스는 마을 외곽을 한 바퀴 빙 도는 것입니다. 좁은 길은 산으로 줄달음치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저수지도 나옵니다. 혼자만의 시간, 걸음걸음 얼마나 행복한지요. 이런 날들이 선물처럼 주어진 제 삶에 감사드리고는 합니다. 물론 이곳에서도 생존 위한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산속이라고 ‘먹고 사는 일’을 외면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당분간은 행복한 일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오늘은 좋아하는 산책을 나갈 수 없습니다. 대신 손님 맞을 준비를 합니다. 이 산속에도 찾아오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엔 여러 사람입니다. ‘위문’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제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들여다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더 클 겁니다. 괜히 마음만 바쁩니다. 도시에서 쫓기며 살 때처럼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우선순위를 헤아리다가 우선 마당의 풀을 뽑기로 했습니다.

이 풀 뽑기야말로 며칠을 고민하던 일입니다. 뜰에 잔디를 심었지만, 살던 이가 몇 년 비워둔 사이 온갖 풀들이 이주해 와서 뿌리를 내리고 주인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마음 약한 잔디는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내주면서 뒤로 물러섭니다. 저러다 결국 쫓겨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잔디도 풀도 그저 생명일 뿐입니다. 인간에게 선택되지 않았다고 뿌리째 뽑혀야하는 법칙은 얼마나 폭력적인지요.

그런 생각은 늘 사람 사는 문제로 확장됩니다. 그동안 사람도 그런 눈으로 본 게 아닐까? 구별의 눈으로 재어 타인을 잡초라고 생각한 적은 없을까? 외모나 키나 겉모습이나 재산으로 평가하고, 그게 그 사람의 전부라고 믿고 있었던 건 아닐까?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터무니없는 잣대를 들이대었던 적은 없을까? 생각은 자꾸자꾸 번져나갑니다.

며칠 고민했습니다. 풀들 스스로의 경쟁, 즉 적자생존에 맡겨버릴까? 그래도 사람 사는 집이라는 흉내를 내려면 조금은 뽑아줘야겠지? 이 두 가지를 놓고 저울질을 했습니다. 그러다 오늘아침 뽑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무릎까지 오는 풀을 그냥 놔두고 손님을 맞이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지요. 게으른 주인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는 알량한 도회지적 자존심도 작용했겠지요. 게다가 풀은 비가 내린 뒤 뽑는 게 가장 좋습니다. 호미가 없어도 부드럽게 뽑히거든요.

그것도 일이라고 처음엔 힘이 듭니다. 쪼그리고 앉아서 하나씩 뽑는 일, 평소에 안 쓰던 근육을 써야하고, 평소에 접어뒀던 육체적 인내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만 둘까? 생각하다가 마음을 바꿔먹습니다. ‘풀 하나 뽑을 때마다 지고 다니는 번뇌가 하나씩 지워진다고 생각하자.’ 그러고 나니 일에 제법 속도가 붙고 지루하다는 생각도 엷어집니다.

어떤 풀은 뿌리로 흙을 그러쥔 채 강하게 저항하고, 어떤 풀은 바람에 눕기라도 하듯 쑥쑥 뽑혀 나옵니다. 구석에 있는 쑥을 뽑다가 가슴 짠한 장면도 목격합니다. 그 쑥은 뿌리를 내린 곳에서 도저히 생존하기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뿌리를 뻗고 뻗어 한참 멀리 나가 있습니다. 그 뿌리가 얼마나 긴지 올라온 쑥의 수십 배는 되어 보입니다. 고작 풀잎 몇 개를 피우기 위해 이런 대장정을 감수하다니. 우리네 어머니들이 우리를 키우기 위해 그런 고단을 감내하셨지요.

어떤 풀은 아무리 힘을 줘도 중간에 뚝뚝 끊어질 뿐 뿌리는 내주지 않습니다. 고집머리 하고는…. 타협에 인색했던 제 지난날을 보는 것 같아서 괜스레 얼굴을 붉히기도 합니다. ‘잡초’나 ‘풀’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묶어두기에는 개성들이 너무 강합니다. 무엇 하나 우연히 오는 생명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이제 조금 건성건성 뽑습니다. 뽑는 게 아니라 긴 것만 뜯는 셈입니다. 며칠 뒤 다시 손님이 오고, 내가 다시 노역을 하더라도 뿌리째 없애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두어 시간 집중적으로 풀을 뽑으니 뜰 전체가 어느 정도 정리된 느낌이 듭니다. 뿌리를 살려뒀으니 좀 거칠어 보이긴 하지만, 이 집에 머무는 사람으로 체면치레는 한 셈입니다. 그것도 일이라고 손톱 밑이 까맣게 변했습니다. 하지만 몸은 훨씬 가벼워져 있습니다. 마음도 그렇습니다. 저도 모르게 짐 하나를 또 내려놓은 셈입니다. 산에서 맞이하는 행복이 스멀스멀 온몸을 감쌉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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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sagang58@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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