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관의 모다깃비감성]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친구들 중 유별난 둘이 있다. 실명을 밝히긴 어려우니 민우와 경재라고 해두자. 민우는 낯빛이 어둡다. 축 쳐져있는 어깨와 눈가가 딱 봐도 슬픈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생김새다. 살짝 뺀질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채도가 없는 유행 지난 옷을 자주 입는데, 어딘가 책상을 가져다주면 엎어져서는 하루 종일 흐느끼며 옷깃을 적실 것만 같다.

그가 매번 하는 말도 부정적이다. “난 끝났어. 난 끝났다고. 이제 죽어야지”를 되풀이했다. 뭐만 했다 하면 그 말을 달고 살았고, 덕분에 필름 끊기는 일이 잦았다. 자기가 기억하기 싫은 것들을 지독하게 기억하거나, 아니면 아주 기억 못하는 축이었다. 한 3년 전 즈음에 좋아하던 여자애에게 차인 사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억했는데,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말들을 쏘아붙여놓고서는 ‘내가 그런 말을 했어?’라고 묻기도 했다.

그와 반대로 경재는 심하게 오버스러웠다. ‘으리으리한 100평짜리 집에 어마어마하게 예쁜 내 아내를 두고 삼시세끼 같이 밥 먹으며 겁나 알콩달콩하게 살거야!’라고 심심하면 말하는 그는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딘가로 가있는, 굉장히 변덕스러운 친구였다. 다만 너무 변덕이 심해서 오래 가지를 못했다. 한번은 기타를 치겠다고 어딘가에서 클래식 기타를 할인해 사놓고서 웬종일 줄을 뚱가당 치고 있으며, 그 다음날에는 셰프가 되겠다면서 두 세 개씩 팬을 태워먹는 식이었다. 화려하게 입고 다니는 걸 즐겨서 잠옷마저도 무지개색이었는데, 과연 그 성질에 잠은 자고 다니는지 싶었다. 가끔씩은 한밤중에 내게 전화를 걸어서 나를 자지도 못하게 만들기도 했다. 진짜 둘 다 때릴 수도 없고.

©픽사베이

그 둘은 서로 친구가 아니었지만, 나는 그들과 친한 친구였다. 그리고 사람 참 간사하다고, 그 둘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해서, 나는 그날 내 기분이 어떤지에 따라 찾아가는 사람을 달리했다.

내 기분이 굉장히 들떠있는 것 같으면 나는 일부러 민우를 찾았다. 민우는 상대방의 기분을 아주 많이 신경써주는 사람이었으니까.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와 자기가 같이 경험했던 즐거운 일들이나, 조금은 괴로웠던 일들을 화제로 꺼내서 나를 차분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주곤 했다. 물론 민우랑 너무 오래 놀다보면 [어린왕자]의 주정뱅이마냥 그의 우울함에 나도 젖어버릴 것만 같아서 적당히 놀다 들어가곤 했다. 그럴 때면 민우는 내 손을 꼭 잡고는 “와줘서 고마워. 또 와. 기다릴게.”라면서 나를 돌려보냈다. 이거 은근히 부담스럽다.

그가 술을 진탕 마시고 생떼를 부릴 때는 한두 달 동안 그를 보지 않곤 했다. 한두 달밖에 되지 않는 이유는 별게 없었다. 민우가 좀 안쓰러웠으니까. 민우는 내가 어느 정도 보지 않는다 싶으면 일부러 내 근처로 찾아와서 기웃거리고는 했다. 그러면 마지못한 척 하면서 만났다.

반대로 우울하면 나는 경재를 찾았는데, 녀석은 나를 만나자마자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기 바빴다. 가끔씩은 왜 사람을 앞에 두고 자기 얘기밖에 안할까 싶어 욱하기도 했지만, 충동으로 휩싸인 녀석의 말 같지도 않은 말은 나를 가끔씩 웃게 만들었다. 게다가 잘 듣다보면 그럴싸하기도 했다. 내가 웃을 때면 경재는 “야, 너도 해봐. 장난아니야”라면서 나를 부추겼다. 언젠가 할게, 라고 말하면서 나는 보통 정중히 거절하는 편이었다. 경재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렇게 생각없는 놈도 잘 사는데 나라고 우울할 이유가 있을까’라면서 위안을 얻는 편이었다.

다만 경재랑도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이 아니었는데, 많이 취한다 싶으면 나를 앉혀두고 자기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차례대로 가져와서 너도 해보라는 식이었다. 거기다 안 그래도 많은 말이 더 많아지고 내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서 목청을 키웠다. 그럴 때면 경재랑도 그 다음날부터 당분간 연락을 하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내가 좀 찾곤 했다. 하이텐션을 만들어주는 데에 그만한 친구가 없으니까.

설명을 길게 했지만 이 둘보다 다른 친구들을 보는 게 더 잦기는 했다. 다만 관계라는 것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고 둘만 따진다면 요즘은 민우랑 종종 어울리고 경재랑은 잘 만나지 않고 있는 중이다. 시를 써야 하는데 이 친구의 우울함이 시상 떠오르는 데에는 아주 기가막히니까.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욕을 할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처음에는 친구였지만 지금 와서는 내가 내 필요에 의해서 만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제 그 둘 만큼은 내가 그런 의도로 만난다는 걸 자각해도 죄책감이 잘 들지 않는 중이다.

아마 민우와 경재를 당신도 알지 모른다. 같은 사람일지 동명이인일지는 모르지만, 과거와 미래라고 부른다. 일에 치이다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는 지금, 나는 두 친구와 같이 술을 마시는 것만 같다. 

 신명관

 대진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예정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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