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생산성이 정체되어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나라들과 비교하면 생산성이 현저히 낮단다. 자원이 빈약하고 가진 것이라고는 인재밖에 없는데도 여기까지 온 우리나라를 두고 내린 외국 사람들의 진단이다. 자본을 확충하는데 한계에 이르렀고 설비투자도 멈추었으며 새로운 기술의 개발이 더딘 대한민국은 인간의 생산성을 더 높여야한단다. 한마디로 사람들을 더 쪼아야한다는 말이다.

나는 대한민국보다 생산성이 높다는 영미권 국가에서 한주에 37.5시간씩 5년을 일했다. 딱히 이 나라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더 짧은 시간에 능률 있게 일한다고는 나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윗사람들이 일하는데 방해가 되는 게 아니라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즉, 보고서를 쓰면 자간이나 문서 스타일을 고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이해가 되기 쉬운 문장으로 고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빨리 이해시킬지를 같이 고민한다.

한국 사람들은 확실히 길게 일을 한다. 남이 시키는 일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하는데도 이상하게 생산성은 낮다. 한국에서 일 하는 사람들의 컴퓨터 모니터를 한번 쳐다봐보기 바란다. 눈길을 줄때마다 후다닥 마우스를 움직인다. 한국 직장인들의 컴퓨터를 실시간으로 기록하면 아주 재미있을 것이다. 주식하는 사람, 카톡하는 사람, 비트코인 거래하는 사람, 심지어 게임을 하는 사람까지 있다. 그냥 남들이 볼 때는 열심히 하고 남들이 안볼 것 같으면 바로 딴짓을 시작한다. 남이 볼 때는 일을 하고 남이 안 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짓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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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낀 외국은 개개인의 생산성이 아니라 두 명 이상일 때의 생산성이 높다. 커뮤니케이션의 능률화, 같은 일을 개개인이 각자 하는 게 아니라 수십 수백 명이 같이 했을 때의 능률이 좋다. 말단 직원도 할 말은 하고 맞는 말을 하면 그대로 따라간다. 윗사람들은 아랫사람의 의견을 따르고 일을 도와준다. 한국에서는 새로운 기술은 습득하지 않은 채 권력만 잡고 있는 윗선의 사람들이 위계질서를 앞세워 실무진의 의견을 듣기는커녕 일을 방해하기까지 했는데.

한국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 무슨 일이든 미국의 선례를 따라가려고 하고 미국 사람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곧이듣는다는 것이다. 미국 컨설팅 회사가 똥을 많이 싸야 GDP가 올라간다고 하면 똥 싸기 캠페인이라도 펼칠 것 같다. 나는 미국사람들과 일을 해본 경험이 많다. 세계에서 생산성이라고 하면 손꼽히는 미국사람들이라고? 미국 사람들이 일을 짧고 효율적으로 하느냐면 절대 아니다. 길게 그것도 아주 길게 한다.

미국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이 같이 일할 때 미국 사람들이 가장 짜증내는 것 중 하나가 한국 사람들은 일을 할 만할 때가 되면 우르르 몰려서 밥을 먹으러 가버린다는 것이었다. 미국 사람들은 우리가 이것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하는 말을 절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본 미국 사람들은 밥도 안 먹고 길게 일했다. 배가 고프고 잠도 부족하다보니 서두르고 실수도 많았으며 날카로워져서 서로 부딪히는 경우도 많았다. 무엇보다 그네들은 서로 경쟁하며 누구도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일도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한국 사람들은 최소한 서로 누가 밥을 먹었는지는 챙기지 않나?

나는 지금 필리핀의 마닐라라는 곳에서 일은 하지 않고, 그냥 놀고 있다. 노는 입장에서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필리핀의 생산성은 그야말로 최악이라고 외국 기관들은 평가한다. 동남아시아에서 무슨 일을 하려면 몇 시간은 약과, 최소 며칠이나 기다려야 그제야 천천히 시작한다고들 불만을 토로한다.

분명히 이 사람들의 일처리 속도는 늦다. 하지만 일하는 도중에 딴 짓을 하거나 상대와 경쟁하고 비난하거나 화내지는 않는다. 그냥 주어진 일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할뿐이다. 눈치를 보며 남의 속도에 맞추면서 헉헉대기보다는 자기만의 속도로 일을 한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뭐하는지를 물끄러미 보고 있어도 후다닥거리며 뭔가를 덮거나 하지 않는다. 보여주기 식의 일을 하거나 화를 내지도 않는다. 항상 미소를 지으며 자기가 할 일을 한다. 그냥 아주 천천히 할 뿐이다. 그리고 주어진 일이 없을 때는 주위 사람들과 아주 여유롭게 논다. 윗사람이 감시하는 것에도 눈치를 보지 않는다. 심지어 윗사람도 할 일이 없을 때는 아랫사람들과 같이 장난을 치며 논다.

생산성 향상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목적 없이 생산성만 높이는 것이 최고인가, 아니면 생산성을 높여서 매출이나 고객만족을 높이는 것이 목적인가? 생산성향상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미국이 한국보다, 한국이 필리핀 보다 물론 한수 위다. 하지만 생산성을 높여서 소비자나 생산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글쎄?

미국과 한국 사람들은 필리핀사람들이 받는 월급 200달러도 그네들의 생산성에 비하면 많다고 불평한다. 필리핀은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자는 물론 구매자나 서비스를 받는 사람도 행복해 보인다. 과연 이 나라의 일꾼들이 미국, 한국 사람들보다 못한 것일까?

사람이 먼저인가, 생산성이 먼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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