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성의 일기장]

[오피니언타임스=김우성] 대학생에게 6월은 기말고사를 치르고 여름방학을 맞이하는 시기이다. 꽃샘추위가 기승이던 3월에 개강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학과별로 한 학기 동안의 추억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종강총회를 갖는 걸 보니 학기가 끝나가는 게 실감난다. 돌이켜보면 시간이 참 빠르다. 하루가 금방 저물고, 일주일이 금세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정신없이 달력을 넘기다보니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 있다. 마음은 여전히 학기 초나 다름없지만, 두툼한 외투를 꺼내 입던 몇 달 전과 달리 반소매 셔츠를 찾는 요즈음, 확실히 시간이 흐르긴 흘렀구나 싶다.

그러고 보니 한 학기가 끝나가는 이 시점이 한 해의 반환점을 돈 시기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반년을 보낸 이 생활을 한 번 더 반복하면 올해도 곧 끝나겠지. 그렇게 1년을 꼬박꼬박 보내다보면 20대 후반이 되고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날도 금방이겠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에는 왠지 모르게 늘 아쉽고 섭섭하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누구나 공통적으로 갖는 한 가지 섭섭함의 원인은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이 아닐까. 나이가 늘어나는 건 누구에게나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연륜이 쌓이고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나아진다 한들, 타임머신을 타고 10대 혹은 20대로 되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나 솔깃하지 않을까. 불로장생을 꿈꿨던 진시황이나 청춘을 예찬한 수많은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 살이라도 젊고 싶고, 청춘을 동경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픽사베이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이 결혼을 했다. 20대 중반에 백년가약을 맺은 친구를 보면서 기분이 묘했다. 10대 청소년 시절이나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결혼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껏 결혼식장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열심히 박수 치고 뷔페 음식을 배터지도록 먹는 것이었다. 나는 평생 어린 소년으로만 남을 줄 알았는데, 한 해 한 해가 흐르는 사이에 어느새 20대 중반이 되었고, 이제는 내 나이에 결혼식의 주인공이 되는 게 전혀 이상한 일도,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새삼 놀랍다. 꽃다운 20대 청춘이 막을 내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영원히 오지 않을 줄만 알았던 30대가 머지않은 현실에 머릿속이 복잡한 요즘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이를 먹는 건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두려운 게 있다. 나이를 먹어도 성장하지 않는 나 자신과 마주하기가 더 겁난다. 매년 나이가 바뀌고 생김새도 조금씩 변하는 반면, 나의 실력이나 생각, 가치가 나아지지 않고 제자리걸음이라면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다.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성취와 성장의 기쁨을 맛보고 싶은 바람과는 다르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그대로인 나 자신을 발견할 때는 참 속상하다.

올해 초, 동호인 탁구 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다. 평소에 탁구를 즐겨 치는 만큼 한 번쯤은 나의 객관적인 수준을 확인하고 싶었다. 예선에서 두 명의 상대와 경기를 치렀는데 각각 세트스코어 3대0, 3대0으로 패배했다. 두 명의 상대와 경기를 치르면서 한 세트도 따지 못하고 무릎을 꿇으니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부족한 실력을 확인한 그 후로 탁구를 더욱 열심히 쳤다. 개강 후 탁구 동아리에 가입했고 교양으로 탁구 수업도 들었다. 자주 치면서, 특히 기량이 뛰어난 학우들과 겨루면서 실력이 느는 게 느껴졌다. 이기고 지는 과정에서 많이 배웠고, 예전에 비해 성장했다는 확신을 얻었다. 자신감을 충전한 나는 최근에 또 다른 탁구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번처럼 무기력하게 예선에서 탈락하지는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결과는 지난 대회와 마찬가지로 두 명의 참가자를 상대로 3대0, 3대0 패배를 기록했다. 최소 한 세트는 따내고 졌어야 과거에 비해 조금이나마 나아졌다는 희망이라도 발견했을 텐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현실에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탁구 실력으로는 어디 가서 명함을 내놓지 못하는 대신, 자신 있게 내세울만한 다른 능력은 무엇이 있을까. 부족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많이 발전했다고 부각시킬만한 점은 어떤 게 있을까. 예전에는 키가 160대였는데 지금은 170대인 것? 예전에는 몰랐던 영어 단어를 지금은 아는 것? 글쎄, 다른 건 없을까.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길 희망한다. 그래서 부지런히 공부하고, 배우고, 경험한다. 날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보고 듣고 체험하는 사례가 늘어난다. 그만큼 얻는 게 많아져 과거에 비해 경쟁력을 갖출 가능성이 커진다. 단, 성실하게 노력한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예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게 없다면 나의 노력과 의지가 부족한 탓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성장이 멈춘 원인을 남 탓으로 돌릴 수도, 다른 핑계로 덮어씌울 수도 없으니까. 나의 게으름과 부족한 열정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니까. 군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병이 모르는 것을 물어보았을 때 말년 병장이 잘 알려주지 못한다면? 중학교 수학 문제를 놓고 씨름하는 동생에게 대학생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짬과 나이를 거꾸로 먹었다고 무시해도 할 말이 없다. 후임에게, 동생에게,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성실하게 내공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크다. 나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당당할 수 있기를,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기를.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고 싶은 생각에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나이가 드는 것보다 나이가 들어도 성장하지 않는 것. 이게 더 두렵다. 한 살 두 살 나이가 드는 만큼 한 뼘 두 뼘 성장한다면 흐르는 세월이 야속하지만은 않을 테다. 시간이 갈수록 나의 가치가 높아지는 현상은 분명 환영할 일이니까. 그렇게 나이 들면 좋겠다. 쏜살같이 앞을 향해 질주하는 세월처럼 나도 끊임없이 전진하고 상승기류를 탔으면, 그래서 훗날 20대를 돌아보았을 때 미련이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후회하기보다 앞날을 기대하면서 내일을, 그리고 새해를 기분 좋게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이 먹는 기쁨이 곧 성장하는 기쁨이니, 그 기쁨을 평생 누리면서 살고 싶다.

 김우성

고려대학교 통일외교안보전공 학사과정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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