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칼럼]

[오피니언타임스=김선구] 자라날 적 누구로부터, 또 무엇에 의해 영향을 받았느냐는 어른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싫던 좋던 나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을 꼽는다면 하나는 중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용기에 대한 가르침이다. 서양에서 ‘용기는 아니다라고 말해야 할 때 아니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란 가르침이 입력된 후 뇌리에 박혀 나의 언행을 지배해왔다.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신념에 가끔은 우리 문화나 관습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언행을 가리지 않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중간시험이나 기말고사에서 낙제위험선에 몰린 급우들이 컨닝하는 걸 보면서 당당하지 못한 처신이라는 생각을 간접적으로 표출하는 방식으로 답안지를 백지로 내기도 했다.

대학시절에는 리포트를 베껴서 내기보다는 차라리 내지 않았다.
대학시절 학점의 거의 반은 리포트를 통해서 매겨졌는데 정부지원으로 미국유학을 지원하려다 그때서야 학점이 기준에 0.01 모자라 자격이 안됨을 알고서 공부를 등한시하며 지낸 대학시절이 부끄러웠다.

©픽사베이

신문과 함께 리디오 뉴스에 중독되다시피 보냈다.
제니스사의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집에 있어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무척 많았다. 뉴스 외에도 당시 좋아했던 프로로는 ‘재치문답’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출연자로는 소설가 정연희, 의사 한국남, 만화가 두꺼비 안의섭 등이다. 출연자들을 박사로 부르며 그들의 재치있는 입담을 즐겨 듣곤 했다.

해외 원정 스포츠경기를 목멘소리로 중계하던 이광재 아나운서가 부러워 커서 아나운서가 되고픈 때도 있었다.

텔레비전이 등장하며 사라지리라 여겨졌던 라디오방송이 아직도 건재하다.
라디오 연속극이나 소위 스포츠중계방송과 예능프로는 텔레비전에 자리를 내주었으나 음악과 시사토크 중심으로 고정 청취자를 확보하고 있다.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시간이 긴 사람들에게는 텔레비전이 접근할수 없는 라디오만의 독점이 가능하다. 이런 충성도 높은 청취자들에게 라디오방송은 목마름을 덜어주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된다.

지금은 라디오와 떨어져 살고 있지만 라디오하면 주파수 맞추기 위해 다이얼을 돌리다 특정방송국 주파수에서 잡음이 없어지는 순간을 포착해 정지시키는 장면이 떠오른다. 이에 비해 텔레비전은 채널을 돌리기가 간단해 미세조정할 필요가 없다.

텔레비전 채널에서는 잡음이 들리다 미세조정을 통해 맞는 주파수를 맞추어가는 과정이 없는 게 마치 서로 같은 주장이나 의견을 갖은 사람끼리만 몰려 살고 다른 사람은 배척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세파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라디오는 주파수 찾기 같은 과정을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는데 이제는 옳고 그름이 기준이 아니라 내편과 반대편으로 나뉘어 상대편 주장은 깡그리 무시하려다보니 서로 다른 채널의 방송을 동시에 틀어놓고 서로 볼륨을 키우며 자기가 선호하는 방송만 듣게 하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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