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의 코리아 프리미엄 프로젝트]

[오피니언타임스=이영환] 최근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변화를 보면 분명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변화의 첫째 동인(動因)으로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을 지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아직 모든 쟁점들이 타결되지는 않았지만 한반도 완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기본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비가역적인 사건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비가역적(irreversible)이란 말은 원래 “열역학 제2법칙”의 특성을 나타내는 용어로서 이미 벌어진 사건을 시간에 역행해 되돌릴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대부분 언론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일사분란하게 “비가역적”보다는 “불가역적”이란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이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 없이 남을 따라 하는 관행 말이다.

다음 동인으로는 6월 13일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사건이다. 이전의 지방선거와는 정반대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대부분의 매체들은 이구동성으로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면서 보수의 몰락과 진보의 승리를 추인하는 사후확증편형(hindsight bias)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결과가 여당의 압승으로 나오자 선거 전부터 그런 결과를 예측했다는 듯 같은 톤으로 보수를 질타하는 논조(論調) 일색이었다. 그런데 필자는 이번 선거결과를 긍정적으로만 평가하기에는 뭔가 불안한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실정(失政)을 심판함으로써 정당하게 주권을 행사한다는 대의명분에는 동의하면서도 압승이나 참패니 하는 극단적인 용어들이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도 우리의 정서가 안정되지 않았다는 증거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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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정상회담과 지방선거는 분명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이 두 가지 사건 모두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요구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게 여겨졌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생전에 다방면에 걸쳐 명언들을 많이 남겼다. 그 가운데 그의 다음 명언은 우리의 현재 상황에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문제들에 사용했던 사고방식으로는 우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We cannot solve our problems with the same thinking we used when we created them)”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기존의 마인드셋(mindset), 즉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현안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이다. 이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문제 해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곧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며 우리가 할 일은 이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패러다임의 의미를 살펴보자. 이 용어는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Thomas Kuhn)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주요 개념으로 사용된 이래 한 시대의 지배적인 사고체계 내지 세계관을 상징하는 용어로 여러 분야에 널리 적용되고 있다. 쿤에 의하면 패러다임은 물리학이나 화학과 같이 자연과학 분야에서 실험과 관찰을 통해 검증과 반증의 과정을 거쳐 전문가 집단에게 확고한 진리로 인정받는 사고체계 및 세계관을 의미한다. 따라서 패러다임의 지지를 받는 과학은 정상과학(normal science)으로서 시대를 대표하는 이론모형으로 권위를 누리며 이에 반하는 다른 주장들은 모두 배척된다.

그런데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변칙사례(anomaly)들이 등장함으로써 패러다임은 위기를 맞게 되는데 이로 인한 변화는 점진적이 아니라 혁명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자연과학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 금융전문가 조지 쿠퍼(George Cooper)가 저서 『돈, 피, 혁명』에서 패러다임 전환의 과정을 연극에 비유해 <1막: 불일치의 등장, 2막: 분열의 시작, 3막; 혁명, 4막: 거부, 5막; 수용>으로 구분한 것은 적절하다. 필자 생각에 우리는 지금 1막과 2막을 지나 3막의 초입에 있는 것 같다. 앞에서 언급한 사건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북미정상회담으로 구체화된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인 변화는 이제 비가역적인 단계에 와있다고 본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좌파니 우파니 하는 이데올로기 논쟁은 무의미한 정도를 넘어 오히려 해롭기까지 하다.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이용해 사적으로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반민족적인 언행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나아가 아직은 가능성의 영역에 있는 남북한 평화공존의 기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의 진심이 담긴 서원(誓願)이 요구된다. 그 이유로는 이중맹검법(double blind test)에 입각한 과학적 실험에 의하면 진심으로 환자들의 쾌유를 비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환자들의 병세가 호전되었다는 통계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다양한 보고를 들 수 있다. 이런 실험이 시사하는 바는 이번 회담이 확고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진심으로 평화를 기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기본 가치가 자유이고, 공산주의 계획경제를 지탱하는 기본 가치가 평등이라고 한다면, 이제 우리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대극적인 가치를 더 이상 대립과 갈등의 원천으로서가 아니라 전체를 구성하는 두 개의 대극(對極)으로서 이들의 합일 내지 조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분석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이 즐겨 사용했던 대극의 합일 내지 조화가 이것이다. 융은 인간의 정신은 대극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밤과 낮, 탄생과 죽음, 행복과 불행, 선과 악, 빛과 그림자 등은 대표적인 대극들로서 우리 정신은 두 대극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 이 가운데 하나가 우월해지면 다른 하나는 자연스럽게 약화된 상태에 있다가 여건이 무르익으면 반전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른바 대극의 반전이다. 우리 의식 수준이 상승하지 않으면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인간의 정신은 황폐해진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대극의 합일 내지 조화이다. 북미정상회담을 시발점으로 좌파와 우파라는 대극의 합일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이를 현명하게 실현시키는지 여부는 전적으로 우리의 정신에 달려 있다. 그래서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는 것이다. 더 이상 이데올로기의 망령에 시달려서는 안 된다,

한편 여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린 이번 지방선거 결과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지난 정권에 대한 평가와 현 정권에 대한 지지를 가름하는 척도의 성격을 갖는 지방선거가 이처럼 극단적인 결과로 드러난 것을 성숙한 민주주의의 증거로 볼 수 있는가? 필자에게는 이것도 일종의 쏠림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성숙한 사회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대항력(countervailing power)이 존재해야 한다. 이런 힘이 무너지면 결국 어떤 형태든 권력의 독점 현상이 발생하고 그 결과는 부패와 비효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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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이제 더 이상 공허한 보수 대 진보 간의 갈등을 끝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는 그동안 우리 사회를 분열시켰던 가짜 보수 대 가짜 진보 간의 권력투쟁을 종식시키고 진짜 보수와 진짜 진보의 의미를 정립하고 이들 간의 상생적인 관계를 추구할 때가 되었다. 왜냐하면 진짜 보수와 진짜 진보는 상극(相剋)이 아니라 상생(相生)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는 건전한 사회를 구성하는 두 개의 중심 가치이다. 이 둘 중 하나만 득세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불건전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칼 융의 용어를 빌리자면 우리는 보수와 진보라는 두 대극의 합일을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정신이 온전하게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이 진짜 보수이고 무엇이 진짜 진보인지도 모르는 채 일부 인사들의 선동적인 발언에 부화뇌동하는 우(愚)를 범했다. 이제 우리 의식을 파편화시키는 이런 대극적인 사고는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켜야할 가치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즉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공동선(common good)이 무엇인지 공개적인 토론을 거쳐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국민은 누구나 인간적인 삶의 살 권리가 있다는 원칙에 동의한다면 최저임금을 둘러싼 갈등은 완화될 수 있다. 누구나 지켜야할 보편적인 사회규범에 대한 합의가 없기 때문에 각자의 기준에 비추어 시시비비를 가리는 혼란이 지속되어왔던 것이다. 또한 사유재산권은 어디까지 존중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일부 인사들이 자유시장의 진정한 의미도 모르면서 맹목적으로 자유시장을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런 우매한 짓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지켜야할 자유시장의 기본 규칙이 무엇인지 공개적인 논의를 통해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할 가치들에 대한 합의에 도달한 후 이를 지키는 것이 진짜 보수인 셈이다. 진짜 진보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에서 말할 수 있다. 세상만사의 본질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켜야할 가치가 확립되더라도 이것이 만고불변의 가치는 아니므로 이에 상응하는 진보적인 사고가 병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진짜 진보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진짜 보수와 진짜 진보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에 대립과 갈등의 원천이 아니다. 이들은 마땅히 대극의 합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피상적인 변화가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중매체나 각종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뉴스나 정보를 맹신해서는 안 되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제대로 공부하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과 같은 급속한 변화의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변화의 주역으로 등장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리키는 것은 한 가지, 우리는 지금 패러다임 전환의 시점에 와 있다는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기존의 사고체계와 세계관을 유지하려는 세력들의 저항이 아무리 크더라도 이를 극복해내고 이에 걸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시대적 변화의 핵심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성적으로 사유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 바로 이것이 패러다임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이사

  <시장경제의 통합적 이해> 외 다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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