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혜탁의 말머리]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1년에 많으면 네댓 번, 못 봐도 두세 번은 꼭 보는 무리가 있다. 대학생 시절 언론사 인턴을 같이 했던 친구들로, 나를 포함해 총 4명이다. 각자 바쁜 직장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지라 네 명이 다 못 볼 때가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작은 그룹은 서로의 일상과 속내를 공유하며 수년 간 이어져오고 있다.

©픽사베이

당연히 이 친구들보다 훨씬 자주 보는 무리도 있(었)다. 한 달에 여섯일곱 번을 만나기도 했던 것 같다. 만날 때마다 즐거웠으며, 모든 구성원이 그다음 약속을 잡는 데 속도를 올리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두 명에게 ‘어떤 사정’이 생기게 되면, 활활 타올랐던 모임의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갑게 식어갔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니 “중학교 친구가 진짜 친구지”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어린 나이에 무슨 그런 구분(중학교 친구/고등학교 친구)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이런 말을 여기저기서 적잖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니었다. 중학교 친구는 중학교 친구대로, 고등학교 친구는 고등학교 친구대로 다 의미가 있었다. 

대학생이 되니 또 “고향 친구나 옛날 친구가 진짜 친구지”라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 역시 틀렸었다. 같은 캠퍼스에서 추억을 함께 일군 이들과의 진한 연대의식은 옛 친구의 안온함이 주는 매력과는 또 달랐다. ‘누가 더 낫다’가 아니라 어떤 친구든 공히 소중했다.

서두에서 말한 4명 그룹은 대학 졸업을 목전에 두고 만난 이들이다. 각자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의 여유가 많지 않았던 시절, 우리는 몇 주 간 기자·PD 흉내를 내며 친해졌다. 나이와 전공, 학교가 다 달랐다. 언론사에서 인턴을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것만 같았고, 인턴 후 각자의 계획은 제대로 세우지 못했었다.

언론인이 될 준비를 해야 할지, 유학을 갈지, 대기업 입사 준비를 해볼지, 어떤 특정 시험에 집중해볼지 등 네 명 다 갈팡질팡했다. 그 고민을 주고 받으며 청계천 근처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 캔맥주를 마셨다. 지금도 가끔 그 당시의 청량함을 추억하며 청계천에 가보지만, 그때의 그 ‘맛’이 안 난다.

청춘이니 사랑, 연애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누군가 먼저 방송사 합격증을 받게 되고, 뒤따라 다른 이가 대기업에 들어가고, 다시 또 누군가 방황을 시작하고, 어떤 이는 퇴사를 했으며, 재입사를 했다. 새로운 사랑을 만난 이의 이야기를 듣게 됐고, 회사에서 계약 연장이 되지 않아 새로운 거처를 알아봐야 한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해다. 갑작스러운 상실감에 시간이 필요했던 친구를 몇 달간 기다려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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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자주 보지는 않았다(못했다). 각자 친구도 애인도 있고, 다들 나름의 일과 사정이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 오래 보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얼마 전 가로수길에서 우리는 다 같이 만나 오랫동안 수다를 떨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결혼식에 가야 해서 술을 빼며 몸을 사리던 나는 3번째 장소에서 결국 소주잔을 손에 쥐었다. 아이스크림을 먹듯 달콤하게 소주를 나눠 마시는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참을 수가 없었던 것.

여러 종류의 친구 그룹이 있는 것 같다. 내겐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가장 오래된 벗들이다. 그들의 존재 역시 너무나 소중하다. 위에서 대학교만 들어가도, 옛날 친구가 진짜라는 타령을 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기준에서라면 이 4명의 그룹은 결성되기 쉽지 않았을 터. 졸업을 코앞에 두고, 나름 ‘어른’일 때 만난 놈들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역시 예전 친구가 진짜니 가짜니 하는 그 말은 틀렸었다.

지하철 막차 시간을 살짝 놓쳐 각자 부산하게 뿔뿔이 흩어지며 우리는 말했다. 9월에 다들 꼭 보자고. 계절이 변할 때마다 이들이 많이 보고 싶어진다. 자주 보기보다는 오래 보는 우리 그룹이 참 좋다. 그들과 더 오래 볼 수 있기를, 10년 그리고 20년이 지나도 옛이야기를 떠올리며 소주잔을 부딪칠 수 있기를. 그리고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도 계속 유쾌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남의 횟수나 빈도보다는 지속과 기간에 방점이 찍힌 이 관계의 영속을 기원하며.

 석혜탁

대학 졸업 후 방송사 기자로 합격. 지금은 기업에서 직장인의 삶을 영위. 
대학 연극부 시절의 대사를 아직도 온존히 기억하는 (‘마음만큼은’) 낭만주의자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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