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연의 하루 시선]

[오피니언타임스=정수연] 선크림을 바르고 컨실러를 바른 뒤 파운데이션을 덧바른다. 밝아진 피부 위에 눈썹을 그려내고 눈 위아래에 섀도우를 바른다. 색이 칠해진 눈꺼풀 위에 아이라인을 빼고 속눈썹을 집는다. 마스카라를 바르고 뷰러를 이용해 한 번 더 속눈썹을 집는다. 립스틱을 사용해 입술에 색을 칠하고 입술 색에 맞춰 블러셔를 고른다. 광대를 따라 블러셔를 바르고 턱 부근에 섀딩을 넣는다. 거울을 본다. 완성이다. 벌써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젠 머리를 매만져야 한다.

매일 아침 필자가 거쳤던 과정이다. 솔직히 말해 모든 메이크업 과정을 자세하게 하나하나 쓰기엔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중요하지 않은 단계는 생략했다.

픽사베이

서점에 페미니즘, 여성학을 다룬 책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김지영 씨로 대변되는 ‘한국 여성’들이 경험한 성차별적 요소들을 묘사해낸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아직까지도 대형 서점 내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있다. 얼마 전 혜화역에선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페미 시위가 열렸다. 말 그대로 ‘페미니즘’이 대세다. 이런 대세 속 여성들 사이에선 탈코르셋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과거 여성들이 건강을 해치면서 착용했던 코르셋은 현대에도 모양만 바꾼 채 여전히 존재한다. 바로 화장, 무리한 다이어트, 미를 위한 성형수술, 하이힐 서클렌즈, 브래지어, 긴 머리와 같은 것들이다.

탈코르셋 운동에서 지칭하는 코르셋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여성’이 되도록 지정하는 것이며, 여성이 남성에게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가 여성에게 ‘여성스러운’ 옷차림과 행동, 성격, 신체의 형태 등을 규정하는 것이 코르셋이고, 여성의 기회비용을 빼앗는 것이 코르셋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회비용이란 시간과 돈을 의미한다.

시간은 한정되어있다. 모든 사람에게 24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고 그 시간 내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코르셋은 여성에게 한정된 시간을 코르셋에 사용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위에서 적은 메이크업만 해도 그렇다. 사회는 최소 1시간 이상의 시간을 코르셋을 입는데 투자하게 만든다. 코르셋이 없었다면 1시간만큼 더 잘 수 있고, 1시간만큼 책을 더 읽을 수 있고, 1시간만큼 더 운동할 수 있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돈 또한 기회비용이다. 아직도 만연한 유리천장으로 인해 여성이 돈을 벌기 힘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코르셋은 여성들에게 돈을 모을 수 없게 만든다. 전부 사용하지도 못하는 색조 화장품을 사 모으게 하고, 한두 해 지나면 유행에 뒤쳐져 안 입을 옷에 돈은 사용하게 만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기회를 의미하지만 여성들은 사회에서 강요하는 코르셋에 돈을 쓰느라 상대적으로 적은 기회를 얻게 된다.

사회는 코르셋을 통해 여성이 남성에게 저항하기 어렵도록 만든다. 사회적으로 다이어트를 강요해 어쩌면 남자보다 높은 체급을 가질지도 모르는 여자들의 체급을 낮추고, 하이힐과 브래지어를 통해 신체의 능력을 제한시킨다. 서클렌즈와 긴 머리, 화장, 미를 목적으로 한 성형 수술을 통해 여성을 남성들에게 성적으로 만족될 만큼 꾸미게 만든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여성의 시간과 돈을 빼앗아 결국 신체적으로, 사회적으로 남성에게 저항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니까 탈코르셋 운동을 다시 정의하자면 페미니즘의 궁극적 목적인 ‘여성 해방’, ‘남성 권력 전복’을 위해 이러한 코르셋을 벗어나자는 운동이다. 물론 완벽한 탈코르셋은 엄밀히 말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어렵다. 일상에서 탈코르셋을 실천한 여성을 보기 어렵고, 나부터 실천하려 해도 주변이 여성혐오로 가득하다. 버스 광고에는 화장품 광고가 부착되어있고, 티비 광고에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광고가 넘쳐난다. 직업의 특성 상 코르셋이 강요되는 직종도 있다.

지금 당장 탈코르셋을 실천하지 못한다고 이들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지금 입는 유니폼이, 지금 하는 화장이, 신고 있는 하이힐이, 오늘 입고 나온 딱 달라붙는 옷이 코르셋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이것이 여성 대상화의 수단이자 결국 남성 권력의 유지를 위한 산물이라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일상에서부터, 벗기 쉬운 코르셋부터 벗어나자는 것이다. ‘사회가 강요한 자유’인 코르셋을 하나씩 벗어나가는 나의 모습이 코르셋을 아직 벗지 못한 누군가에겐 탈코르셋 시작을 향한 용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필자 또한 완벽하게 탈코르셋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화장 단계를 많이 줄였지만 여전히 피부화장과 눈썹, 입술 화장은 버리지 못한다. 아직도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으며 긴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둥글고 예쁜 말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화장 단계를 줄임으로서 40분 이상의 시간을 나를 위해 쓸 수 있게 되었다. 화장품과 옷에 쓰던 돈을 모아 여행 자금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여성이 꼭 예쁘게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 거울을 덜 보게 되었다. 거울을 덜 보니 쌍꺼풀 수술을 할까 하는 생각을 덜 하게 되었다. 나를 ‘나’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화장 코르셋 하나 벗었을 뿐인데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고 한다. 여성 인권은 그저 얻어지지 않는다. 인류 이래로 이어진 여성 혐오를 벗어나기 위한 운동의 일환으로 탈코르셋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는 오늘 아침 착용한 코르셋이 내가 온전히 원한 것인지, 사회의 영향으로 원하게 된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벗을 수 있는 코르셋부터 벗어나가길 바란다.

정수연

사람을 좋아하고 글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이해하고 싶어 글을 씁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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