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언의 잡문집]

[오피니언타임스=시언] 우연히 들른 가게 안은 CCTV로 가득했다. 카메라는 가게 전경과 간판 앞거리를 속속들이 비췄다. 고가품을 취급하는 가게도 아니었다. 내 원룸보다 조금 더 넓은 가게였다. 물건을 사면서 이유를 묻자 사장님은 치를 떨었다.

“요새 정신 나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다짜고짜 쌍욕을 하질 않나, 간판에 돌을 던져서 깨질 않나. 말도 마세요.”

방금까지도 경찰서와 통화했다고까지 하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고소, 고발에 증거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은 지인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더구나 사장님과 직원 모두 여자인 매장에서 CCTV의 존재는 한가닥 믿는 구석이 되어주기도 할 터였다. 고생이 많으시겠다며 카드를 돌려받는 순간 사장님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약 먹는 사람들이 꼭 사고를 치고 그러더라고. 왜 있잖아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정신과 약 먹는 사람들.”

©픽사베이

사장님의 목소리는 경험으로부터 학습한 자의 확신으로 가득했다. 잠깐 동안 나는 사장님의 신념이 탄생하기까지의 경로를 상상했다. 사장님은 경찰서에서 가해자들을 마주했을 것이고, 수사 과정에서 그들 중 몇몇이 정신과 진료 경력이 있다는 사실을 접했을 것이다. 동종업계 사람들의 유사 피해 사례가 쌓이며 사장님은 당혹에서 확신으로 나아간 걸까. 정신 질환자에 의한 범죄 보도도 한몫했을 것이다. 나는 조용히 가게를 나섰다.

평범한 중학생이 여아를 살해한 후 시체를 훼손한 ‘인천 여아 살인사건’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경찰에 따르면 가해자 A씨는 2011년부터 우울증과 불안증세로 정신과 진료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SNS 역할놀이’ 등 A씨의 범상치 않은 행적이 언론에 의해 밝혀지며 사건은 ‘정신병자에 의한 살인’으로 단정 지어졌다.

온라인은 달아올랐다. 네티즌들은 ‘무섭다... 그냥 두지 말고 사회와 영원히 격리하자’부터 ‘저런 미친놈들은 사형에 처해야 한다’ 등 거친 말을 쏟아냈다. 몇몇 언론은 해당 사건을 ‘인천 정신병자 살해사건’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인천 여아 살해사건을 정신질환자 범죄로 보도한 언론에 유감을 표했으나 “정신병자”에 대한 증오는 계속됐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A씨가 정신 질환에 의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A씨는 정상인으로서 처벌 받았다. 오늘 우리에게 남은 건 이름 없는 정신 질환자들에게 가해진 편견의 폭력뿐이다.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 네명 중 한 명은 정신 질환을 경험한다. 그 중 전문적인 상담이나 치료를 받아본 비율은 20%를 간신히 넘는 수준이다. 하긴, 정신 질환자가 “미친 놈”과 동일시되는 사회에서 누가 의사를 찾아가 확진 판정을 받고 싶을까. 그들은 삐에로처럼 활짝 웃는 가면을 쓴 채 소리 없이 속으로 울어야 했을 것이다. 나는 사장님의 분노 어린 한탄을 들은 게 그들이 아닌 나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혐오를 지양해야 하는 건 단순히 윤리적인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정신병자들은 싹 잡아 가두자는 댓글을 쓴 날 저녁, 가족 중 누군가가 정신과에 다녀왔음을 고백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국민 네명 중 한명이라는 정신질환 유병률을 고려할 때 이는 그리 억지스러운 상황은 아니다. 함부로 쏜 혐오의 화살이 언젠가 자신을 향할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미친 놈”이 아니다. 마음의 병과 투쟁하는 하나의 인격체일 뿐이다. 

시언

철학을 공부했으나 사랑하는 건 문학입니다. 겁도 많고 욕심도 많아 글을 씁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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