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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역에서[이하연의 하의 답장]
이하연 | 승인 2018.06.27 08:25

[논객닷컴=이하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사람의 목소리였는데, 뭐랄까 살짝 어눌하면서도 서투른 듯한, 서울말이 아닌 사투리의 억양인 것 같기도 했고 혹은 외국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사람들이 몰려있으면 괜히 시선이 가고 신경이 그쪽으로 쏠린다. 귀가 움직이지 않았겠지만 내 몸보다 더 빠르게 돌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것을 군중심리라고 하나. 신길역의 긴 통로를 질주했고, 이내 곧 소리가 들려오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경찰들이었다. 이유인즉슨 문자가 주는 힘 때문인 것 같다. 아주 또렷하고 큰 글자로 ‘경찰’이라고 새겨진 조끼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그러고 보니 앉아있는 경찰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늘 서서 누군가를 통제하려는 모습만 봤을 뿐이니까. 예전에 사진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는데, 사진에 문자가 담길 때에는 신중하게 앵글을 잡아야한다고 했었다. 문자가 사진을 잡아먹기 때문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엄청나게 많은 전동휠체어의 군집을 보았다. 어, 이런 모습도 처음 본다. 주변에 전동휠체어가 있는 분도 없을뿐더러, 가끔씩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봤을 뿐이니까. 그제야 내 눈은 플랜카드를 찾기 시작했다. 주제 파악에 약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건 명확한 표어였으니까. 아주 길고 높다란 계단에 흩뿌려지듯 뭔가가 펄럭이고 있었다. 아, 글씨가 보였다.

‘언제까지 지하철 리프트에서 장애인이 떨어져 죽어야만 하는가’ 가슴이 철렁했다. 신길역의 계단은 여느 다른 지하철역보다 훨씬 가파르다. 그곳에 매달려 있는 리프트가 항상 불안해보이긴 했다. 만약 나라면, 저 곳에 내 몸을 온전히 맡기지 못할 것 같았다.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스스로 처방을 내릴 순 없지만 분명, 난 높은 곳을 두려워한다. 그곳에서 작년에 목숨을 잃은 한 장애인을 위한 추모 행사인지 시위인지 모를 것이 진행되고 있었다.

©픽사베이

연설을 맡은 사람도, 그 연설을 수화로 표현하는 사람도, 관중들도 모두 장애인이었다. 조촐한 탁자 위에 놓인 영정 사진 속 주인공도 장애인이었다. 잠시 그곳에 서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침착하게 바라만 보는 이도 있었고, 눈을 감고 귀의 감각만을 열어두거나, 자신의 몸을 통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도 있었다.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집중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경찰들이 왜 앉아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경찰들도 저들만의 방식으로 행사에 참여하던 것이다. 비장애인들도 옹기종기 그 주변을 둘러싸고 연설자의 발언에 몸을 고정시켰다. 연설자는 아주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얼굴도, 손도,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이었기에, 정확하게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자신의 온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 같았다. 그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수화를 하는 또 다른 장애인은 쉴 새 없이 시선과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손만큼은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현란하고도 분명한 손놀림은 오케스트라를 책임지는 지휘자의 움직임과 흡사했다. 그러니까 청중들과 연설자의 사이를 이어주는 믿음직한 중간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녀가 말하는 손의 언어로 연설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곳에 단 1분 정도만 서 있었을 뿐이다. 뒤이어 다른 지하철로 갈아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그 1분은 분명 내게서 무언가를 뺏어갔다. 현실감이라든가, 정신이라든가 혹은 영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눈앞이 어수선해지면서 멍해진 느낌을 받았다.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내 두 다리를 바라보았다. 두 다리의 반동에 의해 자연스럽게 움직여지는 두 팔도 지그시 쳐다봤다. 4개의 막대기는 마치 내 것이 아닌 듯 했다.

나에겐 이상한 버릇이 하나 있다. 지하철을 탈 때, 양쪽 끝에만 탑승한다는 점이다. 주로 5호선을 이용하니 예를 들어보자면, 1-1과 8-4에서 늘 지하철을 기다린다. 그날도 어김없이 4개의 막대기를 이끌고 8-4로 향했다. 날 이끈 이는 아마도 내 머리 위에 있는 습관이란 놈일 것이다. 때때로 버릇과 습관은 멍해진 나를 이끄는 데에 아주 큰 조력자가 된다. 8-4 앞에 우뚝 서서 유리에 비친 흑백의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하철이 올 때까지 그 상태로 내 몸만 보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를 훑어보았다. 중간에 신체기관을 움직여보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하고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들을 동정했던 것도 아니었고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지도 않았다. 내 머릿속 시선은 한국 사회를 향하고 있었다. 소수자들이 살아가는 데 너무나도 힘겨운 이 대한민국 현실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고 싶었다.

이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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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닷컴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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