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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지 않은 죽음은 없다[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 동안의 고독>(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김호경 | 승인 2018.06.28 10:35

고달픈 여정 끝에 맞닥뜨리는 것은?

우선 세계지도를 펼쳐라. 지도가 없다면 인터넷 구글맵(Google Maps)으로 들어가면 된다. 라틴아메리카로 가라. 오른쪽에 영토대국 브라질이 있고 그 위와 옆, 아래쪽으로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등등이 있다. 1500년대에 유럽 강대국들이 라틴을 식민지로 삼을 때 대륙을 거의 수직으로 나눠 오른쪽은 포르투갈이, 왼쪽은 스페인이 차지했다. 그래서 브라질은 포르투갈어가 공용어이고, 왼쪽 나라들은 스페인어가 공용어이다. 물론 일부는 네덜란드어를 사용하고 원주인 언어인 ‘과라니(Guarani)’를 사용하기도 한다. 라틴 사람들은 러시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영어에는 관심이 없다.

라틴에 가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다(가장 좋은 방법은 배 한 척을 사서 부산을 출발해 태평양을 지나 페루의 리마에 도착하는 것이다). 첫째는 비행기로 서울을 출발해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 착륙한 후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고 아프리카 상공을 지나 대서양을 건너 브라질 상파울로에 도착하는 것이다. 둘째는 비행기로 서울을 출발해 태평양을 건너 미국 뉴욕에 도착한 후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고 브라질 상파울로에 도착하는 것이다(미국 입국이 불허되는 사람은 두 번째 노선을 절대 택할 수 없다). 만약 파라과이를 가야 한다면 상파울로에서 아순시온으로 가는 비행기를 한번 더 타야 한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 죽을 만큼의 고달픈 여정이다. 시간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상실되기 때문에 시계 바늘을 현지에 맞출 필요가 없다. 4~5번 이상의 기내식만으로 끼니를 이어야 하므로 환승 공항에서 두둑이 먹지 않으면 현기증과 함께 울렁거림이 일어난다. 그렇게 도착한 라틴은 어떤 곳일까?

마테차는 남미 사람들이 하루 종일, 평생 마시는 음료이다. ©김호경

부자와 빈자를 구별하는 특별한 방법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통(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예쁜 Bottle이 아니다)을 들고 다닌다. 플라스틱 물통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빈자이고, 가죽으로 감싼 멋진 물통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부자이다. 빈부는 옷이나 자동차로 구별되지 않고 들고 다니는 물통으로 구분한다. 물통 옆에는 컵 하나가 매달려 있다. 역시 빈자의 컵은 싸구려 플라스틱이고, 부자의 컵은 물소뿔로 조각한 멋진 컵이다. 그 컵에 잎을 집어넣고 찬물을 부은 후 빨대로 빨아 마신다. 그 물이 마테(Mate)차이다. 라틴 사람들은 그 물을 하루 종일, 평생 마신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나요?”
“생전 처음 듣는 소리인데요.”

A와 B가 만나면 탁자 위에 컵 하나를 올려놓는다. 마테잎을 넣고 물을 부은 후 A가 먼저 빨대로 쪽쪽 빨아 마신 후 물을 부어 B에게 건넨다. 그러면 B가 그 물을 빨대로 쪽쪽 빨아 마신 후 다시 물을 부어 A에게 건넨다.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 사용하는 빨대는 하나이다. 그렇게 마테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5명이 모여도 컵과 빨대는 순차적으로 하나만 돌아간다.

“왜 각자의 빨대가 있는데 하나만 사용합니까?”
내 질문을 받은 사람은 몹시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한 가족인데 뭐가 어떻습니까.”
“가족이 아니라 친구인데...”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서 가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마르케스는 100년의 고독에 대해 말했지만 어쩌면 500년의 고독일지도 모른다. ©김호경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김호경

마콘도는 저주받은 땅인가, 축복의 땅인가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의 대표작 <백년 동안의 고독>은 두 가족(가문)의 이야기다. ‘아르카디오’ 가문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로 대표되며 쾌락과 모험을 즐긴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으로 대표되는 ‘아우렐리아노’ 가문은 숭고한 이념을 추구한다. 성향이 어떠하든 둘 모두 비극적이다. 마르케스는 이를 고독으로 비유했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스스로 밤나무에 매달려 미친놈처럼 행동하다가 죽는다, 우르술라는 치매, 실명된 상태에서 몸이 쪼그라들어 죽는다, 호세 아르카디오는 가족이 아닌 여동생 레베카와 결혼했으나 느닷없이 사인 불명으로 죽는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총에 맞아 죽는다, 그의 아내이자 시장의 막내딸은 요절한다, 레베카는 홀로 살다가 죽는다, 레메디오스는 쌍둥이를 임신했지만 독을 먹고 죽는다, 크레스피는 자살한다, 아마란타는 처녀로 죽는다, 아르카디오는 전쟁이 끝난 후 총살당한다, 미녀 레메디오스는 이불에 쌓여 승천(?)한다, 쌍둥이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는 동시에 죽는다, 아마란타 우르술라는 출산 후 과다출혈로 죽는다, 그녀의 아들은 개미들에게 뜯어먹혀 죽는다.

불행하고 고독한 죽음을 당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 왜 그럴까?

마콘도(Macondo)는 가상의 세계이다. 소설 속 가상의 세계로 널리 알려져 있다(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가상 세계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의 무진이다). 고독한 죽음의 이유는 집시 멜키아데스의 양피지에 담겨 있다. 그러나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Aureliano Babilonia)가 양피지를 해독하고 진실을 깨닫는 순간 마콘도는 사라져버린다. 바빌로니아는 페르난다의 딸 메메와 그녀의 애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이다. 왜 하필 그가 양피지를 해독하는지도 의문이다. 그곳이 저주받은 땅인지, 축복의 땅인지 그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빈틈이 있는 곳마다 사람들은 벽화를 그려야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김호경
©김호경
©김호경

누군가가 빨대를 꽂아 마테차를 권한다면?

라틴은 500년 넘게 유럽인과 원주민의 피가 뒤섞여 외모만으로 서구인지, 라틴인지 구분이 어렵다. 라틴 대륙은 평화롭고 온화하고, 아름다운 땅이었으나 제국주의의 침탈과 미국식 자본주의의 침투로 고달픈 역사를 겪어왔다. 마르케스는 100년을 피력했지만 500년 동안 고독하게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몸부림을 친 것이다. 이 소설은 그것에 대한 위안이라 할 수 있다.

멕시코, 브라질, 파라과이, 콜롬비아 등지를 여행하면 벽화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유치하고 반항적인 그래피티(graffiti)도 있으나 대부분은 아트의 수준까지 올라간 벽화들이다. 예술성을 떠나 그토록 많은 벽화를 그리는 이유는 잃어버린 시대에의 향수 혹은 사라져버린 이상향 마콘도에 대한 동경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독자를 곤경에 빠트린다. 인물도 많은 데다가 이름이 비슷하고, 성격이 지나치게 극단적이어서 초반부를 채 지나기도 전에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어렵다. 메모지를 옆에 두고 일일이 이름과 직업, 관계를 적으면서 읽어 나가야 한다. 마지막 질문!

그대가 라틴 땅에 갔다. 누군가가 자신이 먹던 빨대를 꽂아 마테차를 권한다. 그 빨대로 마테차를 쪽쪽 빨아마실 수 있겠는가? 

* 더 알아두기

1. 라틴문학 중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J.M. 바스콘셀루스(Vasconcelos, 브라질)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My Sweet Orange Tree)이다. 6살 제제와 포르투갈 출신 뽀르뚜가 아저씨가 주인공이다. 이 책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았다.

2. 마누엘 푸익(Manuel Puig, 아르헨티나)의 <거미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 Woman)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비야 데보토(Villa Devoto) 감옥에 갇힌 성추행범 몰리나와 게릴라 정치범 발렌틴의 대화로 엮어졌다. 읽기는 쉽지 않으나 형식과 주제가 독특하다.

3. 라틴아메리카는 넓은 영토와 오염되지 않은 자연, 많은 지하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21세기 들어서도 경제적으로 발전이 더디다. 현지인들은 “유럽의 식민지배를 너무 오래 받으면서 많은 것을 수탈당해서”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 그렇기는 해도 약간 ‘남 탓’이지 않은가 싶다. 라틴의 근현대 역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하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벤자민 킨(Benjamin Keen)의 <라틴아메리카의 역사>(A History of Latin America)를 권한다. 왜 라틴이 라틴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4.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는 칠레의 시인이며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가 <일 포스티노>(The Postman)이다. 시집으로는 <모두의 노래>(Canto General)가 있고, 평전으로는 애덤 펜스타인(Adam Feinstein)의 <빠블로 네루다>가 있다. [생각의 나무]에서 출간되었는데 절판되었으므로 헌책방에서 구해야 한다.

5. <백년 동안의 고독>은 번역본이 여러 권이다. 일부 평론가는 안정효 번역본이 가장 처음이라고 말하지만 1976년 육문사에서 펴낸 김병호(金炳昊) 번역본이 최초이다. [스페인어-한글판], [스페인어-영어-한글판], [스페인어-일어-한글판] 중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서점에 가서 각 책들을 펼쳐놓고 비교한 후에 자신의 취향(수준)에 맞는 것을 읽으면 된다. 소설은 과학이나 수학책이 아니며,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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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경  sosul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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