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완의 애, 쎄이]

[오피니언타임스=우디] ‘광화문 이그래’라는 별명이 생겼다. 이백기로 바꿔주면 안 될까, 라고 친구에게 항의했지만 조용히 하라며 맥주잔만 입에 물려졌다. 친구는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며 우리의 인생에 ‘백기’는 있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3개월 차 미생을 찍고 있다. 원래 모두의 인생은 드라마의 한 장면 보다 더 다이나믹한 법이다.

나는 최근 한 달 동안 회사 빌딩 비상구에 세금(?)을 내야 할 정도로 매일 도망가서 울었다. 화장실에 노트북을 들고 가서 업무를 봤다. 일은 마무리해야 하는데 메신저로 상사들의 연락은 계속 왔고 눈물은 멈출 줄 몰라서 화장실 칸 안에서 엉엉- 울면서 업무를 마감했다. 이쪽 업계는 다 이러고 산다는데 이러다간 쌍꺼풀 있는 날이 한 달에 8일밖에 없을 지경이었다. 얼마 전엔 얼굴을 거친 휴지로 벅벅 닦았다가 다음날 눈 밑이 발갛게 부어버렸다.

©픽사베이

토요일 아침, 여행을 가느라고 캐리어를 질질 끌고 택시를 탔는데 기사는 넌지시 내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라고. 내가 말갛게 백미러 속 기사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는 ‘표정이 너무 안 좋아서 가출이라도 하는 것 같아서요’라고 말했다. 기사의 말을 듣고 핸드폰에 얼굴을 비춰봤다. 일본에서 유행한다는 숙취 메이크업을 한 것도 아닌데 눈꼬리와 눈 밑이 시뻘겠다.

공항에 도착해서도 사람들과 나의 온도 차이는 극명했다. 다들 너무나 즐거웠지만 나는 이별여행을 하러가는 사람마냥 허공만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라서 초록색 원피스를 새로 사서 입고 반짝거리는 별모양 귀걸이도 했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귓가와 머릿속 가득하게 상사들의 목소리가 채워졌다. 다 이러고 사는 거고, 밥 벌어먹는 것은 이런 거라고 말하던 어른의 목소리도 빼곡하게 새겨졌다. 그 순간 카톡 알림이 울렸다.

“친구 잘 다녀와, 직장 생활은 존버(존나 버틴다)야, 버티자 우리.” 모든 미각을 다 잃을 정도의 쌉쌀함이었고 혀끝이 너무나 아렸지만, 그 말은 초콜릿 같았다. 유일하게 위로를 건네는 말이었다.

효리네 민박을 보지 않았지만 윤아의 눈물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이효리, 이상순 부부와 음악을 함께 듣던 윤아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고 부부는 잠시 그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내줬다는 내용이었다. 카메라는 바깥으로 나간 윤아의 등을 비췄다. 최근에 내가 자주 봤던 프로그램은 비긴어게인2였다. 사실 나는 로이킴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방송을 보면서 그에게 유난히 시선이 자주 머물렀다. 한국에서 음악활동을 잠시 멈추고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났다는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음악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삶에 대한 고민이 가득해보였다. Begin Again. 다시 시작. 시작. 시작.

왜 울어? 무슨 일 때문에 우는 거야? 그게… 울 일이야? 나는 언젠가부터 눈물의 이유를 묻는 것이 폭력적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울지마’라고 하는 말까지.

눈물의 이유는 너무 없어서 대답 할 수 없고, 너무 많아서 대답할 수 없다. 그리고 감정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다. 시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이 말해주셨다. ‘시’라는 것은 감정을 얘기하는 예술이다. 그런데 감정이 언어의 영역 안에서 구체적으로 변하는 순간, 논리가 끼어들어서 ‘시’는 망가져버린다고. 그래서 그 간극을 잘 오가야 한다고. 감정의 이유는 구체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특히나 눈물은 그 원인이 너무나 많다. 가끔 나는 슬픔은 보라색, 기쁨은 노란색처럼 색깔이 있어서 눈물이 흐를 때 감정의 농도만큼 색깔이 섞여서 흘렀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친구의 눈물에 마음 약한 그 옆의 친구들은 같이 운다. 이야기의 시작은 언제나 직장에서 들었던 상사의 모진 말들, 마음처럼 되지 않는 나의 무능이지만. 사실 우린 안다. 그것 때문만으로 울지 않는다는 것을. 순수하게 꿈을 꾸던 20대 초반의 나와 우리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아무리 버텨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미래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고, 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정말 많은 것을 버렸는데도 더 버리라고 강요하는 차가움에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 친구는 우스갯소리로 중얼거렸다. 임금의 노예냐, 대감집의 노예냐, 양민집의 노예냐 그냥 그 차이일 뿐이고 우린 다 노예라고. 나는 요새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고 있다. 아마 한 번 읽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겠지만, 다만 내일은 덜 울고 눈물 속에 보라색이 조금 옅어지기를... 앞으로 더 잘 버티기를 바랄 뿐이다.  

 우디

글을 읽고 영화 보고
여행 갈 돈을 차곡차곡 벌고 있는 쌀벌레 직장인

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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