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언의 잡문집]

[오피니언타임스=시언] 지난 28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낸 헌법소원에 일부 위헌 판결을 내렸다. 대체 복무제를 적시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가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것(양심)이 법질서에 대한 복종을 거부할 권리는 될 수 없다”던 2004년 헌재의 논리와 대비되는 판결이다. 이에 따라 국회는 내년 12월 31일까지 대체 복무제를 포함한 병역법 개정안을 입법해야 한다.

반면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한국교회언론회가 한국갤럽에 의뢰한 설문에서 국민 10명 중 7명은 양심적 병역거부 행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답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가 특혜나 다름없다는 기존 여론이 아직 건재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픽사베이

“군대 다녀온 사람을 살인 기술 배운 사람 취급하지 마라. 난 내 가족 지키러 군대 갔으니깐.”
“곧 입대할 학생입니다만.. 참 양심적이시네요. 누구는 양심적이지 못해서 군에 들어갔고 입대준비를 하는 건가요 “
양심적 병역 거부자 인터뷰 영상 댓글 中

양심적 병역 거부에서 ‘양심적’이라는 표현은 지속적인 논란의 대상이었다. 이는 군인으로서 의무를 다한 사람은 양심이 없어서 “살인 기술“을 연마했냐는 반론으로 이어진다. 의무란 선택권이 없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신체 건강한 성인 남성은 2년 가까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들은 양심이 무뎌서, 겁이 없어서 입대한 것이 아니다. 다만 의무였기에 수행했을 뿐이다.

물론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양심”이 일상적 의미의 양심이 아님을 안다. 양심적 병역 거부 선언이 입영자들에 대한 비난을 내포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안다. 그러나 원만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라도 ‘양심적’이라는 표현은 수정하거나 삭제해도 좋지 않을까. 인간은 프레임을 토대로 사고하는 동물이다. 양심적이라는 프레임에는 ‘비양심적’이라는 반대급부가 따르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렇든 저렇든 헌재의 판결에 따라 대체 복무제는 시행될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대체 복무제로 양분화된 사회 여론의 통합뿐이다. ‘양심적’이라는 표현의 수정이 그 첫걸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대체 복무제 도입의 성공 여부는 ‘대체 복무의 난이도’에 달렸다. 이미 “내년까지 입대를 미뤄야 하나”라는 댓글이 수백 건의 공감을 받는 상황이다. 대체 복무가 기존 복무보다 편하다는 여론이 형성되는 순간 특권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다. 혹자는 ‘남도 당신처럼 고생시켜야 속이 시원하겠냐’며 대체복무 강경론자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합당하지 않다. 쉬운 수준의 대체복무는 한국 사회 전체의 형평성을 크게 해칠 것이다.

나와 아버지는 당연히 밤마다 서로 다른 꿈을 꿔왔다. 헌데 내 전역 이후부터 아버지와 나의 꿈 사이에는 단 한 가지 교집합이 생긴 것 같다. 그것은 다시 군대에 가는 꿈이다. 재입대를 주제로 한 꿈속에서 아버지와 내 반응은 동일하다. 비명을 지르고, 그것만은 안 된다고 울며불며 빌다가 깨어난다. 반복되는 악몽은 무의식적 트라우마의 전형적인 증상임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북한과의 대치라는 안보 현실이 징병제로 이어졌고, 그 징병제가 아버지와 아들에게 대를 이은 트라우마를 남긴 것이다. 이는 비단 나와 아버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러한 고통을 동등하게 치르자는 요구가 이기적이다? 틀렸다. 일정한 고통이 의무로서 부과되어야만 한다면, 그 고통이 대상자들에게 동등하게 부과될 것이라는 믿음이야말로 사회 정의에 대한 신뢰의 근간이다. 신설될 대체 복무제의 난이도가 “꿀 빠는(쉽다는 뜻의 군대 은어)” 수준에 그쳐서는 안될 이유다.

“그 어떤, 아무리 힘든 대체복무제라도 저는 기꺼이 수행할 생각이 있습니다. (중략) 그러나 아무런 대안이 없는 상황에선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엠네스티 코리아, 양심적 병역 거부자 관련 인터뷰 中

현역 못지않은 수준의 대체 복무는 역설적으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요구는 늘 일관됐다. ‘대안을 제시해 달라‘는 것이 그것이었다. 종교적 양심에 따라 집총만은, 혹은 군복만은 입을 수 없으니 그에 상응하는 어떤 대체 복무라도 신설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이 목소리를 오랫동안 묵살했고, 최근 하급심 법관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근거도 여기에 있다. 대안을 주지 않은 채 범법자를 양산하는 현 시스템은 입법자들의 태만 때문이라는 것이다. 군 전역자들 앞에서 당당해지기 위해서라도 대체 복무제는 충분히 ‘빡세야’ 한다.

대만 등 대체 복무제를 적용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대체 복무 기간을 현역보다 길게 규정하고 있다. 복무 기관 역시 병원, 양로원, 교도소 등 기피 시설이 대부분이다. 현역 못지않은 난이도를 대체 복무제에 적용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1998년 유엔 인권 위원회 결의안대로, 대체복무는 징벌적인 성격을 띠어서는 안될 것이다. 대체 복무가 국방의 의무 수행 방법으로 인정받은 순간부터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범법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군 입대자에 비해 결코 뒤처지지 않는 난이도를 지니되, 현저히 위험하거나 비인간적이지 않을 것. 그리고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얻어낼 것. 헌재는 녹록치 않은 과제를 국회와 정부에게 남겼다. 적절한 대체복무 난이도 설정을 위한 토의와 논쟁을 시작해야 할 때다.  

시언

철학을 공부했으나 사랑하는 건 문학입니다. 겁도 많고 욕심도 많아 글을 씁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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