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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비타민[최미주의 혜윰 행]
최미주 | 승인 2018.06.29 11:11

[논객닷컴=최미주] 모처럼 엄마와 함께 하는 평일 데이트. 목욕 바구니를 털레털레 들고 나오며 머릿속으로 맛집을 하나 둘 떠올렸다. 드시고 싶은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자 엄마가 내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기’라고 말씀하신다. 눈을 마주치지 않다니. 들켰다. 고기는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딸을 향한 여느 엄마와 같은 절절한 사랑. 엄마랑 식사할 때마다 항상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날따라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지난주 금요일도 거짓말 잔치였다. 지지난주 토요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그랬고, 매일 보는 직장 동료들도 그랬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삼겹살 앞에서, 하얀 얼음이 반짝이는 팥빙수 앞에서 진실을 말한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다들 웃고 있지만 어색하게 느껴졌다. 동창회, 회식 어떤 모임이든 주변의 분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내 기분은 식어갔다.

©픽사베이

오늘은 눈앞에 불판과 고기 그리고 엄마가 있다. 그간 있었던 느낌과 감정을 여과하지 않고 이야기하며 밥을 먹어도, 불판에 고기가 익었는지 신경쓰지 않고 밥을 먹어도 아무렇지 않은 엄마가.

엄마와 밥을 먹고 돌아와 아이스크림을 하나 들고 침대에 앉았다. 엄마가 따라 들어와서 책 한 권을 건넨다. 성석제의 소설 《재미나는 인생》. 우리 집에 이런 책이 있었던가? 처음 보는 책이다. 느낌이 좋았다. 책에도 느낌이란 게 있다. 전공 서적은 침대가 아닌 책상에서 형광펜을 들고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언제나 꺼리게 되지만, 이 책은 뭔가 아이스크림 먹으며 침대에 엎드려서 읽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났다.

‘위대한 거짓말 세계의 신생아 여러분. 거짓말에 대해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거짓말은 선천적인 것이다. 어차피 인간의 말 속에는 거짓이 섞일 수밖에 없다. 후천적으로, 억지로 배우는 것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도덕률이라는 거짓말이다. “거짓말 마” 하는 말에 “응, 안 할 거야”라고 즉각 거짓말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거짓말쟁이가 될 소질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발각되면 큰 망신을…….’

-성석제, 《재미나는 인생》 중에서

소설의 내용에 따르면 전국의 아니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위대한 거짓말 재단’의 회원들이었다. 회원 가운데 정치가는 없다고 했다. 그들은 너무 뻔한 거짓말을 해서 거짓말쟁이의 품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라고. 거짓말은 진실이라는 딱딱한 빵 속에 든 슈크림처럼 의외의. 달콤하고 살살 녹은 이야깃거리와 즐거움을 준다고…….

거짓말에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순수한 거짓말, 지독한 거짓말 등등. 그렇다면 내가 그간 사람들에게서 들은 거짓말은 순수한 거짓말이었을까? 지독한 거짓말이었을까? 아니면 그 중간의 어디쯤이었을까? 내가 오늘 엄마께 ‘이제 배부르니 엄마나 더 드세요.’라고 한 것도 사실은 거짓말이었을까?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생각과 말, 행동, 계획, 실행 등 모든 분야에서 거짓말만 하는 위대한 인물은 아직 없다고 한다. 가장 가까이로 근접한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이미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 재단’의 회원이 되어버렸다니. ‘나’만은 ‘거짓말 재단’의 회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나는 진실을 말하는데 왜 사람들은 늘 거짓말을 일삼는 거냐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실 거짓말이었다. 해답은 간단했다. 나도 ‘거짓말 재단’의 신입생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악의의 거짓말이든 선의의 거짓말이든 사람은 언제나 거짓말과 대면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내가 기분이 나빴던 이유는 주변 사람들에게 슈크림 빵 같은 거짓말을 듣지 못해서 일지도 모른다.

며칠째 장마다. 비가 왔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축축하고, 찝찝하고, 끈적한 여름. 이런 여름 날씨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날씨라고 거짓말을 해보는 건 어떨까? 아니면 찝찝한 날씨로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맛집 백숙보다 엄마가 끓여준 백숙이 100배나 더 맜있다는 거짓말을, 지친 동료에게 오늘 맨 넥타이가 참 잘 어울린다는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나와 마주한 사람이 늘 웃을 수 있도록, 하지만 내가 하는 말이 거짓말이라고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거짓말을 잘하는 거짓말쟁이가 많아지길 바란다.

최미주

일에 밀려난 너의 감정, 부끄러움에 가린 나의 감정, 평가가 두려운 우리들의 감정.

우리들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감정동산’을 꿈꾸며.

100가지 감정, 100가지 생각을 100가지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쪼꼬미 국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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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주  cmj78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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