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빈의 위로의 맛]

밀면의 가슴 아픈 역사

부산 사람이라면 어느 동네, 어느 골목에서든 볼 수 있는 ‘밀면’이라는 두 글자. 시원하고 칼칼한 그 음식 덕분에 좋았던 기억들이 많다. 학창시절엔 땡볕에 한바탕 축구를 하고 나면 꼭 밀면을 먹었다. 물밀면을 시켜도 국물보다 면이 더 많았던 사장님의 인심도 기억난다. 냉면보다 가격은 저렴한데, 주린 배는 더 든든히 채워주던 밀면.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사람과 함께 먹을 땐, 큼직한 손만두를 슬쩍 밀어주기도 했던 시원하고 칼칼한, 밀면.

밀면은 익히 알려진 대로 냉면에서 파생된 음식이다. 실제 우리 동네의 한 밀면 가게에는 ‘밀면은 냉면의 사촌입니다’라는 문구를 적어두었다. 6.25 당시 부산까지 피난 온 이북 실향민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세계지도로만 보자면 넓지도 않은 한반도에서 옹기종기 모여 사는 민족이라고는 하나, 하다못해 한민족의 힐링 푸드 김치조차도 맛이 제각각인 것처럼 엄연히 각자의 고향은 있는 법. 전쟁 통에 불어오는 부산의 낯선 해풍과 거친 사투리 속에서 실향민들이 이북 땅을 그리워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열악한 상황 속에서 고향을 실감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 언론을 통해 고향 소식을 접할 수도 없었고, 피난길에 세간살이를 일일이 챙길 여력도 없었을 것이다. 당장 먹고, 자는 일조차 막막하고 길에서 생이별한 가족의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던 실향민들에게, 그나마 고향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음식 아니었을까.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하나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찾은 것처럼, 어떤 맛이 존재를 위로하는 힘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다문화 인구 비중이 높은 지역일수록 주거나 의복 문화보다 가장 먼저 현지 요리를 판매하는 음식점이 들어서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픽사베이

그렇게 보면, 이북 출신 실향민들이 그들의 힐링 푸드라 할 수 있는 냉면을 부산에서 어떻게든 먹어보려 했던 것이 새삼 처절하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메밀이 주재료인 냉면을 초기에는 어찌어찌 엉성하게라도 만들어 먹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메밀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때마침 구호물자로 밀가루가 쏟아지자 궁여지책으로 메밀 대신 밀가루에 감자 전분을 섞어 탄생한 것이 바로 밀면이다. 이쯤 되면 진짜 밀면은 냉면의 사촌 동생인 셈이다. 그것도 전쟁 통에 태어난, 안쓰럽고도 귀한 사촌 동생.

부산 최초의 밀면 가게로 알려진 ‘내호 냉면’은 1952년 남구 우암동에서 시작되었다. 밀면 가게인데도 ‘냉면’이라는 이름을 버리지 않은 건, 밀면의 원래 이름이 ‘경상도 냉면’, ‘밀 냉면’이었기 때문이다. 항간에 들리는 말로는 성질 급한 부산 사람들이 그 이름을 줄여 ‘밀면’으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있다. 내호 냉면의 창업주인 이춘복 씨도 함경도 출신의 실향민이다. 밀면은 고향을 그리워하던 마음이 만들어낸 음식인 셈이다.

그렇게 탄생한 밀면이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부산의 대표 음식이 되었다. 지난 2009년에는 공식적으로 부전동의 ‘춘하추동’, 연제구 연산동의 ‘가야 할매 밀면’ 등 두 곳이 부산 향토 음식점으로 지정되었다. 고향 이북의 냉면을 그리워하며 실향민들이 빚었던 그 밀면이, 이제는 타지로 나간 부산 사람들이 고향을 떠올리는 음식이 된 것이다. 결국 그들의 고향이 우리의 고향이 되었다. 그리운 것들은 그렇게 서로를 닮는다.

그래, 먹자. 밀면 먹자.

며칠 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있었던 일이다. 선글라스가 없으면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 정도의 여름 햇볕 아래에서 나를 포함한 여섯 명은 버스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전광판을 버릇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그중 50대와, 20대 여자는 모녀지간으로 보였다. 억양으로 봐선 바다를 보러 타지에서 온 관광객은 아니었다. 분명하고도 친숙한 부산 사투리. 두 여자는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햇볕이 뜨거워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점심 메뉴를 고민 중이었다.

“엄마, 여기서 남천 쪽으로 내려가면 빵집 많다? 남천동을 빵천동이라고 한다더라.”
“에헤이! 그래도 밥을 무야지(먹어야지), 빵을 무가(먹어서) 되겠나?”
“아니면, 131번 타고 시청에서 내려서 거제시장에 칼국수 먹으러 가까? 거기 생활의 달인에도 왔다던데”
“아이고, 가시나야! 이 더운 날에 칼국수는 무슨 칼국수! 더버(더워서) 죽을라카나.”
“아니면 엄마, 49번 타고 부산대 갈래? 내 거기 맛있는 데 많이 안다!”
“됐다, 마! 그 대학생들 먹는 밥집이 다 거서 거지(거기서 거기지). 저거 20번 타면 서면 간다 아이가?”
“아, 엄마! 서면이나 부산대나 밥집은 똑같다! 서면에 술집 많아서 낮에 가봐야 볼 것도 없고. 아예 남포동 갈래? 엄마 생선구이 좋아한다아이가.”
“가시나가 오늘 와 이라노? 니 안 덥나?”

참 쿵짝이 안 맞는 모녀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도대체 저 모녀의 점심 메뉴는 무엇이 될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 짜증 섞인 대화가 오가는 동안 나와 모녀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바뀌었다. 웬만큼 정차할 만한 버스도 다 지나갔다. 내가 기다리던 20번 버스는 이제 5분 뒤 도착. 샤워하고 나온 지 20분 만에 이마와 콧등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 제발 버스에 사람이 많지 않았으면. 에어컨을 좀 시원하게 틀어놨으면.

“엄마는 그러면 뭐 먹고 싶은데?”
“그냥, 마 시원하고 맛있는 거.”
“그러면 밀면 먹자.”
“밀면 집이 여기 어데 있노?”
“바로 앞에 있네. 광안 밀면.”
“저기 밀면이 맛이 있다카더나?”
“엄마, 밀면은 엥간하면(웬만하면) 다 맛있거든요? 어, 초록불이다. 길 건너자.”

남천동부터 시청, 부산대, 서면, 남포동 자갈치까지. 10여 분 동안 먼 길을 돌고 돌던 모녀의 점심메뉴가 결국은 바로 길 건너 밀면 가게라니. 황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론 같은 부산 사람으로서 결국 밀면을 선택한 그 심정을 알 것 같기도 해서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곧이어 다행히도 한산한 20번 버스가 왔고, 나는 도로 쪽 창가 자리에 앉았다. 부산스럽게 길을 건넌 모녀의 여전히 찡그린 표정에, 만족스러운 점심 메뉴를 골랐다는 안도감이 언뜻 비쳤다. 만나기로 했던 친구에게 방금 막 20번 버스를 탔다고, 한 15분쯤 걸린다고 톡을 보냈다. 톡을 보내고서 잠시 고민하다 전화를 걸었다. 야, 우리 오늘 점심은 밀면 먹자. 아니 꼭 거기 아니어도 괜찮지. 너희 동네에도 맛있는 밀면 가게 있을 거 아냐. 그치? 있지? 그래 거기에서 먹자. 밀면 먹자. [오피니언타임스=김경빈] 

 김경빈

 글로 밥 벌어먹는 서른. 라디오 작가 겸 칼럼니스트, 시집 <다시, 다 詩>의 저자.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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