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친구가 차를 멈춘 곳은 작은 시골동네였습니다. 작은 동네지만 결코 작지만은 않은, 뭔가 부조화스러워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어린아이가 양복을 입고 넥타이 매고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은 것 같다고나 할까요? 특히 술집과 모텔, PC방 같은 간판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제가 의아스러운 눈길을 보내자 친구가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을 해줬습니다.

“여기가 천도리야. 한 때는 라스베이거스라고 부르던 곳이지. 대단한 환락가였어. 원통, 심지어 인제 사람들도 이곳으로 술을 마시러 왔으니까.”
“이 작은 동네가? 그런데 왜 ‘한 때’야?”
“응, 술집이니 뭐니 하나 둘 빠져나가면서 마을 전체가 공동화됐거든.”
“왜? 무슨 일이 있었는데?”
“군 장병들의 위수지역이 확대되면서부터 그렇게 됐어. 외출‧외박이 제한될 때는 면회객이든 장병이든 여기서 먹고 마시고 잘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원통이나 인제는 물론 서울까지도 갈 수 있게 됐거든.”

아! 그렇구나. 군부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은 신기루처럼 실체가 없는 곳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눈으로 봐서인지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에 생기가 없어 보였습니다. ‘취재 근성’이 스멀거리면서 몇 마디 나누고 싶었지만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꼴이 될까봐 참고 말았습니다.

©플리커

글을 쓴다는 핑계로 인제 내설악에 머문 지 두 달. 저를 이곳까지 부른 친구가 인근 지역을 돌아보자고 해서 나선 참이었습니다. 그날은 원통에서 양구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 지역에서 군 생활을 하거나 가본 분들은 잘 알겠지만, 민가보다는 군부대가 더 많은 곳입니다. 가끔 ‘제3땅굴’ 같은 안내판도 눈에 띄고요. 최전방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차는 서화면을 벗어나 양구 권역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다시 멈춘 곳은 해안이라는 면소재지. 조금 우스운 이야기지만, 저는 친구가 ‘해안’에 간다길래 바다로 가는 줄 알았습니다. 양구가 내륙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海岸이 아니라 亥安이었습니다. 돼지가 편안한 곳? 그게 아니라 돼지가 마을의 안녕을 가져왔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이곳에 뱀이 많았는데 조선말에 한 스님의 권고로 돼지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사라졌다고 하지요.

해안면은 남한 최북단에 위치한 면 소재지로, 동그랗게 형성된 분지 안에 면 전체가 잠기듯 들어서 있습니다. 세상을 제법 돌아다녀 본 저도 그렇게 ‘예쁜’ 분지는 처음이었습니다. 운석 충돌로 분지가 형성됐다는 설도 있었지만, 암석의 차별침식이 보기 드문 분지를 만들었다고 하지요. 번화가도 형성돼 있고 농지도 넓어서 삶이 꽤 풍족해보였습니다. 주민들을 여럿 만났지만, 최전방 특유의 긴장감 같은 것은 조금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정작 제 눈길을 끈 사람들은 엉뚱한 곳에 있었습니다. 길에서 좀 떨어진 들판에 외국인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친구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사람들 외국인 근로자야? 외국인들이 최전방까지 와서 일을 해?”
“그럼. 땅은 넓은데 일꾼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고추 농가는 많으면 20명까지 써. 봄부터 가을까지 컨테이너 박스에서 기숙하면서 농사를 짓고 겨울엔 대도시로 나가지.”
“으음, 컨테이너 박스… 그럼, 겨울에 도시로 나간 친구들은 무엇을 하지?”
“일거리를 못 얻으면 여기 저기 배회하면서 봄을 기다리겠지.”

최전방 지역까지 와서 외국인 근로자를 볼 줄은 몰랐습니다. 겨울에는 쫓기듯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도 가슴이 아팠고요.

©플리커

해안분지를 제대로 조망하려면 해발 1050m의 돌산령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분지의 모양이 마치 거대한 접시 같다고 하지요. 거기서 ‘펀치볼’이라는 이름이 나왔습니다. 큰 접시 모양의 분지를 보고 미군과 종군기자들이 ‘화채그릇’이라는 뜻의 펀치볼(Punch Bowl)이라 부른 것이 공식 명칭처럼 된 것이지요. 6·25전쟁 때 총알이 떨어지자 육탄전을 벌였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제가 돌산령 정상에 올라갔을 땐, ‘화채그릇’은커녕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습니다. 운무가 얼마나 대단하던지요. 그리고 춥기는 얼마나 춥던지요. 여름이란 말이 무색했습니다. 그러니 거기 오래 있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길을 되짚어 내려와 다시 원통으로 향했습니다.

원통에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말도 있듯이 원통 역시 군사지역입니다. 터미널에 가면 버스를 타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은 군인이지요. 친구와 찾아간 음식점은 두어 번 간 적이 있던 돼지갈비집이었습니다. 그날 제 시선을 끌었던 마지막 사람을 그 집에서 만났습니다. 전에 없었던 여성 종업원이었는데요. 필리핀이나 태국쯤에서 온 게 아닐까 짐작되는 외모였습니다. 농가뿐 아니라 전방의 음식점까지 외국인이 진출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제 관심을 끈 것은 그 종업원이 외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일하는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사람이 보든 안 보든 늘 웃고 있었습니다. 가지런한 이를 내놓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조금의 가식도 섞이지 않은, 자신이 하는 일이 즐겁다는 표정 그 자체였습니다. 그녀는 또 잠시도 쉬지 않고 손님상을 살폈습니다. 그러다 누가 부르는 기색만 있으면 지체 없이 달려갔습니다. 한국말을 모르는데도 손님이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아채고 즉시 갖다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자리가 비면 빠르게 치우고 설거지까지 했습니다.

종업원이라면 누구나 그래야 한다고, 고용됐으니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제게는 무척 낯선 모습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음식보다는 그녀의 밝은 미소로 남다른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편지를 마칠 때가 되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두서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말았네요. 긴장감이 넘치는(혹은 생각보다 너무 평화로운) 전방에 대한 르포도 아니고, 전방지역까지 진출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취재담도 아니고, 여행기도 아닌 말 그대로 ‘잡문’이 되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비록 주마간산이지만 이 나라 최전방의 모습을 가감 없이 스케치해서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저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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