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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서석화의 참말전송]
서석화 | 승인 2018.07.10 11:03

[논객닷컴=서석화] 참 많은 걸 버려왔다. 욕심인 줄 모르고 꿈이며 소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외로운 게 싫어 아니다 싶으면서도 희미하게라도 이어오던 관계들. 버리는 것은 우려만큼 어렵지 않았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인정만 하면 그만이었다. 사람도 사물도 꿈조차도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은 막상 버릴 때 아깝지도 않았다. 당연히 미련도 남지 않았다. 내 마음만, 그리고 내 결심만, 실행하면 간단히 손 털고 돌아설 수 있는 일이었다.

©픽사베이

지난 십 년, 그렇게 나는 ‘내려놓음’이라는 미명 아래 많은 걸 ‘버려왔’다. 버려왔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건 내려놓았다가 다시 올려 붙잡을 어떤 아쉬움도 없다는 걸 말한다. 잔뜩 곪아 부푼 화농을 도려낸 부위는 오히려 상큼했고 딱지가 떨어진 자리는 새살이 맑게 드러났다. 욕심을 버리자 비로소 꿈, 소망, 기도라는 단어가 내 것이 되었다. 어지러운 지하철 노선의 생소한 역 같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버리자 내게 익숙하고 보고 싶은 몇 사람의 이름을 다시 수첩에 적는 환희의 시간도 찾아왔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모으는 것보다 버리는 게 몇 배나 어렵다는 사람들을 보면 저절로 몸과 마음이 불편해졌다. 버리는 걸 ‘포기’라고 규정지으며 포기를 미화한다고 비웃고, 좋은 사람, 좋은 모임만 유지하면 그게 자초하는 ‘고립’과 뭐가 다르냐고 되묻는 사람들. 그들은 열 손가락을 있는 힘껏 벌려 욕심을 꿈이라고 움켜쥐고, 천 개 만 개의 끈을 온 사방에 펼쳐 그냥 아는 사람을 ‘친구’로 엮는 노동으로 늘 피로에 지쳐 있었다. 내 눈에는 그랬다. 나는 그런 불편과도 이별하기 위해 어설프게 마음 언저리에 있던 사람들도 버렸다.

버리는 게 힘들지 않으니 세상에 어려운 일이 없는 것 같았다. 안간힘으로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쏟아 놓으니 여리지만 싱싱한 진짜 내 것 몇 개가 손바닥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 날은 많지만 드물게 걸려오는 전화 벨 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단박에 알 수 있는 기쁨도 컸다. 많은 부분이 명확해졌고 명확한 만큼 단조로워졌으며, 단조롭다는 건 내가 나에게 몰두할 수 있는 진짜 내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바라보는 데 열중했다.

©픽사베이

그런데 오늘 문득 한 단어 앞에서 종일 쩔쩔매고 있다. 어떤 상상도 뒷받침되지 않았고 어떤 상황도 그 단어를 찾아낼 거리를 만들지 않았는데 갑자기 떠오른 단어.

돌이키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뜻을 가진 이 단어.

난공불락의 어떤 상대를 만난 것처럼 모든 용기와 의욕이 좌절되는 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버리는 것은 나 혼자의 마음과 결심만 있으면 다 가능했고 그래서 애착과 집착만 끊어내면 다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돌이킨다는 것은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직관 때문이었다.

돌이키는 것이야말로 세월을 비롯해 온 우주의 도움과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젊음이 그렇고, 멀어진 사랑이 그렇고, 끊어진 관계가 그렇지 않은가. 내 힘으로 되는 건 버리는 것까지였다. 돌이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많은 걸 버렸다고, 버릴 수 있었다고 자신했는데, 돌이킬 수 있는 무엇도 내 힘만으론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순간은 참혹했다. 당연히 무서움이 찾아왔다.

무언가를 버릴 때 왜 나는 그것을 원래의 상태로 돌이키고 싶어 할 수도 있다는 걸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내가 버렸으므로 내가 원하면 언제든 회수도 가능하다고 자만했던 건 아닐까? 버리는 것의 주체도 나였듯이 돌이키는 주체도 나라고 그냥 믿어왔었다. 당치도 않은 아전인수 격인 망상이 아닐 수 없다.

물건도, 사람도,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 중심엔 함께 한 시간과 그 시간이 수평을 이루는 저울이 존재한다는 걸 놓치고 살아왔다는 자각이 뼈아프다. 버리는 게 내 마음대로였듯이 돌이키는 것도 내가 원하면 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나를 맞아줄 걸로 그냥 믿어왔다는 게 부끄럽다. 버린 자리에 가 다시 주워오면 된다고, 그래서 돌이키는 일도 내 의지요 내 바람이면 언제든 가능하다고 그냥 생각해 온 내게 어이없는 실소가 터진다.

©픽사베이

‘돌이키다’는 단어가 오만했던 내 시간을 종일 가난하게 한다. 돌이킬 수 없게 멀리 가버린 청춘과 청춘이 머물렀던 시간과 사람, 일상에 애드벌룬을 띄워 바라보고 키웠던 꿈. 거울을 보니 돌이킬 수 없게 나이 든 내가 보인다.

결국, 나는 옳게 버리지도 못했다. [논객닷컴=서석화]

서석화

시인소설가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한국 가톨릭 문인협회 회원

저서- 시집 <사랑을 위한 아침><종이 슬리퍼> / 산문집 <죄가 아닌 사랑><아름다운 나의 어머니>< 당신이 있던 시간> /  장편소설 <하늘 우체국등 다수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석화  shiren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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