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마케팅]

[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어머나, 15만원 입금 됐어요.” 요렇게 아내가 문자를 보내왔다. “동그라미 하나 빠진 거 아냐?”, “아니, 확실해요. 자기, 하루 종일 했다면서...이게 뭐야?” 한심해 하는 아내의 표정이 어른거린다. 15만원! 아침 6시에 일어나 1시간 반 출근길을 뚫고 서울의 끝자락 연수원에 가서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서울시 모 산하기관 워크샵에서 수많은 사업본부 익년 사업계획 발표를 듣고 조언해주고 받은 돈이다. 이름에 혁신 자 붙은 서울시 모 기관에서 4시간 골 빠지게 입주 후보 기업 심사에 토론하고 받은 돈도 15만원이었다. 오가며 들인 하루 7시간, 그것도 2주 후에 왔다. 적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말만으로는 진심이 아니다. 다른 거 혁신 전에 이런 것부터 혁신했으면!

©픽사베이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라며?

필자가 대학생이던 시절에 중국 연변에서 교수를 하는 먼 친척 형님이 온 적이 있다. 수학과 정교수인데, 중국은 지식인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자기 수입이 베이징에 택시 기사만도 못하다고 한다. ‘공산주의 중국이 그래서 못사는구나.’

작년에 프랑스 기자가 글을 썼다. 한국에서 놀란 것이 두 가지 있다고 했다. 하나는 한국 기업이 수억 컨설팅을 받고는 전혀 사업에 반영하지 않는 점이었다. 또 하나는 자신의 아내가 여러 차례 방귀 깨나 꾸는 부인들 모임에서 프랑스 요리 특강을 했는데 강사료는 없고 대신 저녁만 사는 것에 놀랐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한국은 품앗이를 하던 두레의 미풍양속이 있어서인가 보다. 그러면서 목표가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란다. 품바 타령이 절로 나온다. 사실 서울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서울시가 더 심할 뿐이다. 정부 일로 멀리 김해, 공주, 해남 등을 가도 30만원(교통비 식대 포함)이다. 어필을 하면 아주 먼 경우는 교통비를 일부 보전해준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택시 기사, 일용직 근로자 예를 들면서 그 정도면 많은 것이라고 핀잔을 주는... 남의 일에는 아주 관대한 지인들이 있다. 그래서 내가 “힐러리는 한두 시간 강의하고 4억 받고 일본의 석학 오마에 겐이치도 <지식의 쇠퇴>에 해외강의를 2-3일 가면 보통 4억 받는다고 썼어, 그리고 웬만한 외국 명사들 한국에 오면 최소 4-5천은 받아. 억대도 많고. 물론 몇 개 일정을 소화해야 하지만 그래도 직장인 1-2 년 연봉이야...”라고 말하면 “그럼 석학이 되던가” 라고 퉁 친다. 아, 손발이 오그라든다. 역시 적은 늘 내부에 있다. 이게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를 말하는 한국이라니.

지식에 돈을 지불하는 이유

비용은 과거 경력에 주는 것이 아니다. 미래 가치에 주는 것이다. 내가 평가, 심사, 강의를 하면 그것이 자신들 회사나 기관, 지자체의 미래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돈을 주는 것이다. 한 줄 글, 1분 강의에 회사 운명을 바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어서 투자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다. 대부분은 잡소리지만 그래도 어쩌다 잘 새기면 수 천 억짜리 대박도 나오는 것이 전문가의 인사이트다. 택시 기사가 그런 인사이트를 줄 확률은 거의 없다. 방송에 나와서 재담이나 떠는 연예인 Like 강사들에게는 묻지 마 수백만원 준다고 하는데 미안하지만 그들에게서 인사이트가 나올 확률은 거의 없다. 그냥 한바탕 웃고 말 뿐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릴 일이지만 그럼 최저임금 아래 분들 비난이 쏟아질 듯하여(전문가는 국민에 포함되지 않는다. 가진 자들로 분류되어 배격대상이다.) 여기에 글을 쓴다. 수많은 전문가/지식인들이 똥값 취급 받고 있다. 15년 경력의 내 후배는 사립 대학교 강사료 시간당 만 오천원이라며 한숨짓고, 문화부 장관 보좌역까지 했던 경력 30년 선배는 강남 3구 중 한군데서 3일 준비 2시간 컨설팅에 어마무시 5만원을 받았다.

필자 후배가 얼마 전 개업한 ‘생각식당’이라고 있다. 원래는 통찰력 식당이라고 하려 했는데 필자 책 <생각 좀 하고 말해줄래>를 읽고 생각 식당으로 바꿨다고 했다. 크라우드 펀딩도 200% 달성했고 방송, 언론의 인터뷰가 잇따르고 벌써부터 손님이 꽤 많이 찾는다고 한다. 비용은 한 시간에 20만원에서 5백(난이도, 횟수가 다름)까지 다양하다. “놀랍다.”, “너무 멋있다. 생각에 지불하는 한국을 열었다”는 지인들 격려가 쇄도한다고 한다. 그들의 격한 호응은 당해본 자의 한(恨)에서 왔을 것이다.

사전에 말하라

액수와 함께 필자가 이 사회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점잖은 분들은 치사해서 차마 말 못하는 것들이다. 하나는 금액이 적더라도 요청 전에 미리 금액을 말해주시고 그리고 지불 일정을 알려주고 조속하게 지불하라는 것이다. 낮은 단가야 정부/시가 정한 것이니 이것은 추후 입법사항이라 해도 이 두 가지는 실무자 또는 회사차원에서 능히 할 수 있다.

외국계 회사는 이 부분이 깔끔하다. 시간당 금액도 많지만 일단 사전에 금액을 말하고 해당 일이 끝나면 3일 이내에 지급이 된다. 감동이다. 한국은 언제 줄 건지, 얼마인지 깜깜이다. ‘그냥 주는 대로 받아.’ 이런 관행은 프리랜서 전문가들을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 필자가 보니 이 판에 교수들이 많다. 교수들은 금액을 묻지 않는 것 같다. 적다고 하면서도 왜 하냐고 물으니 추후 프로젝트를 받을 가능성, 싱싱한 정보획득, 학교나 제자들에게 ‘나 이렇게 잘 나가는 사람이야’를 보여주는 데 딱이니 몇 푼 비용은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세비하고 특별활동비 많이 받는 국회의원들과 시의원들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 지식인 단가에도 신경을 쓰기 바란다. 한국이 잘 되기를 바란다면 무엇보다 전문가, 지식인, 예술인 등에 대한 비용 대우를 잘 해줘야 한다. IT 강국보다 중요한 게 지식 강국이다. 그래야 기업에서 뛰는 후배들도 ‘전문가가 되면 나가도 먹고 살 수 있구나’ 싶어서 비굴한 승진보다 자기 일에 전문가가 되려고 할 것이다. 정부, 서울시부터 지식 단가를 현실화하라. 지금보다 두 배는 올려야 한다. 매년 모르쇠 국방비, 4대강 프로젝트에 들어간 녹조라떼 돈 10분의 1이면 충분하다.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2018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전 제일기획 AE/ 전 KT&G 미래팀장
저서< 컬처 파워> <꿈꾸는 독종> <생각 좀 하고 말해줄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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