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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아이[신명관의 모다깃비감성]
신명관 | 승인 2018.07.11 11:59

[논객닷컴=신명관] 엄마. 예전 천둥치던 밤에 엄마 품에 안겨서 잤던 나를 기억해. 그때 나 진짜 어렸는데. 초등학교 6학년 형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보이고, 중학생부터는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지금 대학 연구동에서 빨래를 돌리고, 과사무실로 올라와 빨래를 널고, 톱 때문에 세 바늘을 꿰맨 손바닥을 다시 한 번 소독하고 나서 쇼파에 앉았어. 7월이 오지 않은 여름은 아직 그렇게 덥지도, 답답하지도 않아.

지금쯤 엄마. 엄만 아마 오른편으로 누워서 핸드폰으로 DMB를 보고있을 것 같아. 아니면 씻은 다음에 꿀 섞은 갈색 팩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번 주말에 염색하는 건 봤으니까 오늘은 안할 것 같아. 요즘 사무실에 손님은 얼마나 와? 가끔씩, 아주 가끔씩 생각하는 건데, 집을 놔두고 학교로 가서 살고 있는 내가, 엄마도 놔두고선 학교로 와버렸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 이건 아직 돈도 제대로 벌지 못하는 철없는 아들의 서툰 책임감일까, 아니면 단순한 회피일까.

©픽사베이

엄마. 나는 요즘 많은 걸 알게 되면서도 점점 바보같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 학교에 있는 애들을 보면 어리다고 생각하면서도, 학교 밖의 사람과 일을 하다보면 내가 알아야 하는 게 너무 많거든. 모르는 게 너무 많은거랑은 달라. 두 개가 묘하게 달라.

나는 지금 스물 여섯 살이야 엄마. 가계부를 쓰는 것도 아직 서툴고 귀찮아서 꾸준히 못해. 스물 여섯의 엄마는 어땠어?

무언가를 새로 ‘아는 것’과 ‘배우는 것’이 너무 다르더라. 나는 지금도 배우는 건 어설퍼. 그런데 이 와중에도 하고 싶은 건 너무 많아. 누나를 낳은 엄만 그럴 여유도 없었겠지?

사회에 무난하게 녹아들려면 들어야 하는 말이 있는데 나는 아직도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할 때가 잦아. 이 나이의 엄마는 어땠어?

엄마.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으면서도 혼자가 편할 때가 많고, 일단 살아야겠으니 아무 생각없이 일을 하고 있을 때가 있어. 실컷 웃고 떠들고 있는 중에도 다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들어. 그런데 누가 내게 물어보면 잘 살고 있다고 대답해. 어찌보면 나름대로 잘 사는 거 같아서 혼란스러워. 엄마가 볼 때는 어때? 나는 아직도 아둥바둥 거리는 것처럼 보여? 아니면 잘 살고 있어보여?

내가 태어날 때 태몽으로 호랑이를 봤다 그랬잖아. 덩치는 집채만해서 엄마를 걸고 넘어트리면서 놀고 있었다고. 옛날에는 재미있다는 듯이 들었는데 요즘은 엄마한테 많이 미안해. 그 덩치에 그렇게 노는 호랑이라니. 혼비백산해서 도망치려는데 계속해서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나 때문에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어서.

나야 애를 키운 적은 없지만, 나는 지금도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랑만 있을 때도 가끔 두려울 때가 있어. 가족이든 친구든 애인이든 내가 아닌 남이니까. '다른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 하나를 26년간 별로 바라는 것도 없이 엄마가 키웠다는 게, 나는 아직도 짐작이 가지 않거든.

엄마. 나는 잘돼가. 적지만 월급을 받고, 내 직속 상관에게 이번 상반기가 끝날 때까지 지적 한번 받은 것도 없고, 학교 밖은 몰라도 선후배 사이에선 글 꽤나 쓰는 놈으로 대우받고, 원고료 받으면서 글도 쓰고, 내게 마음의 문을 열어준 사람도 몇 있어. 수틀려도 요식업계로 가면 바로 일자리를 구해. 심지어 요즘은 정치계에도 닿을 수 있을 것 같아. 나 아끼는 분이 비서같은거 할 생각 없냐고 물어보니까. 대단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 요즘은 아닐 수도 있겠다. 내가 이렇다 하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적어졌거든. 직장인은 날고 기어도 직장인이라서 그런가봐. 그래도 생각보다 우울하거나 기분 나쁘진 않은 것 같아.

난 요즘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모든 사람들이 그저 대단해보일 때가 있어. 후배 하나가 빛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내용을 연극에 넣었대. 그는 스스로 빛나지 않아도 아주 예쁘고 멋진 사람이란 걸 알게 된걸까 싶기도 해.

엄마. 엄마의 삶을 나는 몰라. 앞으로도 알게 될 일은 많이 없을거야. 하지만 나는 법적으로 성인이 된 지 오래인데, 자꾸만 엄마에게 물어볼 것들이 더 생겨나고 있어. 그건 나의 삶이기도, 엄마의 들숨이기도, 모두의 날숨이거나, 한숨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 이게 설마 내가 엄마의 발목을 걸고 넘어지는 걸까 싶기도 해.

미안해 엄마. 아직 좀 덜 컸나봐. 키는 자랐는데, 앞으로도 쉬어야 할 숨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봐. 싫다면 안할 테니까 엄마, 오래 있어줘. 내 증손자 볼 때까지. 어디 엄마한테 저주냐고 그러겠지만 내 덩치가 지금 내가 근무하는 곳 뒤쪽에 있는 산만큼 커지게 되면 따끔하게 혼나고 나서 엄마 등에 태운 뒤에 보고싶은 풍경들만 눈에 보여주게 하고 싶어서 그래.

잘자 엄마. 또 새벽에 깨지 말고.
새벽에 깼다고 또 걸레질 하지 말고.
잘자. 

 신명관

 대진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예정

 논객닷컴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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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관  silbs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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