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오피니언타임스=안희진] 20여년 전쯤 됐으려나? ‘장애판’에서 만난 동료 10명과 그들이 추천한 1명씩, 도합 20명이 <장판걱정연구회>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관련기관 종사자와 장애인, 장애인부모와 목사 신부 스님 등 종교계 인사까지 참여한 스터디그룹이자 사회통합의 교두보를 자처하는 인식개선 실천모임이다.

1년이면 분기별로 네번 만났다. <장애인문제와 현실 그리고 현장> 등 관련 발제와 사례연구를 통해 실천방안을 토론했다. 반기별로 가졌던 세미나와 초청강연은 당시로는 꽤나 센세이셔널한 주제와 내용을 다뤘기 때문에 조금은 괜찮은 모임으로 알려졌었지만, 10년전쯤 만장일치로 해체를 결의해 현재는 없는 모임이다.

해체될 무렵 이런 일이 있었다. 장애인과 장애인가족, 관련실무자 등 100여명을 초대하여 초청강연을 가졌다. 강사인 모 기관장은 자신이 겪은 장애인가족의 애환과 애닲은 사연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러나 잠깐 심금을 울렸을 뿐 제도적, 구조적 모순과 장애인의 삶과 현실에 대한 진단은커녕 고학력에 좋은 직장에 다니는 자식자랑과 자신이 자식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싸웠는지 ‘쩐의 전쟁’과 ‘비대칭전투 비화’ 등 개인적인 회고로 일관했다. 장애를 한탄할 게 아니라 공부를 시켜서 이를 극복해야 하며, 장애인을 무시하는 모든 것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것인데, 지당한 말이었지만 내 귀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을 ‘귀족장애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로만 들렸다. 강연회는 장애인과 장애인가족의 한숨과 비난 속에서 끝났다.

©픽사베이

강연회가 끝나고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도 약간의 소동이 벌어졌다. 조금 늦은 시간에 40여명이 갑자기 들이닥친 때문인지 배식이 늦어지고 종업원들이 우왕좌왕하자 그 회장은 순식간에 열을 받더니 종업원에게 “장애인이라고 무시하느냐”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식당업의 자세와 종업원의 태도 등 식당개혁을 부르짖으며 훈계를 하는데 온통 욕설과 모욕이었다. 부모로서 나름 애틋한 마음을 전하던 입, 같은 입에서 저런 욕설이 터져 나올까 싶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분의 인식개선 방식은 일단 ‘장애인을 무시하느냐’로 선방을 날린 후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얘가 어떤 자식인데...’와 같은 잽으로 정신을 빼놓는 패턴을 지녔다고 여겨졌다. 국회나 관청, 학교, 사회생활에서도 그런 방식이었겠다 싶으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따위가 무엇인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 필요도 없고, 수많은 장애인들이 몇 년째 거리에서 외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지도 않을 사람이겠다 싶었다. 또한 무슨 일이든 제 맘에 차지 않으면, ‘장애인을 무시하느냐?, ’장애인에 대한 애정이 있느냐’로 싸우자고 덤벼들어 끝내 항복을 받아내면 된다고 믿는 사람일 테니 그렇다.

그 꼴은 마치, 그저 평범한 이웃, 사회통합의 교두보가 되어 줄 많은 사람들에게 “제발 장애인을 무시해 달라”, “애정도 갖지 말아달라”고 외치는 것밖에는 안되는 개념없는 기관장이니 그 기관의 정체성까지도 의심하게 됐다. 그러니까 “특별한 혜택을 받은 장애인이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으며 특별한 미래를 맞아야겠다”는 그분 앞에서 “보통의 장애인이 보통의 의료와 교육을 받고, 보통의 직장에서 보통의 대접을 받으며 보통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는 우리의 목표와 희망이 얼마나 하찮고 웃기는 일로 느껴지겠는지... 그분의 가치관이나 논리대로 한다면 ‘가난한 자 중에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자 중에 가장 소외된 장애인’이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시대에 더욱 내몰리고 있는 까닭은 공부안하고 게으른 탓이요, 자식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부모 때문인 것이다.

인식개선은 말하고 듣는 것만이 아니다. “보이는 것이요, 보는 것”이다. 사치스런 장신구에 명품을 휘감은 기관장이 배곯고 소외되고 지친 장애인과 가족에게 ‘유학보내세요. 파이팅!’ 쯤의 폭언을 늘어놓는 것이 인식개선이란 말인가. 부모교육이란 말인가. 삶의 모습이 그 사람을 대변한다. 사회통합의 교두보는커녕 사회통합에 저해요인이 될 그릇된 인식과 열받아 욕설하는 모습이라면 사람 취급조차도 버거운데, 과연 나는 어떤 얼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오히려 교두보를 파괴하는 삶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냉철한 시대정신과 바른 가치관을 지닌 아름다운 삶의 얼굴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날의 감상이었는데, ‘건방지게 네까짓 것들이 무슨 걱정?’이냐며 남들이 <장판걱정연구회>를 오만방자하게 볼 수도 있다는 한 회원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기로 하고 그로부터 석달 후 우리는 만장일치로 <장판걱정연구회>를 해산했다.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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