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렬의 맹렬시선]

[오피니언타임스=이명렬] 얼마 전 개미를 샀다. 난 개미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매우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결혼 전 2년 동안 살았던 원룸에는 개미 떼가 들끓었다. 개미가 다니는 주요 길목에 약을 놓고 살충제를 뿌려대도 소용이 없었다. 개미라고 하면 질색이었다. 하지만 정서 발달에 좋다는 아내의 의견과 개미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에 빠져 밤마다 개미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딸의 성화에 지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린 시절 벌레를 참 좋아했다. 유치원 뒷마당에 가득했던 방아깨비와 메뚜기는 잡기도 쉽고 흥미진진한 장난감이었다. 메뚜기를 여럿 잡아 놓고 멀리 뛰기 내기도 했다. 가끔은 왕사마귀도 잡아 곤충 채집함에 넣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짓궂은 녀석들은 채집함 앞에 메뚜기를 들이대며 장난을 쳤고 사마귀는 톱니 같은 앞발로 허공에 분주히 도끼질을 해댔다. 눈 앞에 먹이가 잡히지 않자 화가 났는지 날개도 푸드덕거렸다.

여러 손을 오가다 느슨한 채집함 뚜껑이 열리자, 사마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교실 천장으로 날아올랐다. 사마귀는 의외로 날렵한 곡선을 그리며 비행했다. 선생님과 여자아이들은 질겁을 하며 구석 식당칸으로 도망쳤고, 몇몇은 울음을 터뜨렸다. 소동에 놀란 원장 선생님이 파리채를 들고 나서야 겨우 소동이 끝이 났다. 채집함 주인이라는 이유로 나는 크게 혼이 났고 소동의 장본인은 원장님 손에 잡혀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음날 가슴, 배, 다리 곳곳에 바늘을 꽂은 채 ‘왕사마귀 표본’이란 이름표를 달고 나타났고, 먼저 입주한 배추흰나비, 나방과 함께 유리 액자 속에서 추운 겨울을 따스하게 보냈다. 점차 풀벌레보다 TV와 컴퓨터가 재미난 나이가 되었고, 어느새 손톱만 한 쌀벌레에게도 살충제 스프레이부터 찾는 겁쟁이 어른이 되고 말았다.

©이명렬

아내가 고른 개미는 일본 왕개미 종으로 이름과 달리 한국에서 흔한 고유종이라고 했다. 개미는 생각보다 비쌌다. 대동강 물을 돈 받고 팔던 봉이 김선달이 백화점 마트에 진열된 해외 생수의 가격표를 봤을 때 기분이랄까? 집 앞에 흔하디 흔한 개미를 돈을 주고 사자니 내심 억울했다. 게다가 여왕개미는 몸집도 크고 알도 낳지만, 만원이나 더 비쌌다. 아내는 고심 끝에 여왕개미 포함 옵션으로 결제를 했고, 이틀 후 원통형 플라스틱 안에 젤라틴이 가득 찬 개미집이 택배로 배송되었다. 여왕개미 1마리, 보통 개미 17마리, 30여 개 알 더미의 구성이었다. 별도 먹이를 줄 필요 없이 젤라틴에서 수분과 영양소를 얻는다는 설명서도 동봉되어 있었다. 가족 모두가 보기 좋은 거실 장 위를 개미집으로 정했고, 더듬이로 분주히 탐색을 마친 일개미들은 젤라틴을 물어 뜯으며 개미굴을 파기 시작했다. 제국의 시작이었다.

몸집이 작고 연약해 보이는 몇몇 개체는 일은 하지 않고 좌우로 머리를 흔들며 춤을 췄다. 아내는 택배 운송 중 얻게 된 심한 멀미라고 병을 진단했다. 개미는 서서히 움직임이 잦아들더니 다리를 오므리며 몸이 굳어갔다. 매일 밤 한 마리씩 모두 일곱 마리가 죽었다. 좁고 투명한 공간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는 시리도록 선명했다. 딸은 슬픈 표정으로 왜 개미가 죽느냐고 물었다. 살아 있는 것은 언젠간 죽게 된다고 말해주었다. 딸은 살아남은 개미들을 빤히 쳐다보며 남아있는 개미들도 죽느냐고 되물었다. 난 개미 알을 가리키며 개미들도 언젠간 죽게 되지만, 알에서 새로운 개미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투명한 개미집은 삶과 죽음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알집 프로그램의 최신 버전 같았다.

정착 생활을 하는 이에게 죽은 이를 보듬어야 하는 건 숙명 같은 일이다. 여왕개미는 일개미가 뜯어낸 젤라틴 덩이를 덮어 죽은 개미들만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친절하게도 안내서에는 죽은 개미 사진과 함께 곰팡이가 슬기 쉬우니 사체는 꺼내라고 적혀 있었다. 아내가 개미집 뚜껑으로 살며시 티스푼을 집어넣었다. 여왕개미와 병정개미가 스푼을 물어 뜯으며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성질 급한 병정개미 2마리가 탈출했다. 아내가 소리를 질렀다. 개미도 놀랐는지 멀리 움직이진 않았다. 차마 손으로 잡지 못하고 물티슈로 도망치는 개미들을 몰아세운 뒤 개미집에 밀어 넣었다. 혼란한 틈을 타 개미 사체를 꺼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덤을 파헤치고 사체를 탈취하는 건 중죄다. 짜릿한 희열과 함께 불안감이 엄습했다. 개미 무덤과 함께 탈출 시도도 늘어날 것이다. 아내와 나는 개미들이 잠든 밤을 틈타 기습하는 것으로 범죄 모의를 마무리했다.  

큰 소동에도 보모 개미는 오로지 알만 지켰다. 종일 입에 알 더미를 물고 다니며, 알이 썩지 않도록 핥았다. 병정개미는 굴 입구를 돌며 순찰했다. 각자 맡은 바 일이 명확했고 바빠 보였다. 매일 밤 중지 손가락만큼씩 개미굴이 늘어났고, 일주일이 지나자 원통형 개미 집을 삥 둘러 여러 갈래의 개미굴이 완성되었다. 가장 깊숙하고 아늑한 곳은 개미 알 방이 되었다. 굴을 파던 일개미들은 굴 파기를 끝내자 알 보살피는 일을 도왔다. 보살핌 속에서 알은 통통히 살이 오르며 고치가 되어 갔다. 콘크리트로 가득 찬 아파트 거실에 새로운 개미 제국이 자리잡았다.

여왕개미 수명이 7~10년, 일개미의 수명은 10개월 정도라고 한다. 영원한 제국은 없지만, 그래도 한껏 영화를 누렸으면 한다. 처음엔 그렇게 반대했건만 이제는 더 큰 집을 사주고 싶은 맘이 드는 걸 보니 사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하다. 출근길에 개미 알이 얼마큼 자랐나 훑어보고 가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개미 무덤이 늘어나 있으면 마음이 아프지만, 그것도 삶의 일부분임을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딸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삶의 무게와 죽음의 필연성을 설명하기에는 내공이 많이 부족하다. 갓 1m를 넘긴 딸아이의 눈높이는 내가 보지 못한 것들, 애써 무시했던 것들을 쉽게 찾아내기에 나도 좀 더 단단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반대를 무릅쓰고 개미를 구매한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더불어 살아남은 개미 식구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늘 그렇듯 끝까지 살아남은 자가 승자다.

이명렬

현 메타비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달거나 짜지 않은 담백한 글을 짓겠습니다.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