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의 날아라 고라니]

[오피니언타임스=고라니] 민원업무를 하며 만나는 사람은 두 종류로 구분된다. 친절에 친절로 답하는 사람과 친절하게 응대할수록 날 함부로 대하는 사람. 다행히 지금까지 내가 겪은 민원인은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 더 많았지만, 후자도 봄철 미세먼지처럼 끊임없이 찾아와 내 수명을 깎아놓는다. 이들은 모든 권리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존중받는 것임을 모르는 듯하다. 민원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어차피 물 건너간 거 화풀이나 해야겠다는 식으로 내 부모님을 인류의 사랑스러운 친구인 개로 둔갑시키며 온갖 욕설을 퍼붓거나, “내가 낸 세금으로 밥 벌어먹는 주제에”라는 단골멘트와 함께 한 시간이 넘도록 국정운영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그나마 이런 종류의 진상은 양반이다. 어떤 민원인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공식은 옛말이라는 듯 신사적으로 전화를 끊고 바로 팀장님 자리로 전화해 “당신네 팀에 밥값 못하는 머저리가 있소”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감사실에 연락해 담당자를 업무태만으로 신고하거나,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했다며 담당자를 처벌하라고 청원하기도 한다. 모든 통화내용이 녹취되고 업무처리 과정이 전자기록으로 남는 시대에 담당자가 일부러 일을 대충 처리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대부분의 VOC(Voice of Customer)는 업무처리 절차와 규정, 관련 법률을 지켰다는 소명이 완료되면 마무리되지만 담당자는 이로 인해 많은 정신적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야 한다. 그만큼 본 업무를 처리할 시간도 빼앗기고, 그 공백은 공짜야근으로 채워진다.

GS칼텍스의 '마음이음연결음' 캠페인 캡처. 민원업무를 하는 감정노동자들은 매일 같이 폭언, 폭설에 시달린다.

VOC는 몸과 마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인사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민원업무 경험이 있는 인사권자라면 때로는 그냥 재수 없이 VOC가 들어온다는 것을 이해하겠지만, 기내식으로 카레를 주문했는데 맨밥만 나왔다는 승객의 VOC를 보고 해당 승무원을 징계하라고 지시한 조양호 회장과 같이 직원의 생계보다 “고객이 먼저”인 사람이 조직의 우두머리라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대한항공처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조직은 직원보호를 위한 처방에 인색하다. 기껏해야 전화 연결음을 “담당자도 누군가의 가족입니다”라는 메시지로 바꾸거나, 업무처리 규정에 상대방이 욕설을 하면 정중하게 2회 이상 제지 후 전화를 끊을 수 있다는 항목을 넣는 것이 전부다. 인격모독 수준을 넘어 민원인으로부터 살해위협을 받거나 멱살을 잡히는 말단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들은 실제로 내 주변에 다수 존재한다. 그러나 요즘 같은 취업 빙하기에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올 만큼 여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심리치료 상담을 받거나 우울증 약을 먹으며 다른 부서로 인사발령이 나는 그 날까지 무작정 “존버(존나 버티기)”하는 수밖에 없다.

공·사를 막론하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회사 안에서의 모든 일을 잊기 위해 애써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금붕어도 아니고 다짜고짜 초면에 쌍욕을 하던 민원인이 쉽게 잊힐 리 없다. 주말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악의에 찬 목소리들에 시달리다 보면 탈모와 위장병, 불면증은 어느새 삶의 동반자가 되어 있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은 굴욕감과 수치심에 익숙해져 내 고통뿐만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도 무감각해지는 무생물 바위가 되는 것뿐이다.

소시오패스들의 사냥터인 민원부서에서 버티기 위해 내가 택한 방법은 복싱이다. 쉬지 않고 샌드백을 치다 보면 너무 힘들어서 이 정도면 딱 죽겠다 싶은 순간이 온다. 이 때 바닥에 널브러져 간절하게 공기를 들이마시다보면 하루 종일 내 주변을 부유하던 미움이 조금씩 옅어진다. 그리고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하며 전화를 끊지 못하던 어머님, 지나는 길에 생각나 들렀다며 박카스를 쥐어주던 어르신의 얼굴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이럴 땐 박카스는 돌려드리고 커피를 타드린다.) 세상에는 타인에게 상처 주는 말을 당연하게 내뱉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최소한 그만큼은 있다. 상처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뿐이지.

퇴근 길,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내 어깨를 때리듯 부딪치고 들어와 재빨리 자리에 앉는 저 사람을 보며 생각한다. 어떤 사람에게 폭력이란 단 10분이라도 지하철에서 앉아 가기 위해 기꺼이 행사할 수 있는 사소한 것이구나. 그렇다면 나도 화병으로 요절할 생각은 없으니까 어깨 힘을 더 키워서 저 예의 없는 사람들을 마주 부딪쳐줘야겠다 라고.

고라니

칼이나 총 말고도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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