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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런 사람이야[김우성의 일기장
김우성 | 승인 2018.07.16 08:50

[논객닷컴=김우성] 짝사랑하던 누나가 있었다. 같은 교회를 다녔던 누나와 나는 함께 어울릴 기회가 많았다. 청년부에서 같이 성경공부를 했고, 여러 행사를 준비하면서 쉽게 친해졌다. 농담조로 티격태격할 정도로 우리는 친남매나 다름없는 사이가 되었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은 얼굴 보면서 지냈던 그 때 그 시절. 누나와의 만남은 늘 즐거웠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군 입대를 몇 달 앞둔 시점이 되었다. 입대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초조해졌는데 그것은 단지 앞으로의 군 생활이 걱정되기 때문이 아니었다. 입대 전까지 정리해야 하는 일상생활과 인간관계가 마음을 무겁게 하던 가운데, 누나와의 이별은 그 어느 헤어짐보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결국 누나와 마지막으로 함께 드리는 주일 예배를 맞이했다. 그 날만큼은 일찍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누나를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늦게까지 교회에 남았다. 결국 누나가 모든 일을 마치고 교회를 떠날 무렵, 나는 그제서야 누나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 때 나를 바라보던 누나의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나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늘 웃던 예전과 달리 그 때는 웬일인지 시큰둥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같이 걸어가는 내내 누나는 약속이 있다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대로 허무하게 누나와의 만남을 끝내기 싫었던 나는 나중에 커피 한 잔 할 수 있냐고 묻자 누나는 할 말 있으면 지금 하란다. 교회 문을 나서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던 몇 초에서 몇 분 사이가 누나가 나에게 허락한 시간의 전부였다.

‘아, 내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구나.’

©픽사베이

그 때 느꼈다. 누나에게 내가 차지하는 비중이 이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나랑 커피 한 잔 하는 시간이 아까웠던 걸까. 나는 누나에게 아는 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나보다. 만나면 웃으면서 인사하고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어도 따로 시간을 내어 만나고 싶지는 않은 대상. 나는 누나에게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상대방이 매력적이라면 없는 시간을 만들어내면서까지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시려고 노력하는 게 정상일 텐데. 하지만 그런 노력 없이 덤덤한 말투로 바쁘다고 둘러댄다면 상대방은 나를 만날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만날 마음이 없다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참 어렵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호감을 사고, 박수를 받는 게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는 걸 자주 느낀다. 앞서 언급했듯이 좋아하는 이성으로부터 관심을 얻거나 원하는 학교 또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을 통과하는 경우, 혹은 내가 속한 공동체의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거나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는 경우처럼 말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던데, 부드러운 미소와 달콤한 칭찬 이면에 숨겨진 진심이 무엇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TV 뉴스나 각종 프로그램에 패널로 나와 특정 사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전문가. 책을 쓰고 전국 곳곳을 방문해 강연을 하는 저자. 세간에서 주목하는 운동선수나 예술인. 그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쌓은 경력을 바탕으로 세상에게 무언가를 주고 있다. 그것은 지식일 수도, 노하우일 수도, 재미나 감동일 수도 있다. 이처럼 전문가들로부터 얻을 게 있으니까 일반인들은 자신의 시간과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그들을 초대하고, 그들의 강연과 경기, 공연에 이목을 집중하는 것이리라. 故 스티브 잡스는 소크라테스와 점심식사를 할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누구든지 자신의 돈과 시간, 체력과 감정을 소비하면서 아무하고나 만나서 밥을 같이 먹고 싶지 않을 터.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으로부터 식사 대접을 받으려면 소크라테스 정도의 인물은 되어야 하나 보다.

10대 시절에 원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20대에는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고는 한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성취와 좌절을 겪었고 무엇을 느꼈는지, 앞으로의 포부는 무엇인지 밝히는 자기소개서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외에도 청년들은 학점, 수상경력, 봉사활동, 어학 점수 등 각종 스펙으로 중무장하느라 바쁘다. 면접날에는 또 어떤가? 거울을 수차례 보면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밝은 미소를 장착해 면접관으로부터 눈도장을 받으려 애쓴다. 이처럼 그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간절히 바라던 꿈과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능력과 매력을 키우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래서 다들 명문대에 가려고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운동을 해서 외모를 관리한다. 어디선가 나를 바라봐주고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기를, 누군가가 나의 노력과 재능을 인정해주기를, 그동안 흘려왔던 나의 눈물과 땀의 가치가 빛을 발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우리는 자기 PR 시대에 살고 있다. 소개팅 자리에서 이성과 차 한 잔을 할 때나, 입학 또는 입사를 위해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볼 때 우리는 자신이 비교 우위를 가진 상품, 혹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는 듯 상대방에게 최대한 좋은 인상을 주려 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이만큼 괜찮은 사람이라고 열심히 홍보한다. 이력서를 제출할 때나 명함을 주고받을 때, 아니면 그저 누군가와 마주섰을 때 당당하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 한마디로, 같이 밥 먹고 커피 한 잔 하고 싶은 사람, 기꺼이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서까지 만나고 싶은 사람.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세상은 냉정하다. 음식이 맛이 없으면 손님은 더 이상 그 식당을 찾지 않고, 운동 경기가 지루하면 관중은 발길을 끊고, TV 예능 프로그램이 재미가 없으면 시청자는 채널을 돌려버린다. 능력, 실력, 매력이 부족하면 입학 또는 입사 시험에서 서류나 면접에서 떨어지고, 마음에 드는 소개팅 상대와의 애프터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 멀었다. 짝사랑하던 누나로부터 합격점을 받지 못했으니 능력이든 매력이든 어딘가 부족한 게 분명하다. 상대방으로부터 먼저 커피 한 잔 하자는 요청을 받는 사람, 시간과 돈을 소비하면서 만날 가치가 있는 사람, 그만큼 세상이 필요로 하고 남들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봄이 찾아오길 바라며 더 멋진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부지런히 나 자신을 가꾸어야겠다.

우리는 늘 합격과 불합격, 인정과 무시, 포용과 거부, 박수와 야유의 갈림길 앞에 서있다.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기분이라고 할까? 줄 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버티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일상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두근두근 떨리는 서바이벌 인생. 그래서 우리의 심장은 멈추지 않고 계속 뛰나 보다.

 김우성

고려대학교 통일외교안보전공 학사과정

논객닷컴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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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성  kws3f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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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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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2018-07-17 12:45:17

    그렇게 한 5일쯤이 지나고
    고운 저녘놀이 땅거미에 서서히 질 무렵이었나
    방에 있는데 내방 담넘어로 누군가 나누는 대화소리가 나더니
    나는 착각인지 지금도 모르지만
    누군가 나즈막히 내 이름을 부르는듯 들렸다.
    그녀 옆엔 늘 단짝 언니가 있었는데
    내 편지 얘기를 했을까 내 자존심은 어디갔나 그녀는 괜찮을까?
    모든것이 그 순간 착각이라해도 좋고
    내 가슴은 그냥 쿵쾅 뛰었다.
    난 그 뒤로 더더욱 그녀를 외면하려 애썼다.
    내 손에 난 상처를 보더니 그녀는"흥 혈서라도 쓸 작정이었나 보지"
    내가 그녀옆을 스칠때 그녀가 내게 쏜 말이다   삭제

    • 지나가다 2018-07-17 12:02:57

      이 편지를 전할것인가 그냥 북북찢어 버릴까?
      그걸로 또 이틀을 고민하고 만약 편지를 전하지 못한다면?
      이래도 저래도 마음은 고통이다 결국 일주일 만에
      그녀에게 편지를 전하기로 마음을 굳혔지만 편지를 수정했다.
      "절대로 이편지를 받거든 평소처럼 아무일 없듯이 해달라
      나도 그러겠다"는 내용을 마지막줄에 넣었다.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면 편할것 같았다.
      마을엔 우체통이 없다.
      그녀 이름과 주소를 대충 적고 내 이름과 주소는 쓰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
      터벅터벅 문구점 앞에 서있는 우처통에 편지를 넣었다.   삭제

      • 지나가다 2018-07-17 11:52:51

        어느새 30년은 더 지나버린 옛 짝사랑 이야기다.
        그녀와 나는 시골 바로 몇집 건너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용기만 있었다면 "나는 너를 좋아한다"했으면 싫든좋든
        그것으로 그만인 것을 나는 용기도 없어 여러날을 고민끝에 묘안을 짜냈다.
        편지를 쓰기로...
        나는 어는날 밤 대학노트에 진한 연필로 무작정 써내려갔다.
        한장...두장...그렇게 하다보니 장문의 대학노트 석장을 채우고 있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첫줄.."진정한 용기란 무엇일까요?"
        눈뜨면 지척에 있는 그녀를 위해 내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썼다.
        이 편지를 어떻게 전하지?   삭제

        • 지나가다 2018-07-17 10:39:20

          나도 20대 초반에
          지독한 짝사랑에 빠져 괴로워 하던 기억이 난다.
          짝사랑이란 누구나 겪어봄직한
          나올때 잠못이루고
          뽑아낼때 진한 고통을 주는
          사랑니같은 그 짝사랑의 기억은 내게도 있다.
          잇몸을 뚫고 나오는 지긋한 고통이란
          단숨에 뽑아내는 고통의 열배는 되어 눈물이 난다.
          나는 그녀를 볼때마다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멀리서 그녀 모습이 보이면 난 일부러 빙 둘러 가거나
          그 대로 그녀 모습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걸음을 멈추어 섰다.
          '난 너를 싫어한다 보기조차 싫다'
          이런 무언의 표시를 하고 싶어 그때는 왜 그랬는지 난 모르겠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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