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미국이 만들어 70년 넘게 유지시켜온 세계질서 뿌리째 흔들어

과거의 동맹을 적으로 돌리고 과거의 적과는 손잡아
미국이 70년 넘게 유지해온 세계질서 뿌리째 흔들어

[오피니언타임스=유세진] 지난 6박7일(7월10∼16일) 동안의 유럽 순방 중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발언으로 국제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했을 때부터 예측불가한 행동으로 유명했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넘게 현 국제사회 체계를 지탱해온 국제질서를 이처럼 뿌리부터 흔들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그 질서도 다름 아닌 미국이 만든 것이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유럽을 하나로 묶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서구와 동맹을 맺으며, 이전의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안정을 책임져주는 대신 동맹들과의 합의를 바탕으로 국제경제와 그밖의 도전들을 함께 해결하며 미국의 국익을 지켜나간다는 것이 지금껏 미국이 지켜온 국제질서였다. 이러한 국제질서는 자유시장경제의 성장을 바탕으로 공산주의 이념으로 맞선 옛 소련을 무너트리고 많은 공산권 국가들을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민주국가로 전환시키는 등 성공을 거두었고 미국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브뤼셀에서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11∼12일)과 뒤이은 영국 방문, 핀란드 헬싱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진 미·러 정상회담(16일)에서 나온 트럼프의 발언들은 유럽의 동맹국들뿐만 아니라 미국인들 자신조차도 미국의 대통령이 한 발언이 맞는가 의심해야 할 정도로 지금껏 미국이 추구해온 국제질서를 뿌리째 뒤흔드는 것들이었다.

©픽사베이

트럼프는 나토 동맹국들이 미국의 안보 제공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현재 2%로 합의돼 있는 방위비 분담을 국내총생산(GDP)의 4%까지 올리도록 윽박질렀다. 또 독일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포로가 됐다”고 비난했다. 유럽연합(EU)에서 탈퇴는 하되 긴밀한 관계는 계속 유지하는 ‘소프트 브렉시트’를 희망하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에게는 EU와 협상하는 대신 제소하라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하자 EU와의 완전한 단절을 주장하며 메이 총리와 대립 끝에 사임한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이 총리가 됐다면 훌륭하게 총리직을 수행했을 것이라며 메이를 모욕했다. 이에 메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 내용을 인터뷰에서 폭로하며 반격했다. 푸틴과의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러시아가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미 정보기관들의 결론을 부정하며 러시아의 편을 들어 미국 내에서 “창피하고 수치스럽다. 반역적”이라고 말해 거센 반발을 불렀다.

트럼프는 이번 순방 중 또 EU를 “미국의 적”이라고 지칭했다. 뿐만 아니라 EU와 함께 문제를 논의하는 것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더 쉬운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을 강력한 지도력을 갖춘 뛰어난 지도자라고 칭찬했다. 그는 강한 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EU가 미국을 이용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그만의 거짓 주장일 뿐이다. 트럼프는 다자주의보다는 쌍무주의를 내세우고, 규칙보다는 힘을 앞세우며, 일관성없이 예측 불가능하게 행동하고 동맹을 믿기보다는 거래를 통해 얻을 단기적인 작은 이익을 더 중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럽 내에서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회의의 목소리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EU는 더이상 미국에 의존할 수 없다”며 유럽 국가들끼리 결속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마스 장관은 “EU와 미국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는 자신감 있고 자주적인 유럽만이 달성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국가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이는 지난 며칠 사이 분명해졌다”며 “유럽은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래도 미국과의 동맹을 대체할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으며 유럽이 미국을 필요로 하듯이 미국 역시 나토 등 유럽과의 동맹 관계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유럽은 보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이러한 국제질서 뒤흔들기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일부에서는 이러한 트럼프의 행동이 어떤 이념에 따른 행동이라기보다는 그의 무지와 준비 없는 즉흥성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때문에 2년 반이라는 트럼프의 잔여 임기가 지나고 미국에 새 대통령이 들어서면 트럼프가 일으킨 불안도 사라지고 다시 기존의 국제질서가 회복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2020년 미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더라도 트럼프가 외친 ‘미국 우선주의’의 영향은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미국 내에는 이미 트럼프에 열광하는 30% 정도의 골수 지지층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유럽 내에서도 극우 민족주의가 확산되고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등 트럼프 등장이 가져온 변화가 널리 퍼지고 있다.

트럼프의 국제질서 판 흔들기는 이번 유럽 순방 이전에도 이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와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 이란 핵협정 탈퇴 및 유엔 인권이사회 탈퇴 등 숱한 전력을 보여왔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의 이익만을 내세워 세계무역기구(WTO)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그동안 유지돼온 자유무역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번 유럽 순방 전 이미 유럽과 중국 등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이들이 이에 맞서 보복관세 부과로 세계 무역전쟁 발발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켜 세계 경제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통상과 국가안보 문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행동은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이러한 트럼프의 국제질서 파괴는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세계를 다함께 망하는 재앙의 길로 이끌 위험을 안고 있다. 그가 초래할 위험에 대한 대비책을 심각하게 고려해야만 할 것으로 생각된다.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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