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연의 하루 시선]

[오피니언타임스=정수연]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우리는 아직 알 속에 갇혀있다. 알 속에서 옛날 옛적에 끝났어야 할 “여성은 남성과 같은 인간인가?”와 같은 논의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실제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여성에게 부여되는 사회적 억압과 차별, 부당함을 볼 때 저 논의는 사회적으로 계속되고 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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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인간은 ‘상대편에게 자기 자신을 엄연한 인격체로서 가리키는 말’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한국 사회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런 사회를 깨뜨리기 위해 여성들은 페미니즘 운동을 한다. 그 중 하나가 탈코르셋 운동이다. 탈코르셋에 대한 논의는 쉽지만 동시에 어렵다. 코르셋만 버리면 된다. 하지만 곧이어 의문이 생긴다. 내 마음대로 입고 내 마음대로 꾸미면 되는 것 아닌가? 주체적으로 꾸미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사회가 강요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꾸밈인데?

이런 의문을 가졌다면 ‘과연 알 속에서 주체적이란 성립할 수 있는가’부터 생각해야 한다. 어릴 적부터 즐겨온 게임과 책, 각종 매체에선 공통된 미를 보여주고 이것이 아름다움이라 말한다. 미디어에선 ‘능동적인 여성’을 내세우며 소비자에게 화장이 곧 권력이고 나의 힘이라 말한다. 사회가 강요한 것이 코르셋이라니 무엇이든 ‘주체적’으로 한다면 페미니즘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게 정말 주체적인 것일까? 능동적인 화장이 정말 권력일까? 태어난 순간부터 한 사회에 소속돼 살아온 우리는 사회가 강요한 코르셋이 너무나 당연하다. 기억도 못할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코르셋은 코르셋이라 인식을 못하게 한다. 페미니즘을 모르던 때에도 많은 여성은 주체적으로 다이어트를 했고, 하고 싶기 때문에 화장을 했다. 그게 정말 주체적인 것이고,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일까?

‘주체적 꾸밈.’ 이는 결국 백래시의 일종이다. 백래시는 사회적, 정치적인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행동을 뜻하는 말이다. 즉, 페미니즘에서 백래시는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반발이 일어나고 그 결과가 여성차별인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페미니즘 운동은 여권이 조금 진보하면 백래시로 인해 오히려 여권이 후퇴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이는 한국의 페미니즘 역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1980년대, 1990년대에도 꾸준히 있었다. 1980년대의 여성운동은 국가적 부흥을 위한 여성의 역할 찾기, 그리고 민주주의 쟁취에서 여성 운동의 일조라는 입장에서 이루어졌으며, 민주화 운동의 하위 운동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민주화를 달성하면 여성의 인권은 자연스레 올라간다는 운동으로 진행되었고 그 결과 여성 운동가들은 ‘남성 운동가를 위한 존재’로 변질되고 민주화 운동의 역사에서 여성은 지워졌다.

그렇게 페미니즘 운동은 1990년대로 이어져 다시 폭발적으로 일어난다. 90년대는 페미니즘 운동이 가장 활발한 연대활동이 전개되었던 시절이다. 여성운동단체들이 여성주의 정책의제를 중심으로 연대활동을 펼치고 정치세력화를 위한 활동에 보다 더 주력하게 되었다. 여성의 성에 대해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이미지도 만들어나갔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점차 활발해지자 그 반동으로 여성혐오가 증가했다. 2000년대 이후 된장녀와 같은 여성혐오 단어가 크게 증가하고 2010년 이후엔 맘충, 김치녀, 낙태충 등의 심각한 여성혐오 단어가 등장했다.

이러한 혐오 단어의 등장과 ‘여성’이기 때문에 살해당하는 사건 등으로 인해 메갈리아의 등장과 함께 현재 페미니즘 운동이 나타났다. 이에 대한 백래시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학가에서는 페미니즘 강연이 취소되고 몇몇 대학에서는 총여학생회가 폐지된다.

90년대 여성인권운동 이후 여성혐오가 심해졌다. 이번 페미니즘 운동이 지속되어야 하고 성공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미 남성의 얼굴을 띤 백래시, 여성의 얼굴을 띤 백래시가 일어난다. 이 중 더 무서운 백래시는 여성의 얼굴로 다가올 것이다. ‘주체적 꾸밈’, 또는 미디어에서 주입하는 ‘능동적인 화장’과 같은 것들 말이다. 여성이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강요당한 코르셋이 정말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며 권력을 가져다준다면 이미 기득권층인 남성이 소유했을 것이라는 것과 ‘남성’이라는 기득권층은 여성에게 본인들이 소유한 권력을 일부만 나눠줄 뿐 실제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핵심적인 권력은 여성에게 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을 깨뜨려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하나의 알이다. 남성의 권력이 유지되는 사회, 여성이 해방되지 않은 사회. 그 속에서 ‘외모’라는 남성이 부여한 권력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백래시가 나타난다. 하지만 힘들지 않은 인권 운동이 어디 있겠는가. 남성이 허락한 사회적 권력이 아닌 여성의 사회적 권력을 위해, 나아가 진정한 평등을 위해 우린 알을 깨야만 한다. 

정수연

사람을 좋아하고 글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이해하고 싶어 글을 씁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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