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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상봉이 비핵화의 시금석[임종건의 드라이펜]
임종건 | 승인 2018.07.24 08:50

[논객닷컴=임종건]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북한이 바뀔 것이라고 하지만 하나도 안 바뀐 게 있다. 이산가족상봉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다. 상봉대상자를 100명 선으로 제한하고, 만남의 장소를 금강산으로 하자는 제안이 그것이다.

상봉가족의 수를 제한하는 것은 양측에서 행사관리를 고려한 측면도 있겠으나, 주로 북측이 말하는 대상자 선정상의 애로를 남측이 양해하면서 관행처럼 굳어졌다. 상봉 장소도 처음 세 번은 서울과 평양을 왕래하다가 4차 상봉 때부터 북측이 요청한 금강산으로 굳어졌다.

지금 남북적십자사는 8·15 해방을 기념하는 남북 이산가족상봉을 위한 회담을 이런 조건 아래에서 진행 중이다. 오는 8월 20~26일 양측에서 각각 100명씩 금강산에서 상봉키로 하고 오는 25일 명단을 교환한다. 과거의 예로 미뤄 아마도 신청자의 건강문제 등으로 최종 상봉자 수는 100명에도 못 미칠 것이다.

2015년 10월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수십년만에 얼굴을 마주한 이산가족이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고 있다. ©통일부

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은 통칭 1000만 명이나, 2018년 현재 남한에 있는 이산가족 중에서 상봉을 신청한 사람은 5만6000여 명이다. 상봉대상자의 숫자가 워낙 제한되다 보니 그동안 20차례 이뤄진 상봉에서 이산의 한을 푼 사람은 2000여 명에 불과하다.

상봉 사업이 처음 시작된 2000년의 13만여 명에서 절반 이상이 타계했고, 지금도 매년 3000명 이상이 타계하고 있다. 산술적으로는 앞으로 19년 이후면 모두 타계한다는 계산이지만 이들이 고령인 점을 감안한다면 상봉소멸 시한은 그보다 훨씬 당겨질 것이다.

반면 1년에 100명씩이면 이들이 다 만나기 위해서는 500년 이상 걸려야 하고, 지금부터 상당기간 동안 상봉대상자 추첨에서 500대 1의 경쟁을 통과해야 한다. 남한에는 현재 90세 이상의 고령 이산가족만도 1만2000여 명이나 있다. 이번 8·15 상봉대상자 추첨에서도 95세의 고령자조차 탈락한 것이 남한의 현실이다.

한쪽 시간은 너무 짧고, 다른 한쪽 시간은 너무 느린 이 반인륜적인 부조화가 비극의 핵이다. 북한이 바뀌었다면 통크게 10만 명 안팎일 남북 이산가족 모두를 한곳에 모아 한풀이 굿이라도 할 수는 없는가? 금강산보다 평양의 김일성광장이 그런 굿을 하기에 좋지 않은가? 판문점의 평화의 집이나 판문각도 정치회담장보다 상시면회소로 용도변경 함이 맞지 않는가?

북측이 상봉 대상자 수를 제한하는 이유를 모를 바는 아니다. 출신성분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북한에서 이북출신의 월남자 가족이건, 이남 출신의 월북자 가족이건 결함이 있는 계층이다. 그들 중 다수는 숙청을 당했고, 지금도 유형무형의 핍박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최근 들어 북한에선 이산가족에 대한 질시와 감시가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산가족 출신의 어린 학생이 학교에서 ‘남조선 괴뢰도당의 친척’이라며 구타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고 한다. 남한의 친척으로부터 몰래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은 반역의 중죄에 해당된다.

북측 이산가족들이 남측의 가족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장군님 만세’나 ‘공화국 만세’를 부르는 것은 그들이 받은 차별을 반증하는 역설일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북측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꺼리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남북 적십자 관계자들이 3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8.15 계기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 생사확인 의뢰서’를 교환하고 있다. ⓒ통일부

북한의 열악한 경제여건에서도 하류층에 속한 이들의 생활상 또한 남루할 수밖에 없고, 그들이 사는 곳도 평양보다는 지방이 더 많을 것이다. 이들에게 서울을 구경하게 하는 것은 남한에 대한 선망을 갖게 해서, 체제에 유해한 소문을 퍼뜨릴 뿐이다. 북한이 상봉장소를 금강산으로 하자고 한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이산가족이 원천적으로 소수인 데다 엄중한 선별기준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대상자 선정에 애로가 많다는 북측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연좌제가 시행되던 시절 남한에서도 북한 출신 이산가족이나 월북자 가족들에 대한 차별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신청자의 고령과 건강의 정도, 친족 범위의 정도가 가장 중요한 기준일뿐 다른 차별은 없다.

이산가족 상봉사업과 관련, 북한이 변하지 않은 것이 또 있다. 인도주의에 입각한 이 사업을 정치·경제적으로 이용하려는 자세다. 이번에도 2016년에 집단 탈북한 유경식당 종업원들을 북으로 보내지 않으면 상봉을 무산시킬 수 있다고 협박하고 있다.

그들의 탈북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남측 당국이 본인 의사를 확인해 처리하면 그만인 사건이다. 현재도 남한의 주민 6명을 불법으로 억류해 감옥에 가두고 있는 그들이 인권 운운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한맺힌 이산가족상봉을 볼모로 삼으려는 것은 더욱 터무니없다.

과거에 상봉 하루를 앞두고 무산시키는 등 가족들의 가슴에 수없이 대못을 박고, 애간장을 태우게 했던 그들이다. 이번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비핵화합의 이행 촉구에 ‘시비질’운운하며 욕설에 가까운 비방을 하면서 식당종업원 얘기를 들고 나왔다.

인륜을 흥정대상으로 삼는 그들과 무슨 약속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남북,북미 간의 북한 비핵화 약속이 교착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것도 이전과 하나도 바뀐  게 없는 북한의 협상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이산가족 상봉이 성공해야 비핵화도 성공한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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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imjk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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