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송의 어둠의 경로]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영화를 보러간 날이었다. 더군다나 독립영화관이라니, 이처럼 근사한 행보가 있을까 싶었다. 그날은 ‘그림자들의 섬’ 이라는 다큐를 보았다.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던 것은, 아빠의 모습이 가시지를 않았기 때문이리라.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쓰고 집으로 돌아와 언니와 함께 술을 먹고 있던 때였다. 때마침, 아빠가 집으로 들어오셨다. 아빠도 식탁에 앉으시며 도란도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픽사베이

난 오늘 본 다큐와 관련하여 아빠 회사에도 노조가 있었냐고 물어봤다. 아빠는 과장 아래는 대부분 노조에 가입되어 있다고 했다. 난 아빠에게 다시 물어봤다. 아빠는 노조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없으셨냐고. 아빠가 말씀하길 노조에 들어갈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이게 무슨 해괴한 답인가 싶었다. 아빠는 대기업 임원이셨고 임원은 노조에 가입할 수 없다는 것이 아빠의 논리였다. 임원은 노조에 가입할 수 없다라... 나는 다시 아빠에게 여쭤보고 싶었다. 노조에 가입되면 승진을 하기가 힘들기에 가입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 ‘할 수 없다’라는 표현보다는 ‘하지 않았다’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근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배불리 먹고 잘 사는 지금 내가 과연 아빠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아빠는 단지 ‘직원’보다는 ‘아버지’의 역할을 택했을 뿐이고, 그 선택의 결과로 내가 지금 이렇게 배불리 예술을 하고 있으리라. 나뿐만이 아니라, 오빠 또한 배부른 예술의 길을 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너무 아팠다. 어찌되었든 나 또한 정의롭지 않은 루트 속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정의를 외칠 여유가 21살이라는 이 적은 나이에 있는 것이고, 감히 예술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으리라. 배고프고 정말 사는 것이 바빴다면 가히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헤쳐 나가자는 생각을 품을 시간이 존재했을까.

배가 불렀기에 시를 썼고, 여유가 있기에 세상을 바라볼 시야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득권층으로써 마땅히 가져야할 태도와 생각이 정의가 되어버린 세상이다.

얼마 전, 아빠에게 뉴스타파에 들어가서 세상의 진실을 꺼내보고 싶다고 하였다. 아빠가 말씀하시기를, “딸아, 너가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 외치는 말이 가장 영향력 있고 힘이 셀 것이다. 높은 곳에 도달 했을 때, 정의를 외쳐라.”

정말 맞는 말씀이셨다. 내가 국회의원 정도만 되도 외치는 말의 무게는 다를 것이다. 음,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높다는 곳까지 가기까지 과연 타락되지 않은 루트로 갈 수 있을까. 정의를 외치기 위해 올라가다가 내가 타락되어 버릴까봐 무섭다.

꿈을 팔아 행복을 찾고, 행복을 팔아 정의를 찾는 이 세상이 아직 내게는 많이 버거운 것 같다.

 서은송

2016년부터 현재, 서울시 청소년 명예시장

2016/서울시 청소년의회 의장, 인권위원회 위원

뭇별마냥 흩날리는 문자의 굶주림 속에서 말 한 방울 쉽게 흘려내지 못해, 오늘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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