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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는 안 될, 그러나 했어야만 하는 사랑[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김호경 | 승인 2018.07.31 11:18
ⓒ김호경

그를 데려오지 않았어야 한다

[논객닷컴=김호경] 모든 잘못의 출발은 아버지에게 있다. 한 가정의 몰락, 한 기업의 몰락, 한 왕국의 몰락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 명의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아들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신하일 수도 있고, 외부의 침입자일 수도 있다. 그의 정체가 무엇이든 그의 실책, 만행, 어리석음을 바로잡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은 아버지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것을 바로잡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그 이후 모든 것은 엉망이 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가슴에 깊은 상처를 안은 채 뿔뿔이 흩어진다. 역사에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몰락들의 근원은 결국 아버지이다.

모든 비극의 출발은 사랑에 있다. 사랑은 한 사람을 인간으로 완성시키고, 삶의 희열을 느끼게 해주며, 세상을 유지시키는 강력한 힘이다. 그 사랑이 순수하고, 아무런 조건을 따지지 않을 때만.... 만약 사랑에 허위와 명예, 조건이 따라 붙으면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된다. 그 지옥을 만든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준다. 그리고 몰락으로 치닫게 한다.

언쇼(Earnshaw)가 리버풀에서 고아 소년을 데려온 것이 모든 비극의 출발이었다. 그를 사랑하는 소녀는 그 비극의 완성자였다. 철저하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마저 파멸시키는 소년은 모든 문학작품의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거칠고, 비열하면서도 가장 안타까운 주인공이다. 그를 폭풍의 언덕으로 데려오지만 않았다면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아버지 언쇼가 지극히 원망스럽다.

에밀리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 1권만 남기고 3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김호경

복수의 칼날은 자기 자신에게 향한다

평생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소설 속 주인공들이 있다. <레 미제라블>의 장 발장, <걸리버 여행기>의 걸리버, <노틀담의 꼽추>의 콰지모도, <테스>의 테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변신>의 잠자, <부활>의 카츄사, <아Q정전>의 아Q, <안네의 일기>의 안네, <인형의 집>의 노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롯데, <좁은 문>의 제롬, <햄릿>의 햄릿, <맥베드>의 맥베드...

이 모든 주인공들은 우리들에게 크건 작건 삶의 교훈을 준다. 때로는 반면교사의 역할도 한다. 하지만 히스클리프(Heathcliff)는 사악하고 거칠기만 하다. 그는 모든 주인공들 중에서 단연 돋보인다. 모든 주인공들이 한꺼번에 덤벼들어도 히스클리프를 이길 수 없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폭풍의 언덕>을 읽은 이후 그 이름은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한번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히스클리프를 만났다.

그들은 자기 세계를 파괴하기 바빴다. 구원해준 사람에게 “차라리 나를 내버려두지 그랬느냐”는 항변과 함께 공격을 퍼부었다. 사랑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복수를 꿈꾸고 실행에 옮겼다. 그 복수의 칼날이 겨누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었다. 가장 애절하고, 가장 안타깝고, 가장 불쌍하면서 가장 미운 사람이 히스클리프이다. 그러면서도 가장 연민이 간다.

<폭풍의 언덕>을 처음으로 영화로 만든 사람은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다. ⓒ김호경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폭풍의 언덕>은 언쇼가 히스클리프를 데려온 177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아들 힌들리(Hindley)는 14살이었고 딸 캐서린(Catherine)은 6살이었으며, 이웃집 아들 에드거 린튼(Edgar Linton)은 9살이었다. 7살 히스클리프가 오지 않았다면 세 아이는 지극히 평범하고, 유복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히스클리프는 언쇼로 지칭되는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가문과 린튼으로 지칭되는 드러시크로스(Thrushcross) 가문을 황폐화시켜 버린다.

물론 모든 잘못이 히스클리프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기주의자이며 자존심이 세고 아버지와 달리 인자함은 눈곱만큼도 없는 힌들리의 무자비한 학대도 주요 원인이다. 태생을 알 수 없는 부랑아 고아를 사랑한 캐서린의 잘못은 더욱 크다. 사랑하면서도 그를 저버리고 부와 명예, 체면을 쫓아 에드거와 결혼한 것은 치명적인 실수이다. 그러하지 않았다면 (이 소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겠지만)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행복했을 것이다. 힌들러와 그의 아내 프랜시스, 에드거와 그의 여동생 이사벨라(Isabella, 훗날 히스클리프의 아내)도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순조롭게 흘러가지 못하는 것이 두 가문 사람들의 운명이다. 잘못은 신에게도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은 ‘~했더라면’이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의 가슴을 후벼판다. 그리고 교훈 하나를 안겨준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문이나, 체면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돈이나, 학벌을 따지지 마라.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아무리 사랑한다 하여도 출신을 알 수 없는 무식한 고아 청년(실제로는 머슴)과 결혼할 여자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브론테의 고향 북부 요크셔의 황량한 고원이 소설의 무대이다. ⓒ김호경

“등장인물 또한 흉측하고 음산하다”

<폭풍의 언덕>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이 무대이다. 작가는 19세기 초반에 생존했다. 즉 작가는 시계바늘을 50년 전으로 돌려 두 가문의 처절한 사랑을 그렸다. 18세기는 계몽주의 시대이다. 중세의 기독교 이념은 차츰 물러났으며 계몽주의는 영국에서 출발했으나 꽃을 활짝 피운 곳은 프랑스였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프랑스의 루이(Louis) 왕가가 절대권력을 쥐고 있었고,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 공업국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랑스대혁명의 발발로 구세대(Ancienrgime)가 몰락했으며 미국이 독립했다.

이 시대의 인물로는 다니엘 디포, 조나단 스위프트, 데이비드 흄,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칸트, 볼테르, 몽테스키외, 나폴레옹, 조지 워싱턴, 시몬 볼리바르, 마르크스와 엥겔스, 괴테, 하이네, 빅토르 위고, 푸슈킨, 스탕딸, 베토벤, 쇼팽 등을 들 수 있다. 여자는 거의 없다. 빅토리아 여왕(Queen Alexandrina Victoria)은 브론테보다 1년 후인 1819년에 태어나 1901년까지 영국을 통치했다. 그녀는 재위 시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인 대영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 정치, 경제, 과학,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남성들의 독무대인 시대에 에밀리 브론테는 독보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폭풍의 언덕>은 “발표 당시에는 그리 관심을 끌지 못했고, 심지어 내용이 지나치게 야만적이고 비윤리적인데다 등장인물 또한 흉측하고 음산하다는 혹평을 받았다”고 소개되어 있다. 내용이나 표현기법이 문제가 아니라 1847년에 여성이 장편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남자들이 인정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 혹평을 이겨내고 <폭풍의 언덕>은 고전 명작이 되었다. “등장인물 또한 흉측하고 음산하다”는 평은 어쩌면 히스클리프를 지칭한 것이리라. 그러나 히스클리프가 아니었다면 이 소설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못된 남자 히스클리프와 그를 사랑했으나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가녀린 캐서린은 우리 모두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폭풍의 언덕>에 들어간 삽화. 히스클리프로 추정된다. ⓒ김호경

* 더 알아두기

1. 에밀리 브론테는 1818년 태어나 폐병으로 1848년 3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폭풍의 언덕>은 대표작이며 유일작(唯一作)이다. 처음에는 엘리스 벨(Ellis Bell)이라는 필명으로 발표되었다. 그녀의 고향 북부 요크셔의 황량한 고원이 소설의 무대가 되었다. 언니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e) 역시 <제인 에어>(Jane Eyre)를 쓴 소설가이다. 39살에 사망했다.

2. 이 소설은 윌리엄 와일러(1932)를 시작으로 피터 코스민스키(1992), 코키 지드로익(2009), 안드리아 아놀드(2011)까지 여러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었다. 가장 첫 작품인 윌리엄 와일러(William Wyler)의 흑백영화를 권한다. 유투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3. 세계사에 등장하는 –내가 파악하기에- 최초의 여류소설가는 스탈 부인(Madame de Stael 1766~1817)이다. 제네바에서 태어나 귀부인의 삶을 살았고, 괴테와도 교류했다 한다. 〈코린느〉(Corinne)라는 소설을 1807년에 썼다 하는데 읽지는 못했다.

4. 여성 작가의 소설은 콜린 매컬로(호주)의 <가시나무새>(The Thorn Birds), 루이제 린저(독일)의 <고원의 사랑>(Die Hochebene)과 <생의 한가운데>(Mitte des Lebens), 펄 벅의 <대지>,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제인 오스틴(영국)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의 <빙점>(氷點) 등이 유명하다.

5. 루이제 린저(Luise Rinser)는 나치 독일을 찬양하는 시를 썼다는 논란이 있으며,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해 김일성을 만났다.

6. 프랑스 작가이자 철학가인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초대받은 여자>(L'Invitée)와 <계약결혼>(La Force de L’age)은 한때 여성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La Force de L’age는 ‘나이의 힘’이라는 뜻이다. 두 권 모두 시중에서 구매가 어렵고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 구할 수 있다.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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