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의 촌철살인]

[오피니언타임스=김철웅] 소설가 서머싯 몸은 “내가 인간성에서 주목한 부분은 도대체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나는 한평생 일관성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을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64세에 쓴 문학적 회고록 ‘더 서밍 업’에서다. 그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지난 40년 동안 인간성을 연구해왔지만 아직도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unaccountable) 존재다. 사기꾼이 자기희생을 하는 것을 보았고, 좀도둑이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도 발견했다. 창녀가 화대만큼의 봉사를 해주는 걸 명예로 여기는 것도 보았다.”

그 결과 인간성의 모순적 특징들이 인간 내부에 병존한다. 이기심과 이타심, 이상주의와 관능주의, 사심 없음, 용기, 게으름, 신경질, 고집스러움, 소심함, 이런 것들이 모두 한 사람의 내부에 깃들어 그럴듯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것이 작품 속에서 수많은 인물을 창조한 몸의 인간에 대한 인식이다. 그의 단편 ‘비’는 남태평양 사모아 섬을 배경으로 인간의 양면성을 가진 목사의 파멸을 극적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작가 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안다. 인간은 양면적인 존재이며 누구나 어느 정도씩 소신과 생각을 바꾸며 살아간다. 크고 작은 배신도 하고 사상적으로 변절하기도 한다.

ⓒ정의당 홈페이지

그런 점에서 지난주 세상을 떠난 노회찬 의원은 특출한 존재, 비범한 사람이었다. 초지일관, 한결같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경기 마석 모란공원에 그를 묻으면서 나경채 전 정의당 공동대표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추도했다. “정의감 넘치는 고등학생, 시대의 아픔에 민감했던 대학생, 불꽃으로 쇠붙이 이어 붙이던 용접 노동자, 삼성 X파일 폭로로 의원직을 잃고도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똑같이 하겠다고 한 진정한 정치인, 잘 가십시오.”

그는 평생을 약하고, 힘없고, 가난한 노동자와 서민을 위해 일했다. 한국 진보정당사의 산증인이자 주역으로 꼽혔다. 누군가 왜 진보정당 운동에 평생을 바치느냐고 물었더니 특유의 유머가 담긴 대답이 돌아왔다. “한 사람이 평생에 한 가지 일만 추구해도 이루기 힘든데 어떻게 여러 가지 일을 하겠습니까? 학창 시절에 결심한 대로 이 사회의 약자와 빈자의 권익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뿐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폭염 속에서도 7만여 명의 조문객이 전국 36곳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았을 것이다. 추모 행렬에는 진보도, 보수도, 남성도, 여성도 따로 없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부터 정장을 갖춰 입은 기업인까지 찾아왔다. 시민들은 여성의 날이면 국회 청소노동자들에게도 장미꽃을 선물하던 다정다감했던 노회찬을 그렇게 보냈다.

그러나 영정 앞에 국화꽃 한 송이 올리고 보내준 것으로 추모가 끝난 게 아니다. 진정한 추모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보는 게 옳다. 그만큼 그가 세상에 묵직한 과제를 던지고 갔기 때문이다. 고인은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정의당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현한 것이지만 진보·정의의 가치 추구를 멈추지 말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그런 유지가 담겨 있다고 본다.

ⓒ노회찬 공식홈페이지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은 이 진보주의자의 죽음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와 통한다. 무엇이 그를 멈추게 했느냐란 질문이기도 하다. 대답은 분노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노가 정신적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살이 미화되는 세상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라는 어느 정치인의 깐죽거림에 분노하라는 게 아니다. 그건 감정 낭비다. 분노해야 할 건 따로 있다.

그것은 이 땅에 공고한 기득권주의다. 정권교체가 됐어도 그것은 여전하다. 세상천지가 분노할 것, 비판할 것들로 넘쳐난다. 빈부격차 확대, 권력의 남용, 공직자들의 모럴 해저드·부패 심화, 노블레스 오블리주 붕괴, 이런 것들이 다 기득권 집착의 소산이다. 약자들을 대변해 호주제 폐지법 등 많은 법안을 내놓았던 그가 마지막으로 발의한 법안이 국회의원 특수활동비 폐지였다. 그는 법안을 발의하며 교섭단체 대표로서 받은 특활비도 일괄 반납했다.

그의 죽음으로 부각된 정치자금법도 손봐야 한다. 2004년 제정된 이 법은 현역 의원과 거대 정당 공직선거 후보자 등 기득권층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가난한 정치신인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그가 늘 주창해온 선거제도 개혁 역시 공고히 자리 잡은 정치 기득권을 깨기 위해 필요하다. 그는 올해 2월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민의 지지가 국회 의석에 정확히 반영되는 선거제도, 즉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이야말로 공정한 정치를 만드는 시작이다. 그 토대 위에서 공정한 사회도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영화배우 박중훈은 “평소 의원님이 해주신 말씀이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을 인정한다. 그러나 가장 우위에 있는 사람은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저한테 가르쳐주셨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그가 우리에게 내준 숙제다. 

   김철웅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국제부장,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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