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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마을에서 만난 스승[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이호준 | 승인 2018.08.03 10:22

[논객닷컴=이호준] 산골마을로 들어와 살게 된 뒤로는 아침 산책을 빼놓지 않습니다. 일과의 시작이기도 하지요. 어느 땐 첫 이슬을 따며 숲길을 걷기도 하고 어느 땐 물안개를 보러 냇가까지 가기도 합니다. 이곳에 와서 함께 살기 시작한 강아지 한 마리가 동행합니다. 산책의 목적에는 강아지의 배변도 있습니다. 지인이 기르다 보냈는데 훈련이 잘돼 있어서 집 근방에서는 절대 배변을 하지 않습니다. 집과 멀리 떨어진 숲속으로 들어간 뒤에야 볼일을 보고는 하지요. 그럴 때마다 괜스레 ‘개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말이 떠올라 혼자 씁쓰름하게 웃기도 합니다.

산책은 마을을 지나치게 되는데, 그때마다 좀 더 천천히 걷습니다. 사람 사는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서입니다. 집집마다 담장 곁에 나무들이 서 있습니다. 대개는 유실수들입니다. 북쪽이고 산속이다 보니 작물도 과일도 조금씩 늦습니다. 요즘은 자두나무 아래를 지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에 걸음이 더 늦어집니다. 검붉게 익은 자두가 길에 고스란히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주워가지고 따지도 않습니다. 분명 주인이 있을 텐데도 그대로 떨어져 썩어갑니다. 아이들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이 마을에 들어와서 사는 동안 아이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고등학생 두어 명이 있지만, 새벽부터 학교에 가니 자두 따위가 눈에 보일 리 없습니다.

아이들이 없는 대신 노인들은 참 많습니다. 요즘은 어느 시골이든 마찬가지지요. 잠깐 제가 사는 곳을 설명해야겠군요. 이 마을은 거주지가 크게 두 곳으로 분리돼 있습니다. 한 곳은 ‘원주민’들이 옥수수, 감자 등의 농사를 지으며 사는 곳입니다. 다른 한 지역은 <예술인촌>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되어 ‘이주민’들이 살고 있지요. 저는 예술인촌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원주민이든 이주민이든 제가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주민들은 대개 노인입니다.

ⓒ픽사베이

그중에 저와 거의 매일 만나는 노부부가 있습니다. 산책 시간이 겹치는 것이지요. 어림잡아서 70대 중후반쯤 되는 분들입니다. 아주 점잖아 보이는데, 인사를 하면 편안한 미소로 받아주고는 합니다. 사실 이분들에 대해서는 처음에 떨떠름한 마음이 없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와서 처음 들은 이야기가 별로 달갑지 않은 내용이었거든요. 누군가가 지나가는 노부부를 가리키며 ‘태극기 부대’라고 일러줬습니다. ‘박근혜 탄핵’ 때 반대 시위를 하러 서울까지 오고갔다는 것이지요. 박 전 대통령이 수감된 뒤에는 며칠 동안 울고불고 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행위야 타자가 뭐라고 할 일이 아니지만, 반대쪽 입장을 가진 저로서는 조금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분들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만날 때마다 가벼운 목례를 했지만 그리 반가운 표정을 짓지는 못했습니다. 어쩌면 대한문 앞에서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드는 노인들 대하듯 했겠지요.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그런 인식을 바꾼 것은 지난 장마철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길에 서서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바깥노인을 만났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비에 쓸린 나뭇잎들로 막힌 배수구 구멍을 뚫고 있었습니다. 대체 저 노인이 왜? 동네에 무슨 책임을 맡고 있는 분도 아닌데?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제때 배수가 되지 않으면 인근의 논밭에 피해를 끼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노인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이물질을 일일이 제거하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도 비는 계속 내렸고, 노인은 역시 산책 대신 배수구 구멍을 뚫고 있었습니다. 늘 함께 다니는 부인이 저만치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완전히 뚫릴 때까지 작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땅거미가 질 무렵 그 길을 지나다 결정적으로 제 마음을 바꾼 광경을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노인이 아예 삽을 들고 와서 배수구마다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관공서에서도 신경을 쓰지 않고, 이장이나 반장의 손길도 미치지 않는 곳에서 비를 맞으며 혼자 작업을 하는 노인.

부끄러웠습니다. 날마다 같은 길을 지나면서도 막힌 배수구를 뚫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한 게 부끄러웠고, 제 일방적인 오해가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몇 마디 말만 듣고 도저히 대화가 되지 않는 상대, 즉 흔히 말하는 ‘수구꼴통’ 정도로 못을 박아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타인의 말에는 귀조차 기울이지 않고 일방적인 주장만 하는 노인일 거라고 규정해버리고 대화의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난공불락의 성벽은 상대에게 있는 게 아니라 제 안에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타인을 위하는 마음, 즉 이타심이 없다면 비를 맞아가며 동네 배수구 구멍을 뚫을 리 없지요. 그런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내세워 타인을 윽박지르고 해를 끼칠 리도 없지요. 그분들은 그저 아름답게 늙어가는 노인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단단한 편견 속에 살고 있는지 가르쳐주는 스승이었습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돌아다보니 일상생활에서도 그런 오류를 숱하게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저 친구는 그런 친구야’라고 못 박아 경원시 한 적이 한두 번일까요. 대화를 해서 좀 더 알려고 하거나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은 늘 뒷전이었습니다.

떡 자르듯 보수와 진보로 가르는 것처럼 위험한 것도 없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진보는 옳고 보수는 무조건 그르다는 이분법은 더욱 위험하고요. 차라리 ‘좋은 사람‧나쁜 사람’으로 구별하는 것이 쉬울 것 같았습니다. 진보‧보수를 가르는 잣대가 혹여 나와 다른 이들을 적으로 설정하기 위한 도구는 아니었던지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저는 요즘, ‘보수’임에 분명하지만 따뜻한 눈길을 가진 노인과 아침마다 길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혹시 구멍이 뚫린 곳은 없는지 혹시 무너질 곳은 없는지 살펴보는 일도 빼놓지 않습니다. 저는 여전히 배움이 필요한 학생이고 도처에 스승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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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sagang58@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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