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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 한 그릇을 닮은 사람[김경빈의 위로의 맛]
김경빈 | 승인 2018.08.07 11:11

죽의 역사

나의 유년기 기억을 되짚어 보면, 죽은 말 그대로 ‘죽이 아니면 안 될 때’ 먹는 음식이었다. 지독한 감기 몸살에 입맛이 사라졌을 때, 과식으로 심하게 급체했을 때,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먹는 음식이 바로 죽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시절 내게 죽이란 대부분 희멀건 미음 같은 외관에 겨우 간장과 참기름 몇 방울뿐인 단출한 모양새였다. 또 죽은 어쩜 그렇게 매번 뜨거웠는지.

그렇게 초라한 환자식 정도로만 여기던 죽의 역사는 사실 꽤 유구하다. 현재 인류가 주식으로 먹는 밥이나 빵은 고압고온으로 찌는 방식이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이전의 인류는 끓이는 방식인 죽을 먼저 먹었다. 문명의 아득한 첫 페이지를 굳이 펼쳐보지 않더라도, 배곯던 보릿고개의 주식은 죽, 또는 죽의 형태를 한 어떤 것이었다. 묽게 끓여내면 밥 한 공기로 3~4인분의 죽을 만들 수 있고(물론 그만큼 빨리 배가 꺼지긴 하지만) 쌀이 아니면 보리로, 보리도 아니면 나무껍질이라도 넣어서 끓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죽이었으니까.

Ⓒ플리커

요즘은 죽도 하나의 요리로 자리 잡았고, 프랜차이즈도 꽤 번창해서 다양하고 맛있는 죽이 많다. 가끔은 아픈 데도 없는데 일부러 죽 가게를 찾아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삼계죽이나 소고기죽을 좋아한다. 또는 얼큰한 맛으로 개량된(한국인은 어쩔 수가 없다. 얼큰해야 팔리나 보다.) 불낙죽도 별미다. 여담이지만 ‘죽을 쑨다’는 표현에서 ‘쑨다’는 동사가 지닌 부정적인 의미 때문에 시험 같은 중요한 일이 있기 전엔 죽을 먹지 않았는데,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불낙죽(不落粥)이 그런 죽의 억울한 징크스를 깼다나, 어쨌다나. 아무튼 나는 해장국 대신 불낙죽을 먹곤 했다. 끼워 맞춰보면 의미는 통한다. ‘숙취에도 쓰러지지 않고 일어나게 만드는 죽’ 정도로 말해본다면.

치유의 음식, 죽

4년 전쯤, 여자 친구가 심한 감기 몸살로 앓아누운 적이 있다. 사실 그날이 상세히 기억나진 않는다. 어쩌면 5년 전이었을까. 아무튼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조금만 걸으면 찾을 수 있는 죽 가게를 놔두고, 좁은 원룸 부엌에서 희멀건 쌀죽을 끓였더랬다. 한낱 라면보다도 단순한 조리법. 요리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음식. 이제는 불어 터져 으깨진 밥알처럼 흐리멍덩한 그날의 기억 중에 한 가지 선명하게 남아있는 건, 물이 끓고 밥알이 풀리고 끝내는 죽이 되는 일련의 과정이 참 더디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결국, 그 더딘 과정을 기다리는 일뿐이었다는 것도. 그 쌀죽을 먹고 여자 친구의 증세가 좀 나아졌었는지 어땠는지도 기억이 없다. 아마 내 초라한 정성을 타박할 수 없어서 몇 숟갈 겨우 뜨고서는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암 투병 중이었던 아내를 위해 직접 요리를 한 인문학자 강창래 씨의 부엌 일기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에는 콩밥으로 끓인 죽에 대한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그가 아내를 위해 만든 그 죽은, 내가 4~5년 전 끓였던 쌀죽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정성이 들어갔다. 상황버섯을 12시간 우린 물에 쌀을 담가 다시 1시간쯤 불린 후 밥을 짓는다. 그렇게 지은 밥에 찰발아현미와 발아현미, 무려 6종류의 콩과 아마 씨, 강황 가루를 더해 죽을 끓여낸다. 버섯 우린 물은 미리 준비해두기야 했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한 그릇의 죽을 위해 꼬박 하루의 절반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감기 몸살과 암이라는 질병의 경중만큼이나 내가 끓였던 쌀죽과 그가 끓인 콩밥죽의 격차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죽 한 그릇을 닮은 사람

대부분 음식들이 그렇지만, 누군가 해준 음식을 먹기만 할 때와 달리 직접 요리를 해보면 한 그릇의 정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특히 자신이 먹을 음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음식이라면 더더욱. 돈만 내면 뚝딱하고 나오던 죽 한 그릇의 숨은 정성을 알고 난 뒤, 누가 아프면 대뜸 “죽이라도 챙겨 먹어” 하는 말이 튀어 나온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겐 할 수만 있다면 직접 죽 한 그릇을 끓여주고 싶다.

편의점에 가면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인스턴트 죽도 있다. 죽과 인스턴트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인다. 물론 당장 내가 조리하는 시간이야 3분 정도지만, 어쨌든 미리 푹 끓였다가 식힌 인스턴트 죽이니 영 인스턴트라고만 보기에는 서운할 만한 구석도 있다. 상황이 급하면 그런 인스턴트 죽이라도 사오는, 그 마음만큼은 결코 인스턴트가 아닐 테다.

역사 속 가난의 허기를 달래고, 지친 심신에 든든한 온기를 더해줬던 죽. 보양식이 될 만큼 푸짐하고 거창하지 않아도, 모든 죽에는 쉽게 식지 않는 온기가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죽 한 그릇 전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죽 한 그릇을 닮은 따뜻한 사람이 있다는 건. [논객닷컴=김경빈]  

 김경빈

 글로 밥 벌어먹는 서른. 라디오 작가 겸 칼럼니스트, 시집 <다시, 다 詩>의 저자.

 논객닷컴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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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빈  qlsrudrl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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