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구의 문틈 금융경제]

[오피니언타임스=김선구] 1997년 말 불어 닥친 외환위기 이후 사회 각 분야에서 개혁이란 이름으로 많은 변화의 광풍이 불었다. 외환위기 이전부터 줄기차게 논의되던 은행의 민영화도 속도를 내기 시작해 이제는 민간은행들이 크기나 모든 면에서 은행권을 리드하고 있다.

선진국을 포함해 은행에 대한 국민여론에는 이중성이 있기 마련이다. 은행이 부실해지면 예금자보호를 위해 공적자금이 투입되기도 하는 문제로 인해 부실경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다른 산업에 비해 큰 한편 이익을 많이 낼 때는 예금자나 차입자등 고객을 등쳐먹는다는 비난도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세계금융의 중심시장으로 자리 잡은 런던이나 미국 뉴욕월가는 말할 것도 없고 싱가폴이나 홍콩에서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업은 양질의 고용을 창출하는 중요한 산업으로 인정받는다.

ⓒ픽사베이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금융 산업이란 단어보다 금융기관이란 말에 익숙하다. 정부의 산업경제정책을 도와주는 하나의 정부산하기관이란 의미가 묻어나는 어휘다.

금융 산업의 획기적인 발전을 바라는 비전을 담아 “동북아 금융허브”를 구호로 내걸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정권도 있었다.

역설적으로 금융이 산업으로 제 역할을 감당하려면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책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정부의 입김이나 훈수를 줄이는 게 필수적인데 우리정부는 말로는 금융의 발전을 외쳐대면서도 산하기관 다루는 듯한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

은행을 감독하고 관리하는 주체로 정부조직상 금융위원회가 있고 금융위원회의 위임을 받아 금융감독원이 실무를 맡고 있다.

은행경영진은 두 기관으로부터 명시적이건 묵시적이건 어떠한 지시사항이 전달되는 지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정부의 눈치를 보며 그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했다.

금년 5월에 출입기자간담회에서 금융위원장이 한 발언은 이러한 관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부에서 중요 직책을 맡고 있는 그의 처지에서 청년실업문제를 고민하는 건 이해가 되지만 사오십 대 은행원들을 퇴직금을 더 많이 주더라도 희망퇴직형태로 많이 내보내고 그만큼 이삼십 대 청년채용을 늘려달라는 주문은 금융정책 최고 관리가 한 말로는 지나치다.

한국은행자료에 의하면 건수기준으로 은행점포에서의 직접거래비중이 2018년 3월말 기준 9.5%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여 동네마다 같은 은행 인접점포가 통합되며 문을 닫고 떠난 빈 점포가 눈에 뜨인다. 한국은행자료에 의하면 2014년 말 7557개에 달하던 은행점포수가 2018년 3월말 기준 6963개로 줄었다 한다. 인터넷뱅킹이나 모바일뱅킹이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동력인데 이러한 변화는 지속되리라는 판단에 비추어 적정 은행원수는 줄어드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합리적으로 보인다.

2018년 7월 23일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금감원장 초청 은행장간담회에서 나온 발표문은 우리나라 은행이 정부와 어떤 관계인지 그 민낯을 보여준다.

하반기 채용인원을 작년보다 54% 늘어난 4600명을 뽑기로 했고 또 3200억 원을 은행권공동으로 출연하여 일자리창출펀드를 만든다 한다. 그리고 1000억 원 규모의 금융산업공익재단을 설립하고 3년간 은행권공동으로 7000억 원 규모의 사회공헌사업도 실시하다고 하니 금감원장은 높은 분들에게 자랑할 선물 보따리를 받은 셈이다. 각 은행장들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이런 결정을 했다고 보이지는 않고 은행 연합회가 중간에 서서 정부의 의중을 반영해서 조율한 결과물로 보인다.

우리나라 주요금융그룹회장이나 은행장들은 국가경제를 위한 소신발언은 커녕 자신들의 고유 업무에 대한 정부의 간섭에도 제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것을 당연시한다. 물론 민간 기업에 전 방위적인 압박수단을 이용해 눈 밖에 난 기업이나 경영진을 혼내주는 정부의 책임이 크지만 정부의 잘못된 관행과 간섭에도 자신의 임기만 탈 없이 넘기려고 정부눈치나 보는 최고경영자들로는 금융이 튼튼한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 나라의 대표적인 금융그룹의 수장자리는 자신이 속한 분야는 물론 국가경제를 큰 틀에서 깊이 또 멀리 볼 수 있는 경륜을 갖춘 인물들이 그런 자리에 올라야하고 필요하다면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파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고언을 내야 건강한 나라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인으로 꼽히는 미국 최대 은행인 제이피모건체이스(JPMorgan Chase)의 재미 다이몬(Jamie Dimon) 행장은 금년 7월23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다이몬행장은 인터뷰에서 무역전쟁, 인프라투자, 이민, 소득불평등, 교육 등 사회전반에 대해 그의 솔직한 견해를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의 말중 우리나라 은행장이나 금융그룹회장들이 새겨들으면 좋은 부분의 일부를 소개한다.

“대통령의 모든 정책에 대해 동의하지 않으나 함께 일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모든 정책을 지지하는 게 아니더라도 정부와 함께 일할 수 있다”, “정부와 함께 일한다 해서 정부의 모든 정책을 지지하는 건 아니다”

그는 구체적으로 트럼프의 어떤 정책에 대해 자신이 왜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지를 상세히 말했다.

우리나라 은행을 보면서 마치 중국식 정치체제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즉 정부가 허용하는 틀 안에서 주어지는 자유다. 중국이 정치적으로 민주화되기에 멀어 보이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금융이 산업으로 자리 잡기도 요원해 보인다. 

 김선구

 전 캐나다 로열은행 서울부대표

 전 주한외국은행단 한국인대표 8인 위원회의장

 전 BNP파리바카디프생명보험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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