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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을 써야 할 사람이 회고록을 쓰는 나라[이영환의 코리아 프리미엄 프로젝트]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18.08.20 10:23

[논객닷컴=이영환] 옛말에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호랑이에게는 호피(虎皮)가 호랑이를 기억할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기에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고, 사람은 자신의 이름 석자가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데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인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서전을 출판하는 것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뭔가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원초적인 감정의 표현을 무슨 이유로 비난하겠는가? 필자가 좋아하는 가수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에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하는 가사가 있지 않은가.

자서전은 크게 나누면 회고록이나 참회록의 형식을 취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참회록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 회고록을 쓴다는 데 있다. 이것은 유독 한국사회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기현상인데 전직 대통령들이 이에 앞장서고 있다. 회고록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이룩한 업적을 널리 알려 사람들의 공감을 유발하고 그래서 사후에도 좋은 평판을 유지하고픈 마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픽사베이

회고록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었던 것은 윈스턴 처칠의 『제2차 세계대전』일 것이다. 처칠은 상업적인 성공은 물론, 이 책으로 195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광도 얻었기 때문이다. 한편 참회록은 자신의 삶에서 부끄러웠던 부분을 반성하고 사람들에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충고하려는 의도에서 씌어 진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참회록 가운데는 문호 톨스토이의 『참회록』이 가장 널리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읽는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필자는 자신의 진짜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해 이야기를 전개한다면 회고록이든 참회록이든 명칭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참회록을 써야 마땅한 사람들이 회고록을 쓴다면 이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특히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사회지도층에 속했던 인사들 가운데 이런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사례가 종종 있다는 것은 문제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것은 자신의 오만과 무지를 드러내는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자신이 내린 결정은 항상 옳다는 오만에 사로잡혀 있거나 자신이 저지른 과오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따라서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행위를 할 자유가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일 뿐이다. 건전한 사회에서는 누구든 사회규범에 저촉되지 않게 행동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것은 불문율이다. 참회록을 써야할 사람들이 회고록을 쓴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회규범이 존재하지 않거나 무용지물로 전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사회, 가치가 전도된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날 것이다. 이것은 사회통합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급기야는 사회해체를 초래할 수도 있는 중대 사안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국사회는 여전히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게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로 평가 받고 있지만 사회 저변에 흐르는 문화적·정신적 수준은 여전히 후진적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커녕 천박한 이기심과 위선적 행위가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촛불혁명이 일어나고 정권이 바뀌어도 이런 문화적 풍토는 나아질 조짐이 전혀 없어 보인다면 이는 필자의 기우인가? 그렇지는 안다고 본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사건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충남도

이와 관련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얼마 전 한국사회를 강타했던 “미투운동”은 한국사회의 저급한 남성위주 문화를 타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런데 최근 전개되는 상황으로 인해 미투운동의 기본정신이 상당히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법적인 판단에 맡겨서는 안 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당사자들이 법적으로 대응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 것부터가 잘못이다. 이것은 가해자들이 내심으로는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이들은 자신이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상대방 여성에서 부당한 성적 요구를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들은 책임을 통감하고 이에 상응하는 벌을 자청해야 하는데 어느 누구도 그리 하지 않았다. 법정으로 가면 자신들이 유리하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오만의 표시다. 이런 면에서 이들도 참회록 대신 회고록을 쓰는 인간들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다른 사례로 최근 종교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렴치한 행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는 종교 문제에 대해 말을 삼가는 것이 신상에 이롭지만 이번만큼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불거진 문제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오래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될 조짐이 없기 때문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종교의 근본정신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될 것이다. 오래 전부터 이와 유사한 문제들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종교계의 위선과 타락이 일부 성직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가장 영적이어야 할 사람들이 가장 물질적으로 행동하는 이런 전도(顚倒)된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암울하다.

우리나라 최대 불교종단인 조계종의 행정을 총괄하는 총무원장의 자리에 있는 스님이 숨겨놓은 자녀가 있다는 의혹에 대처하는 모습에서 권력에 집착하는 인간의 전형을 보게 된다. 세계 최대 장로교회라는 명성교회에서 벌어진 변칙적인 세습 사건 또한 종교의 본질을 훼손하는 탐욕스러운 행동이다. 종교의 근본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들의 오만과 무지 때문이다. 이들의 의식(意識)을 지배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방어기제를 최대한 작동시키는 것일 뿐,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현재의 권력과 부를 유지할 수 있다면 어떤 궤변도 늘어놓을 수 있고 악마와의 거래도 불사할 것처럼 보인다. 이들의 행위도 참회록을 써야 할 사람들이 회고록을 쓰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오만과 무지의 결과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이 지난 7일 숨겨둔 친딸이 있다는 의혹과 관련 서울의대 법의학교실에서 유전자 검사 동의서를 작성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이와 같이 표면적으로는 전혀 달라 보이는 행위들의 이면에는 공통 요소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몇 가지 사건들 외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사건들이 비일비재한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또한 이들 몇몇 사람들만이 이런 의식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힘 좀 쓰는 자리에 있는 인사들은 잠재적으로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그럴까? 이들은 일반대중을 우습게 보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이 국민을 우습게 보지 않았다면 그렇게 당당하게 회고록을 출판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민의 거센 비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교든 기독교든 신도들을 존중하고 종교의 근본 원리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면 이들이 계율을 어기고도 이를 감춘다거나 교회 세습이라는 가장 세속적인 방법으로 권력과 부를 유지하려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모두 이들의 오만과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잠재적으로 이들과 같이 행동할 사람들이 주위에 널려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대부분 잠재적으로는 그들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의 위치에 있으면 십중팔구 그들과 같이 행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특정인의 행동을 비난하기에 앞서 이런 참담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 근본 원인을 찾아내서 해결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오만과 무지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오만의 뿌리도 결국은 무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서 무지란 단지 지식만이 아니라 지혜도 부족한 상태를 말한다. 무지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친 것은 바로 자신의 무지함을 인식하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진정 아는 사람이다.

미국의 물리학자 존 휠러(John A. Wheeler, 1911~2008)는 20세기 물리학계의 두 거장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와 공동으로 연구했으며 많은 학자들이 진심으로 존경했던 인물인데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우리는 무지의 바다에 둘러싸인 섬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지식의 섬이 커지면, 우리의 무지의 해변도 커진다.” 우리가 뭔가를 조금 알게 되면 이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조금이라도 무지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배워나가는 것이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결코 오만해지거나 뭔가 안다고 우쭐댈 수도 없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허하게 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춘추전국시대를 살다간 노자도 일찍이 도덕경에 “아는 자는 말이 없고 모르는 자는 말을 한다(知者不言, 言者不知)”라는 경구(警句)를 남겼다. 우리 모두 참회록을 쓰는 심정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이사

  <시장경제의 통합적 이해> 외 다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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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ylee11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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