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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을 안아달라고 했던 정치인, 그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석혜탁의 말머리]
석혜탁 | 승인 2018.08.22 09:50

[논객닷컴=석혜탁]  작년에 읽었던 그 책을 다시 편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다. 필자는 작년 5월 이 책을 읽고 <논객닷컴>에 쓴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상대적 강자였던 남성으로서 제 주위 김지영들에 대하여 너무도 몰랐다는 자책에 고개를 들기가 어렵습니다. 92년생, 02년생 12년생 김지영들은 앞으로 ‘맘충’ 따위의 소리를 듣지 않는 정상적인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1년이 훌쩍 지난 지금 ‘맘충’ 따위의 소리를 듣지 않는 정상적인 세상이 도래했는지 자문해보니 긍정적인 답을 내놓을 자신이 없다. 동시에 그런 ‘정상적인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던 한 인물이 뇌리를 스친다. 그는 대통령에게 이런 짧은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께
82년생 김지영을
안아주십시오.”

문재인 대통령에게 <82년생 김지영>을 선물하며 82년생 김지영을 안아달라고 부탁했던 사람, 고(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다. 아직도 그의 이름 앞에 저 으스스한 한자(故)를 붙여야 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청와대에서 오찬회동을 갖는 엄숙한 자리에서 소설책을 대통령에게 선물한 사람, 많고 많은 책 중에서도 <82년생 김지영>을 선택한 사람, 그는 정말 흔치 않은 정치인이었다.

정치인이 대통령에게 책을 선물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행위다. 진보정치의 아이콘으로서 약간 젠체하며 북유럽 복지제도에 대한 책을 추천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고전을 택할 수도, 경제 관련 서적을 권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소설책 <82년생 김지영>을 골랐다. 우린 그런 감수성을 지닌 정치인을 잃었다.

그가 속한 정당의 강령, 그가 말하는 정견에 동의하지 않은 부분이 매우 많았음에도 그를 좋아했던 것은 그가 가진 이런 감수성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동료 여성 국회의원들에게 장미꽃을 선물하기도 했던 로맨티시스트였다. 가령, 2011년 그가 장미꽃을 보낸 정치인을 보면 박근혜(당시 한나라당 의원), 이정희(당시 민주노동당 의원), 박선영 의원(당시 자유선진당 의원) 등 당파와 이념을 초월하였다. 7년 전 그는 이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3월 8일을 명절처럼 보내는 세계 각국의 관례대로 축하와 반성과 다짐의 마음을 담아 장미꽃 한 송이를 보낸다”

“다른 나라들처럼 3월 8일 무렵엔 꽃값이 세배나 오르는 상황이 어서 오길 기원한다. 발렌타인데이만이 아니라 세계여성의 날의 의미도 잘 아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도록 노력하겠다”

올해 3월 8일엔 여기자들 자리에 장미꽃과 편지를 고이 두기도 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축하와 다짐, 반성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냅니다.

권력의 힘으로 강제된 성적 억압과 착취가 침묵과 굴종의 세월을 헤치고 터져 나오는 현실을 보며 정치인으로서, 한 여성의 아들이자 또 다른 여성의 동반자로서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기 어렵습니다.”

여성 국회의원, 여기자 등 소위 힘이 있는 대상만 챙겼으면 그답지 않다. 국회 청소노동자, 정의당 여성 당직자 및 보좌진들도 그에게 장미꽃을 받았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유쾌하면서도 따뜻했던 정치인, 일상에서 말과 행동으로 보여준 실천적 페미니스트.

ⓒ노회찬 의원 블로그

그를 보내고, 그가 대통령에게 보낸 메시지를 다시 더듬어본다. 우리 사회는 ‘김지영’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가? 그가 떠난 뒤, 그의 정치적 과업을 잇겠다는 이들이 적잖이 나오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과 같은 거시적인 담론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 주위에 있는 ‘김지영들’에게도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정치인이 더 늘었으면 한다.

그가 보고 싶다. 진보정당의 성장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 필자가 그를 보고 싶어 해도 되는지, 그런 자격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의 음성이 너무도 그립다. 너무 무더운 날씨에 떠난 그가 이곳보다는 조금 더 선선한 곳에서 편히 쉬길 바란다. 남아 있는 우리들 앞에는 ‘김지영’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야 할 과제가 놓여 있다.  

 석혜탁

대학 졸업 후 방송사 기자로 합격지금은 기업에서 직장인의 삶을 영위
대학 연극부 시절의 대사를 아직도 온존히 기억하는 (‘마음만큼은’) 낭만주의자

논객닷컴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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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혜탁  sbizconom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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