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준의 신드롬필름]

[오피니언타임스=신영준] “마케팅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뭘까요?”

대학시절 들었던 한 강의에서 이름 소개도 건너뛰고 나온 교수님의 첫 질문이었다. 많은 대답들이 나왔지만 교수님께선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어 나온 “대학에서 소비자는 누굴까요?”라는 질문에 대부분 “학생들이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교수님은 “대학의 소비자는 여러분들의 부모님입니다. 그리고 기업의 채용관계자들이죠.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의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할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시간관념과 수업예절 같은 것에 집착하셨고 취업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이루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항상 강조했다. 사소하게는 모자와 슬리퍼 착용을 금지하고 수업 중간에 강의실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셨다. 그 결과 많은 학생들은 간섭과 잔소리가 수업내용의 반 이상이라며 강의평가점수를 낮게 주었다. 하지만 극소수는 꼭 들어야 하는 강의라고 말했다.

ⓒ픽사베이

며칠 전 한 후배가 입시학원 보조 선생님에 지원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최저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였지만 첫 면접부터 심상치 않았다고 했다. 기본적인 신상파악 후 혈액형을 물었다. “어머, 그 혈액형처럼 안 보이는데? 그 혈액형은 좀 이러저러 하지 않나? 그쪽은 오히려 다른 혈액형처럼 보여요” 후배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종교가 어떻게 되세요?” 후배는 답했다. “독실하진 않지만 A종교입니다.” 그 대답에 “아...독실하시진 않으시구나? 저희 원생들이 대부분 독실한 B종교라서 전에 있던 선생님이 종교문제로 원생과 다투고 그만두는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물어 봤어요” 그 면접은 잘 끝났고 후배가 마음에 든다며 2차 면접을 보러 올 수 있겠냐며 2차 면접은 인적성검사라고 했다. 그 학원은 학원가의 중심에 있으며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꽤나 높은 명망 있는 입시학원이었다. 학부모들은 아르바이트생 한명조차 이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서 뽑는다는 것에 열렬한 지지를 보였고 안심했다. “우리 애가 어떤 앤데!”라며 말이다. 하지만 그 후배는 2차 면접을 포기했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고등학생들의 교육을 지원하는 종사자에게 높은 도덕성과 자질을 요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인터뷰 당사자였던 후배는 굉장히 불쾌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문득 대학시절 들었던 그 수업의 교수님의 말이 떠올랐다. 마케팅의 목적은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그 입시학원은 아마 소비자를 학부모로 설정하고 20000% 정도 만족시킨듯하다. 그 주변 학원가 대다수가 다른 전략을 펼치겠지만 핵심은 학부모에게 아이의 교육을 위해 뭐든지 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학생들 입장에서도 까다로운 관리와 통제된 환경 속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투명하고 막막한 입시의 두려움을 덜어주는 것이다.

그 학원은 구매력 있는 소비자가 누구인지 파악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뭔지 알았다. 그래서 마케팅에 성공한 것이고 소위 장사가 잘 된 것이다. 하지만 교육 분야에서 자본의 논리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점이 내 입장에선 불편하다. 물론 학생을 수용하는 시설과 더 나은 교육요건을 제공하기 위한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녕 교육의 목적이 부모나 채용관계자들의 만족을 위한 것임이 올바른 것인가?

한 교수가 말하던 마케팅적 측면에서 보자면 학원가들도 결국 사익을 추구하는 곳이기에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넘어가자. 하지만 적어도 대학교 강단에서의 그 발언은 옳지 않다고 본다. 대학은 더 큰 학문을 탐구하고 자유로운 생각과 사상을 만들어주고 스스로 인생을 결정하고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자유로움은 무계획적인 것으로, 개성은 예의가 없음으로, 다양한 학문을 탐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것으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담대함은 거만함으로 치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학의 소비자는 부모나 기업이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소비될 지는 스스로 정할 수 있어야 한다. 

신영준

언론정보학 전공.
영화, 경제, 사회 그리고 세상만물에 관심 많은 젊은이.
머리에 피는 말라도 가슴에 꿈은 마르지 않는 세상을 위해...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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