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연의 하의 답장]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택배를 받았다. 상자 안에는 두 권의 책이 들어있다. 어쩌다 급박하게 이 책들을 주문했는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직관적으로 재빨리 책을 선택하고 결제를 완료했다. 그러고 보면 늘 이런 식으로 책을 구매하는 것 같다. 사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당장 구매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돈까지 완벽하게 입금을 해야 마음이 놓이는 완벽한 충동구매인 셈이다. ‘꼭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어!’가 아니다. ‘이건 사야 돼’.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때가 되면 사리라, 하는 책들은 거의 구매되지 않는다. 대부분 어딘가에서 빌려보거나 유령처럼 목록에서 사라진다. 직관에게 선택받지 못한 책들의 운명은 그러한 법이지. 수중에 책이 들어오기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책은 더 이상 예전처럼 쉽게 구매되어 소장되는 종류의 물건이 아니니까. 책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책을 읽는 사람들의 수가 줄면서 책과 독서인이 희귀해지는 바람에 책 자체의 가치는 더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이젠 책은 은근한 사치품의 영역에 포함된 건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고.

ⓒ픽사베이

서점엔 항상 사람들이 붐비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주변엔 독서인이 거의 없다. 책은 서점이 아닌 곳에서는 종적을 감추는 모양이다. 백화점에 즐비하게 들어선 명품매장의 광경에 비해 명품을 들고 다니는 사람의 수가 적은 것―내 눈에만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과 비슷한 이치다. 이젠 책을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책은 의미적으로는 명품이라 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명품이라 일컬을 순 없다. 이제 막 사치품으로 취급되기 시작한 병아리에 불과할 뿐. 읽고 싶어서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나처럼 사고 싶어서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 않나. 대놓고 책을 ‘인테리어’라 말하는 이들도 있는 걸 보면.

물론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책을 ‘사는’ 행위를 더 좋아한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오프라인에서든 온라인에서든 결제가 끝난 책을 받아 든 순간의 짜릿한 포만감 때문이다. 첫 페이지를 읽기도 전에 벌써 다 읽은 것만 같은 기분. 한층 지식이 쌓인 듯 이미 머릿속은 그 책으로 도배되어 있다. 생각해 보라, 갖고 싶었던 의류나 잡화들을 구매했을 때의 느낌과 거의 흡사하지 않은가? 뭐든 ‘구매’한다는 것은 확실히 심리적 허기를 달래주는 데 한몫한다. 다른 어떤 물건보다도 고귀하게 여겨지는 ‘책’이라 할지언정 마찬가지다.

나를 위해 치장하고, 나를 위해 물건을 사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그 누군가에는 ‘나’도 ‘너’도 ‘당신’도 모두 포함된다. 심리적 허기는 보통 내가 사랑받지 못할 때 느껴지기 마련인데, 내가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진다든가, 외로움에 사무쳐 발버둥을 친다든가, 하는 대부분의 상황이 이에 해당된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물건이 가득 걸린 곳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옷이나 화장품, 가방, 자동차보다 ‘좀 더 있어 보이는’ 책이 널린 서점에 사람들이 유독 부글거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좀 더 있어 보이는’ 사랑이 필요한 건 아닌지.

책을 산다는 건 지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행위일는지도 모르겠다.

이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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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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