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1990년대 무렵만 해도 전국의 5층 미만의 주택 옥상에는 대부분 노란 플라스틱으로 된 물탱크가 있었다. 당시에는 가정용 수도 공급이 전기소모가 많은 가압식 직수 공급보다 옥상의 물탱크에 물을 받아 아래층으로 내려보내는 낙하식이 공급이 많았다.

요즘은 이런 용도의 물탱크는 고층 아파트에만 일부 남아 있고, 일반주택에서는 볼 수 없다. 전기사정이 좋아져 웬만한 높이의 건물에는 직수공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행정당국은 주택가 상공을 노랗게 물들인 물탱크에 외관상 문제가 있다고 판단, 이를 가릴 수 있는 가건물을 옥상에 지을 수 있도록 했다. 주택의 크기에 따라 물탱크의 크기에 차이가 있었겠지만 구조적으로 크게 지을 수 없는 10여 평 남짓의 가건물들이었다.

수도공급 방식이 바뀌어 물탱크가 필요 없게 되자 건물주들은 가건물 안의 물탱크를 뜯어내고 주거공간으로 개조해 세를 놓거나 수납공간으로 활용했다. 이것이 이른바 옥탑방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픽사베이

가건물 형태의 공간이므로 냉난방에 취약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기 마련이다. 그래서 옥탑방은 영세 서민들이 싼 값에 세들어 사는 경우가 많아 영세민의 상징어처럼 불리게 되었다. 대통령 선거 토론에서 ‘옥탑방을 아느냐?’는 질문을 받고 머뭇거린 것이 그 후보가 떨어진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나는 20년 전인 1998년 옥탑방이 달린 현재의 집에 이사와 지금껏 살고 있다. 5평 정도의 옥탑방은 수납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집에서 산 지 13년째 되던 2011년 구청에서 난데없이 옥탑방 면적이 6㎡ 넓어졌다며 철거하라는 통지가 왔다.

2010년도 서울시의 항공측량 결과라고 했다. 나는 12년 동안 아무런 손을 대지 않고 살아온 옥탑방의 면적이 왜 갑자기 넓어졌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항공측량은 매년 봄가을 두 차례나 한다는데 12년 동안 한 번도 항측에 나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서울시의 답변을 듣고 나니 가슴이 탁 막혔다. 항측은 찍는 날의 기상이나 찍는 각도에 따라 안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서울시를 상대로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옥탑방으로 인해 나의 집은 불법건축물 대장에 올랐고, 매년 철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강제이행금을 물어야 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나는 이 건물의 준공검사가 나온 2년 뒤에 이 주택을 구입했으므로 옥탑방의 늘어난 면적은 그 2년 사이에 결정됐을 것이다. 정확히 이 2년까지 포함해 서울시는 항공측량을 14년 동안 잘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내가 사기 전에 초과면적을 잡아냈다면 이 집은 불법건축물 대장에 올랐을 것이고, 나는 물론 집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

민원을 제기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옥탑방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 준공검사를 받은 뒤 건물주가 옥탑방 면적을 늘리고 주거공간으로 개조하는 행위가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그것이 뒤늦게 항공측량에 나타나 전국적으로 많은 민원의 소지가 되고 있다.

그중에는 한 평도 안 되는 면적초과로 철거명령이 내려진 경우도 많았다. 항공측량은 주민의 재산권 행사와 관련된 행정이므로 정밀해야 한다지만 옥탑방의 그런 미세면적까지 잡아내 행정처분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나의 옥탑방 이야기는 순전히 지난 한 달여 동안 뉴스를 탔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옥탑방 체험 행정 탓이다. 박 시장은 7월 22일부터 8월 20일까지 한 달 동안 서민생활을 체험하겠다며 서울 성북구 삼양동에 있는 9평짜리 방 2개의 옥탑방살이를 했다.

굳이 옥탑방에서 살아야 서민들의 삶을 알게 되느냐며 보여주기 식의 ‘쇼통’행정이라는 비판이 많았지만, 선거 때만 되면 시장을 돌아다니며 물건값을 알아보는 척하는 것으로 서민 흉내 내는 정치인들보다는 진지하게 여겨졌다.

박 시장은 이번 체험을 바탕으로 강남과 강북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거시적인 정책구상을 발표했다. 비강남권에 4개 철도 노선 개설, 돌봄 시설의 90% 이상 배치, 서울시 공공기관의 강북으로 이전, 빈 집의 청년·신혼가구 활용 등이 골자다.

강남 비강남의 격차의 본질은 주민의 소득격차에 있다. 이 정도의 시책으로 소득격차 해소는 어림없겠지만, 그가 올여름의 기록적인 무더위 속 옥탑방에서 진땀을 흘린 결과라는 데서 의미가 있다.

옥탑방은 서울시만이 아니라 전국의 문제다. 옥탑방을 보다 값싸고 쾌적한 생활공간으로 이용하게 하는 것은 박 시장이 제시한 다른 시책에 못지않게 주민들의 소득증대와 민원해소에 실질적으로 기여가 되는 방법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박 시장의 옥탑방살이에서 옥탑방은 빠져있는 것 같았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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