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주의 혜윰 행]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어린이집 시절, 배려를 한답시고 오빠 필통의 샤프심을 산산조각 낸 일이 있습니다. 샤프심을 더 많이 만들면 칭찬받겠지 하는 생각에 저지른 일입니다. 기분이 들떠 ‘오빠, 나 잘했지?’ 하고 샤프심을 내미는 순간 오빠는 이게 뭐냐고 인상을 찌푸립니다. 칭찬 받으려 한 행동이 영문도 모른 채 수포로 돌아가 무척 속상했습니다.

위와 같은 사건들은 세상 곳곳에서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가난하게 살던 부부가 늘 식빵으로 허기를 채웠는데, 남편이 부인에게 계속해서 식빵 끝부분만 주더라는 겁니다. 참다못한 부인이 서운함을 표출하자, 그제야 남편은 사실 자신은 식빵 끝부분을 제일 좋아한다고 밝혀 아내를 무안하게 했다고 합니다. 아내가 맛있는 것을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맛없는 부분을 꾸역꾸역 먹었을 남편을 떠올려 봅니다.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나도 먹지 않고 남겨 놓았을까요?

ⓒ픽사베이

그러나 샤프심을 거절한 오빠와 식빵의 끝부분을 싫어했던 아내를 마냥 미워할 수 없습니다. 저 또한 비슷한 오해를 한 경험이 많기 때문입니다. 친구가 소중한 용돈으로 사준 선물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팽겨치기도 했고, 좀 더 쉬다가 해야 할 일에 온전히 집중하라고 나를 배려해주는 남자친구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8월 23일부터 26일까지 열린 ‘한국 근육 장애인 협회 여름 캠프’에 다녀왔습니다. 작년보다 규모가 커진 탓에 많은 장애인들과 봉사자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캠프에서 해마다 제가 하는 일은 주어진 예산에 맞게 선물을 사는 일입니다. ‘봉사자’라는 말을 듣는 것이 부끄러울 만큼 작은 일을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항상 고생이 많다, 수고한다’라는 말을 해주실 때마다 없던 힘이 마구 솟아납니다.

새로 오신 봉사자들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봉사자들 중에는 장애인 행사에 참여한 경험이 한 번도 없거나, 근육 장애인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제 갓 대학을 입학한 새내기들이 서툴지만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하나하나 배우려는 모습이 예뻤습니다. 사실 방학 때 시간을 내어 행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값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어르신들이 봉사자들에게 명령조로 일을 시키자 불만을 표출합니다.
“괜찮아, 그런 일은 봉사자 시키면 돼.”
“이걸 여기에 두면 어떡해요? 큰일 날 뻔했네.”

순간 어린 시절 내가 오빠를 위한 행동에 오빠가 오히려 화를 내어 속상했던 경험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용기 낸 봉사자들이 혹시나 힘을 잃고 상처 받을까봐 걱정되었습니다. 다소 거친 표현보다는 부드럽고 온화한 표현을 주고받고, 상대를 존중할 때 아름다운 봉사와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모두가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배려,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는 일’이 비록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해지지 않을지라도 도움의 손길을 당연하다거나 부족하다 생각하지 않고 항상 감사함을 느끼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최미주

일에 밀려난 너의 감정, 부끄러움에 가린 나의 감정, 평가가 두려운 우리들의 감정.

우리들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감정동산’을 꿈꾸며.

100가지 감정, 100가지 생각을 100가지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쪼꼬미 국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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