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요의 미디어 속으로]

[오피니언타임스=이상요] 방송은 남북한이 심리적 동질성을 회복시키는 역할에 적합한 매체다. 지금까지 남북 정부는 방송을 상호비방적인 심리전 매체로 이용했다.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를 맞이한 지금 방송은 남북간의 신뢰성 회복에 앞장서야 한다. 심리적, 문화적 동질감이 있어야 인적, 물적 교류도 원활해질 수 있다.

ⓒ픽사베이

서독방송 시청을 사실상 허용한 동독정부

동독정부는 분단 후 서독방송을 시청하지 못하도록 했다. 서독방송이 사회주의 반대 선전매체가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행정조직을 동원해 서독방송 수신을 감시하고, 서독방송 수신용 옥외 안테나를 파괴하기도 했으며, 수신자들을 형사처벌하기도 했다. 그러다 1970년대 들어 단속을 중단했다. 서독방송 시청을 사실상 허용한 것이다.

왜 동독정부가 서독방송 시청 단속을 중단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서독방송 시청을 동독정부가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동독은 서독의 PAL 방식과 다른 SECAM 방식을 TV방송 표준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SECAM 방식 TV수상기로도 PAL 방식의 서독방송을 흑백으로는 시청할 수 있었다. 셋톱박스를 설치하면 컬러 수신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 방해전파(jamming)를 쏘면 국경과 베를린 지역 동독주민들이 동독방송을 시청할 수 없어 이것도 할 수 없었다.

기술적 문제 외에 정치적인 문제도 있었다. 서독방송 기자들은 분단의 벽을 넘어 서독과 동독의 정치·사회에 대해 왜곡하지 않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와 해설을 방송했다. 심리적 비방도 없었다. 폐쇄체제 속에서 동독주민들은 서독뿐만 아니라 동독에 대한 객관적 정보도 서독방송을 통해 받아들였다. 서독방송은 정보에 굶주린 동독주민들에게 가치있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유일한 통로였다. 이런 상황에서 서독방송 수신 금지는 정치적 불안과 소요사태로 연결될 수 있었다. 주민불만 해소를 위해 동독정부는 이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동독주민의 정보 창구 역할을 한 서독방송

1985년 밤베르크 대학에서 동독 이주민 2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서독방송 시청이 가능한 동독주민 90% 이상이 거의 매일 또는 자주 서독방송을 시청했다. 오락 프로그램 보다는 동서독 문제에 대한 토론 프로그램과 저녁 뉴스 시청률이 더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동독TV를 자주 시청한다는 동독주민은 10% 정도에 불과했고, 약 70%는 동독TV를 거의 보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동독주민들에게 공정한 보도와 해설을 방송하는 서독TV가 가장 중요한 정보원이었다.

동서독의 경우 국경 개방 후 독일 통일 확정까지 5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20년에 걸쳐 방송을 통한 정보·문화 교류와 이를 통한 심리적 일치감 확대가 선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서독의 동방정책과 화해적 동독 지원 노력이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과 도보다리 산책을 마친 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홈페이지

동질성 회복을 앞당길 남북 방송교류

독일의 경우를 우리 상황에 대입하기는 어렵다. 동서독은 50~60년대 냉전시대에도 인적·물적 교류가 이루어졌다. 서독방송의 시청 허용으로 양쪽 주민간의 이질성 극복도 비교적 용이했다. 우리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도 없었다. 이 때문에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 이후 관계는 급속하게 개선될 수 있었다.

남북 방송교류는 동서독의 경우보다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남한은 한·미·일이 채택한 NTSC 방식인데 비해 북한은 유럽과 사회주의 국가들이 많이 채택한 PAL 방식이다. 송출·송신시설, 방송 중계차 등 방송기술 발달 수준에도 차이가 나서 먼저 이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더불어 제작 메카니즘, 북한 주민들이 선호하는 프로그램 포맷, 라이프 사이클, 기존 북한 방송프로그램과 방송 언어 등을 파악하고 난 이후라야 남북 방송협력의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위성방송의 역할 확대해야

남북 방송교류는 폐쇄사회를 고수해온 북한보다 남한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1992년 우리 정부는 비무장지대에 TV방송 송출 전환시설을 세워 비정치적 프로그램을 교환, 방송하는 방안을 북한과의 공식회담 의제로 삼기도 했다.

특히 위성방송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상파방송이나 케이블방송, 인터넷망을 기반으로 한 방송은 먼저 막대한 유무선 망인프라 건설이 우선돼야 한다. 이에 비해 한반도 전역을 방송권역으로 하는 위성방송은 접시안테나와 기지국 등 간단한 몇가지 인프라만 건설하면 바로 방송을 송출할 수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에 이미 위성방송을 송출한 경험도 있다.

남북 방송교류가 이루어지려면 남북간 정치적 신뢰가 기반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남북은 아직까지 50년대 동서독처럼 냉전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남북관계에 변화를 이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맞추어 다른 어떤 분야보다 남북간의 방송교류에 대한 대비가 시급하다. 

 이상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교양특별분과 위원

  전 <KBS스페셜> 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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