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서머셋 몸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 pence)

비참함은 예술가의 숙명일까

[오피니언타임스=김호경] “꼭 그래야만 했을까?”라는 의문이 강하게 든다. “더 좋은 방법이 분명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든다. 그 의문과 아쉬움을 묵살하고 “예술가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라는, 공인받지 못한 명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 소설은 매우 멋진 문장과 철학을 곁들여 강요한다. 반박하고 싶지만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화가 지망생을 보며 이것이 그의 운명이로구나, 한편으로는 수긍하고, 한편으로는 애처로워진다.

제목마저도 극히 예술적인 <달과 6펜스>는 예술에 대한 사색과 인물 추적기를 아우른 종합 보고서이다. 전반부는 약간 지루하고 중반에 잠깐 위안을 받기는 해도 후반에서는 우울해진다. 슬퍼서 눈물이 난다. 그래서 예술가들, 특히 화가들이 측은해지고, 누군가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면 말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김호경

그림 한 장에 수십억, 심지어 수백억 원에 판매되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사람들은 ‘화가들은 모두 부자’라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직업군이 예술가들이다. 100만 원짜리 그림을 1년에 1점도 팔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예술가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이 하지 못하는 예술을 하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비참하게 죽은 화가일수록 더 추앙을 받고 그림값이 한없이 비싸다는 사실이다. 현재 거래되고 있는 그림값의 1000분의 1만이라도 생전에 받았다면 그 화가는 그토록 비참한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예술가의 숙명인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사라진다면?

부모들은 자식들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1)돈을 많이 벌고, 2)권력을 잡고, 3)이름을 날리기를 바란다. 하고 싶은 것보다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안정적인 일을 하라고 강요한다. 그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대부분은 그 강요를 따른다. 그러나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거에요” 소리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못된 돌연변이 자식이 있다. 그들 덕분에 세상은 발전하지만 그 과정은 너무 힘들고, 어렵고, 고난의 가시밭길이며 비웃음이 가득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세상은 변하고 또 변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격려하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보기엔 그 부모가 진보적이고 전향적인 사고를 가져서가 아니라 ‘자식을 이길 수 없어서’이다.

만약 증권회사를 잘 다니던 과묵하고 가정적인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며칠 후에 편지로 이별을 통보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 이유가 여자와 함께 도망을 쳤다면, 즉 정사(情事)의 문제라면, 문제는 아주 쉽다. 길면 2~3년 후에 돌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면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전혀 엉뚱한, 그야말로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이별(이혼)을 통보하고, 직장도 그만두고, 자식도 팽개치고, 돈도 남겨놓지 않고 홀연히 사라졌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고갱의 그림 ⓒ김호경
ⓒ김호경

‘돈’과 ‘꿈’ 사이에서 방황하는 사람들

찰스 스트릭랜드는 그렇게 사라졌다. 런던에서 홀연히 사라져 파리로 간다. 소문이 뒤를 따른다.

“시내의 어느 다방에서 일하던 젊은 여자가 바로 얼마 전에 다방을 그만두었다나 봐요.”
“엠파이어극장에서 발레 공연을 보았는데 거기 나오는 프랑스 무용수에게 반하여 함께 파리로 도망쳤다고 그러던데요.”
그 소문 덕분에 곤경에 처한 스트릭랜드의 아름다운 아내는 젊은 작가에게 ‘파리로 가서 남편을 만나 다시 집으로 돌아오도록 설득해 줄 것’을 부탁한다. 작가는 덕분에 파리로 가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그녀가 남편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은 남편을 사랑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세상이 수군거릴 게 두려워서인지, 나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남편은 그딴 것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파리의 뒷골목에서 어렵사리 만나 “도대체 부인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란 말입니까?” 비난하자, 즉각 답이 돌아왔다. “17년간이나 벌어 먹였으니 이젠 자기 손으로 벌어먹을 수도 있을 것 아니오?” 틀린 말은 아니다. 작가는 한참이나 논쟁을 벌이다가 “도대체 왜 집을 나오셨습니까?” 묻는다. 답이 황당하다.

“그림을 그리려고요.”

미친 짓이다. 단지 ‘그림 나부랭이’를 그리기 위해 가정과 직장을 팽개친단 말인가? 직장을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면 안 된단 말인가? 가정을 지키면서는 그림을 못 그린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화가는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단 말인가? 방법을 찾아보면 해결책은 얼마든지 있다. 아내가 돈을 벌고 남편은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찰스는 그 방법은 애초부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가 모든 것을 팽개친 이유는 단순했다.

어렸을 때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화가가 되면 가난에 쪼들린다고 강제로 나를 장삿길로 들어서게 한 거요. 그래서 한 1년 전부터 조금씩 그리기 시작하여 그동안 줄곧 밤에 그림 공부를 하러 다녔죠.

아, 슬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버지들은 아들(자식)이 돈을 벌어 잘 살기를 바란다. 화가를 택하여 가난하게 살지 않기를 바란다. 찰스는 아버지 말에 순종했고, 증권회사 직원이 되었고, 결혼도 했다. 그러나 어렸을 때의 꿈을 되찾기 위해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심지어 작가인 화자조차), 공감하지 못하는 행동을 저질러버린 것이다. 작가는 또 비난한다.

“하지만 당신은 나이 40이 아닙니까?”
이 비난은 옳다. 그러나 찰스의 대답은 더 옳다.
“그러니까 더 이상 꾸물거릴 수 없었던 거요.”

인간의 굴레 ⓒ김호경
서머셋 몸 ⓒ김호경

내가 읽은 가장 슬픈 소설

이 소설이 뛰어난 이유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 현재의 안위를 버리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가정과 사회에 열심인 것이 옳은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꿈을 찾아가라”고 외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 사람들은 예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 머지않아 틀림없이 백합꽃이 핀다고 생각하고 부지런히 아스팔트 포도 위에 물을 준다는 것은, 시인이나 성자가 아닌 이상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 사람은 영혼의 안정을 구하기 위해 매일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두 가지씩 하는 것이 좋다. 나도 이 교훈을 잘 지켜오고 있다. 매일 아침 마지못해 일어나고 저녁에는 잠자리에 드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 작가란 창작의 기쁨과 가슴속의 울적한 생각을 토로하는 일을 그 보수로 여길 뿐, 그밖의 일에는 무관심해서 칭찬을 받건 비난을 받건, 성공을 하건 실패를 하건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러한 명문장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등장인물도 실존했던 화가(폴 고갱)와 가상의 인물이 혼합되어 지식의 범위를 넓혀준다. 타히티 섬의 묘사와 토인(책 그대로의 표현)들에 대한 묘사도 무척 아름답고, 흥미롭다. 그래서 재미있다. 그러나 결말로 갈수록 기쁨과 우울함이 마구 뒤섞여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읽은 가장 슬픈 소설’로 꼽는다.

위안이 되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예술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려주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향해 용감히 돌진했음에도 찰스 스트릭랜드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사는 예술가는 여전히 많다. 그래서 슬프다.

* 더 알아두기

1. 영국 작가 서머셋 몸(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은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이 작품을 1919년에 발표했다. 그의 또 다른 유명한 소설은 <인간의 굴레>이다. 이른바 ‘자서전적 소설’로 불린다.

2. <달과 6펜스>는 프랑스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을 모델로 했다. 아버지의 이른 사망 – 떠돌이 생활 – 한때의 행복한 생활 - 가난 – 고행 - 이별 – 질병 – 우울증 - 자살 시도를 거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3. ‘6펜스’는 우리나라의 1원짜리 동전과 같다. 과거 영국은 화폐단위에 12진법을 썼기 때문에 6펜스, 12펜스로 돈이 만들어졌다. 20세기 들어 10진법을 채택하면서부터 1, 10, 100펜스 단위로 바뀌었다. 6펜스는 아주 작은 돈, 사소한 것, 그러면서도 현실적인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지만...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달’의 의미 역시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4. 그림을 주제로 한 소설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가 있다.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Jan Vermeer)의 작품을 모태로 했다.

5.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다룬 소설로는 제임스 조이스(아일랜드)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이 유명하다(읽기는 쉽지 않다). 화가의 마음세계를 알 수 있는 책은 빈센트 반 고흐의 <고흐의 편지>, 시인의 세계를 다룬 책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칠레)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El Cartero de Neruda)가 있다.

6. 한국 작품으로는 박완서의 <나목>(裸木)을 권한다. 이외수의 <들개>는 개 그림에 미친 남자가 주인공이다.

7. 고흐의 삶과 예술세계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영화는 2017년에 개봉한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이다. 그림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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