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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삶을 찾다[심규진의 청춘사유]
심규진 | 승인 2018.08.31 11:02

[논객닷컴=심규진] 제주 애월읍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풀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습니다. 엄마는 바다가 보고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거리의 사람들에게 바다가 어디 있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눈앞에 이미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이리가든 저리가든 도착지는 바다였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 바다로 직행할 수 있는 다리가 보였고 검은 색 바위들이 즐비했습니다. 물에 발을 담그고 바다와 마주하기 위해 다시 걸었습니다.

ⓒ심규진

파도가 보였습니다. 세차게 치지만 부드러운 손길. 넉넉하지만 애틋한 순간. 파도에 그저 몸을 맡기고 싶었습니다. 엄마는 물속의 진귀한 생명체인 보말(고둥의 제주도 사투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돌에 달라붙어 있는 그들의 힘겨움을, 엄마는 몸소 덜어주었습니다. 돌에 의지했던 그들의 숙명이 엄마 품에서 그저 쉬는 운명으로 바뀌었습니다. 금세 많은 녀석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양산이 아닌 우산을 펼쳐 태양을 가렸습니다. 느린 발걸음에 여유를 더하여 걸을 수 있도록 우산은 최선을 다해 비가 아닌 열을 막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제주도로 날아든 것은 아닙니다. 엄마의 공황발작 증세가 심각하다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았고 그 기억이 머릿속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아들로서 무언가 해야 했습니다. 평생을 바쁘게 살았던 엄마의 삶에 여유를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제쳐두고 제주도로 가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참 어려웠습니다. 정리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망설이지 않고 추진했습니다.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나의 손과 발을 빠르게 했습니다.

ⓒ픽사베이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운동도 꾸준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선 발작 증세만 치료하면 약을 먹으면서 생활하는데 문제없을 겁니다”

정신의학과 선생님이 말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한다는 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회사의 배려로 지금의 시간을 보다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증상은 30대부터 누적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수 십 년간 쌓였던 답답함이 오늘날 발작으로 튀어 나온 것이라고. 말이 발작이지 더 직접적으로 묘사하자면 일순간 누군가가 목을 졸라 숨을 쉬지 못하게 만들어 온몸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정신을 잃게 되는 살인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공황발작이 아닌 공황살인이라고 말해두고 싶습니다. 저는 제주도에 가족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살인자를 죽이러 온 것입니다. 녀석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 때문에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됩니다. 평소에는 건강한 사람보다 더 건강해보일 정도인데 갑자기 살인자가 도둑같이 찾아오곤 합니다.

ⓒ심규진

요 며칠간은 녀석이 잠잠합니다. 심리치료 덕분인지 열 개가 넘는 알약 때문인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덕분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녀석이 지금 펼쳐지고 있는 가족의 단단한 사랑의 끈을 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나의 처방이 아닌 모든 것이 합을 이루어낸 지금의 시간을 계속 유지코자 합니다. 당장의 돈, 그리고 제 미래보다도 더 소중한 엄마의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에 계산하지 않고 전진합니다. 그 길에 제주도가 함께 할 것입니다. 세계적인 관광도시가 아닌 생명을 살리는 치유의 땅으로 역할해주길. 제주 앞바다는 오늘도 쉬지 않고 파도칩니다.

엄마에게 평생 말썽만 부렸던 제게 효도의 기회를 제공해주신 와디즈 신혜성 대표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심규진

 퇴근 후 글을 씁니다 

 여전히 대학을 맴돌며 공부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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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진  zilso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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