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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찍어서 쓰는 글’[김영인의 잡설]
김영인 | 승인 2018.09.03 08:50

[논객닷컴=김영인] 서양 작가 사르트르가 말했다.
“글은 잉크가 아니라 피를 찍어서 쓰는 것이다.”

‘북간도(北間島)’를 쓴 작가 안수길(安壽吉)도 비슷한 말을 했다.
“펜촉을 통해서 내 피가 흘러나간다.”

글을 쓰는 작업은 아득한 옛날부터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지봉유설’에 나오는 얘기다.
“양(梁)나라 주흥사(周興嗣)가 하룻밤 사이에 천자문을 편찬해 임금에게 바치면서 수염과 머리털이 모두 하얗게 변했다. 집에 돌아오니 두 눈이 함께 실명했고, 죽을 때는 마음이 단전을 떠난 것 같았다고 했다.”

‘지봉유설’은 사례를 더 들며 반문하고 있다.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은 눈썹이 모두 빠졌다. 명나라 때 위상(魏裳)은 초사(楚史) 76권을 저술하고 심혈이 모두 없어져서 죽고 말았다. 주먹으로 해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픽사베이

베스트셀러 ‘엉클 톰스 캐빈’을 쓴 미국의 스토 부인은 글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하루에도 수백 통의 공갈·협박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흑인 노예의 ‘귀’를 잘라 넣은 소포가 배달되기도 했다.

스토 부인은 그래서인지 자신이 ‘엉클 톰스 캐빈’을 집필하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떤 독자가 찾아와서 “이렇게 위대한 작품을 쓴 손을 내가 잡아 봐도 되는가” 묻자, “이 책은 내가 쓴 게 아니다. 하나님이 썼다. 나는 단지 대필(代筆)을 했을 뿐이다”고 대답했다.

송나라 사람 동파 소식(蘇軾)이 유명한 ‘적벽부(赤壁賦)’를 지었을 때 친구가 물었다.
“이 글을 짓느라고 얼마나 오래 걸렸는가?”
소동파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까짓 것 일필휘지했지.”
그러나 실제로는 글을 고치고, 또 고치다가 구겨버린 종이가 ‘한 삼태기’였다고 했다.

‘적벽부’ 역시 피 말리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인지, 소동파는 글을 쓰지 말라고 읊기도 했다.
“인생은 글을 알고부터 우환이 시작된다(人生識字憂患始). 대충 이름을 쓸 수 있으면 그만둘 일이다(姓名粗記可以休).”

조선 말, 매천 황현(黃玹)은 글을 날카롭게 쓰는 선비였다. ‘매천필하무완인(梅泉筆下無完人)’이라는 평을 들었을 정도다. 황현의 예리한 필봉(筆鋒) 아래에서는 완벽한 글이 있을 수 없다는 소리였다.

그랬던 황현이 ‘글쟁이’ 노릇을 개탄하고 있다. 일본에 ‘강제합병’ 될 때 자결하면서 쓴 ‘절명시(絶命詩)’의 일부분이다.
“책을 덮고 지난 역사를 헤아려보니(秋燈掩卷懷千古), 글 아는 사람 구실하기가 어렵구나(難作人間識字人).”

ⓒ픽사베이

이런 ‘문장가’의 발바닥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기자도 글 쓰는 스트레스가 간단치 않다. 기사를 써야 먹고살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고지를 앞에 놓고 줄담배를 피운 기억이 새삼스럽다. 기사를 어떻게 시작할까 궁리하는 것이다. 원고지를 긁는 대신 글자판을 두드리는 요즘 기자도 다를 것 없다. ‘편집국 금연’을 지키려고 들락날락 또는 오르락내리락할 뿐이다.

해설기사나 기획기사 등 ‘원고지 몇 십 장’ 분량을 써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건강에 해롭다는 담배 ‘한 갑’을 깡그리 태워 없애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 바람에 기자는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월급쟁이에 비해 수명이 짧다는 통계도 있었다. 기자도 ‘피’를 찍어서 기사를 쓰는 셈이다.

기자가 어눌한 솜씨로 책 한 권을 ‘저술’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꼬박 3개월쯤은 ‘올인’이다. 200자 원고지로 1200장은 되어야 책 한 권이 어렵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은 ‘글쟁이’가 등장하고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글쟁이다. 기사는 물론이고 소설까지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인공지능 글쟁이’다. ‘인공지능 소설 공모전’까지 열렸다는 소식이 있었다. ‘인공지능 글쟁이’는 아마도 피를 찍어서 글 쓸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런 ‘글쟁이’는 그러고도 더 있었다. 대학교수의 ‘미성년 자녀’다. 자기 논문에 미성년 자녀를 ‘공저자’로 등록하는 것이다. ‘자녀 끼워 넣기’라고 했다. 교육부가 ‘전수조사’에 나서고 있다.

대학교수는 어쩌면 자신의 자녀에게 글 쓰는 고통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배려하고 있었던 듯했다. 그렇지만 빗나간 자식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만했다. 

 김영인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합통신 기자, 문화일보 기자·논설위원, 아시아투데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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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인  belly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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