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모처럼 서울에 갔습니다. 친구들과 모임 때문이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 뒤 한잔 더 할 곳을 찾다가, 한 친구가 포장마차에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더위가 한풀 꺾인 덕이지요. 포장마차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모두 어릴 적에 묻어놓았던 구슬이라도 찾아낸 듯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찾아보니 전에 함께 다니던 곳의 포장마차는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여기였는데? 느닷없이 청춘이라도 잃어버린 듯 모두 망연한 표정이었습니다. 도심에서 포장마차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 건 아니지만, 설마 했던 것이지요. 그러다가 간신히 하나 찾아낸 게 조금 애매했습니다. 포장을 치기는 했는데 포장마차가 아니라 포장하우스쯤 되는 술집이었습니다.

대로변 한 포장마차. ⓒflickr

자리를 잡고 앉아서도 대화는 젊을 적 포장마차에 두고 온 추억으로 이어졌습니다. 무용담이라도 늘어놓듯 너도 나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 소설가 친구가 SNS에 썼던 글이 생각나서 그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수십 년 전 어느 항구도시에 젊은 여인이 포장마차를 열었습니다. 이십 대 중반의 새댁이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장사를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고운 얼굴에 친절한 언행이 금방 소문이 나서 손님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메뉴는 순대와 머리고기, 소주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나무 걸상에 끼어 앉는 행운을 잡은 주객들은 쉽게 일어설 수 없었습니다. 술은 남았으나 안주가 떨어지면 새댁이 재빨리 안주를 몇 점 썰어 주고, 안주는 남았으나 술이 부족하면 술 한 병을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안주와 술은 서비스였습니다.

그런데 새댁이 서비스로 내놓은 술과 안주는 늘 엇박자였습니다. 즉, 서비스 안주가 술을 부를 수밖에 없고, 술이 안주를 부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서비스 안주와 술을 받아먹은 주객들은 그냥 일어설 수 없었지요. 새댁은 눈보라가 치거나 태풍이 오는 날에도 포대기에 아이를 질끈 동여매고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았습니다.

2년이 채 못 되어 새댁은 골목 입구에 손바닥만큼 한 가게를 잡아 들었습니다. 아이도 자라서 등에서 내려놓았습니다. 그새 새댁 티도 벗었으나, 그녀는 초심을 잃지 않아서 여전히 손님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몇 년 후, 그녀는 큰길가에 넓은 가게를 얻었습니다. 드디어 손님을 탁자에 앉힐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큰 가게가 밤낮없이 북새통을 이루었으니 금방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얼마 뒤 여인은 가게를 접고 그 도시를 떠났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래전에 소설가 친구가 보고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 친구가 얼마 전 고향을 찾아 옛 영화가 사라진 구도심을 걷다가 젊은 시절 자주 찾던 그 가게 상호를 보았답니다. 함께 걷던 친구에게 물었더니, 그 새댁이 할머니가 되어 돌아와 그 동네에 포장마차를 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설가 친구는 즉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곱던 얼굴에 주름이 졌지만, 분명 그 여인이 거기 있었답니다. 여인의 얼굴에는 깊은 시름이 드리워져 있더랍니다. 나중에 친구가 사연을 말해주는데 기가 막혔답니다. 등에 업고 키운 그 아들이 건달이 되어 평생 어머니 피를 빨아 먹고 살다가 급기야 큰 사고를 쳐서 복역 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소설가 친구는 “삶은 잔인하다”는 말로 글을 마쳤습니다.

ⓒflickr

저 역시 ‘잔인한 삶’이란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한 생을 살아가는 건 시련의 연속이니까요. 지금은 기업형 포장마차까지 등장했다고 하지만, 예전의 포장마차는 세상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포장마차 주인들에게는 참 많은 굴곡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제게도 단골 포장마차가 있어서, 주인의 사연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친구들과 만난 그날은 웃고 떠들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산 속에 있어도 끊임없이 들려오는 자영업자들의 가파른 삶에 관한 소식이 뇌리에 남아 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모처럼 포장마차에 가 앉으니 소설가 친구가 전한 이야기가 생각난 까닭도 있었습니다.

최근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곧잘 가슴에 못질합니다. 버티고 버티다가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이 매년 100만 명에 이른다고 하지요.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2017년) 폐업자 수는 90만 8,076명에 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줄폐업의 원인을 ‘최저임금’으로 상징되는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라느니, “정부의 경제 정책에는 문제가 없다”느니 공방이 치열합니다. 그럴수록 국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제 눈에는 단순히 정책의 문제는 아닌 거로 보이지만 다른 쪽 이야기를 들으면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사실 자영업자가 어려운 건 1~2년 사이의 문제는 아니지요. 또 최저임금이 원인이라면 종업원을 두지 않는 자영업자는 살아남아야 하는데, 오히려 폐업 통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결과를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구조적인 문제겠지요. 불황에 의한 고용 악화와 제조업 구조조정으로 직장에서 밀려난 이들이 문을 두드리는 게 자영업이고, 그러다 보니 말 그대로 시장이 과포화 상태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한번 망해도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다시 빚을 내 자영업에 뛰어드는 게 기본 순서지요. 막다른 골목에서 그것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만, 결국 폐업과 재창업이라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삶의 막다른 길에 서 있는 이들에게 정치권의 정책 논쟁이 무슨 위안이 될까요? 그조차도 정치적 이해득실이 깔린 진흙탕 싸움으로 보일 겁니다. 서민들에게는 오늘 먹을 밥과 가르쳐야 하는 아이들, 혹은 모셔야 할 부모가 중요할 뿐입니다. 그 ‘최소한’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정치의 기본이겠지요. 구호와 논쟁이 아니라 실질적인 방법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게 세금을 내고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이유일 테고요.

모처럼 서울 나들이, 그리고 포장마차에서의 한 잔이 편하지만은 않은 날이었습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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