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련의 그림자]

[오피니언타임스=최혜련] 공포를 유발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로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것’이 있다.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실상 나를 향해 총을 겨누는 적일 수도 있다는 공포는 서서히 사람을 죽인다. 요즘, 아니 예전부터 다수가 느껴왔던 공포였을 것이다.

나는 화장실 한쪽 벽면에 비이상적으로 많은 나사 구멍들을 본 후로 불법 촬영 문제와 마주했다. 뉴스 속에서만 보던 일이 내 일상의 현실이 되었다. 한번 인식하기 시작하자 꽤 많은 구멍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안에 카메라가 있을지, 내가 어디선가 찍혀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의문이 늘면서 걱정이 커졌다. 찍혀도 피해를 인지하지 못하기에 이를 생각할수록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청주공항 화장실 구멍들. ⓒ트위터 캡처

사실 불법 촬영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지 오래됐지만 아직 법의 심각성만큼 인식과 제도가 미비하다. 이 문제가 사람을 죽이는 괴물이 되게 한 원인으로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기술의 발전’이다.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더 이상 비디오테이프로 영상을 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도래했다. 이후 2000년대 초반 웹하드 시장이 형성되면서 불법 촬영물 유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2006년 유포 행위를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졌지만, 이미 웹하드에 바이러스처럼 퍼진 불법 촬영물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이 무렵 핸드폰이 카메라와 결합하기 시작하면서 타인을 쉽게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날이 갈수록 진화해 현재 무수히 많은 불법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를 낳았다. 안경, 차 키, 지갑, 시계 등으로 촬영할 수 있으며 탐지까지 어려워지고 있다. 무엇보다 모 인터넷몰에서 몰래 카메라를 생활용품 1위 제품으로 소개하고 판매한 적도 있을 정도로 누구나 별다른 제지 없이 구매할 수 있다.

둘째,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인식의 부재’다. 당연한 상식이라고 생각하지만 불법 촬영물이 범죄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모르는 척하고 소비하는 사람이 다수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웹하드 카르텔'편에 따르면 웹하드에서 100원에 팔리는 영상으로 헤비 업로더는 연 3~4억의 수익을 냈고, 웹하드는 200억을 벌었다. 어디 웹하드뿐이랴. 소라넷 회원 수는 121만이었고 이 사이트가 없어지기까지 17년 동안 수많은 불법 촬영물이 방치됐다. 아직도 일베, 이종, 도탁스 등의 사이트에서 불법 촬영물이 올라온다. 자신의 누나 여동생 여자친구, 심지어 어린 친척 동생까지 촬영해 올린다. 기괴하지 않은가.

또한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경향이 있다. 동의 없이 촬영한 가해자를 욕하기 전에 왜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가? 설령 촬영에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유포하는 것까지 XX녀, 걸레, 창녀, 죽어서는 유작 따위로 불리며 조롱받는 것까지 동의했는가?

ⓒ 픽사베이

셋째, ‘사법부 역할의 부재’다. 우선 촬영행위가 금지된 것은 1998년, 유포 행위가 금지된 것은 2006년이다. 그런데 아직도 불법촬영물을 소비하는 사람에 대한 처벌은 이뤄지지 않는다. 범법행위로 규정된 것도 미미한 처벌에 그치는데 아직도 소비행위는 금지조차 되지 않았다. 특히 성폭력 범죄에 있어 법원은 매우 관대하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점에서, 초범인 점을 고려해, 평소 행실이 올바른 의대생 혹은 판사이기 때문에-’라는 각종 이유로 용서를 베푼다. 수십, 수백 장을 찍어도 피해자가 미성년자여도 합의한 적이 없는 데도 쉽게 집행유예로 판결을 내린다.

누군가에게는 판타지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현실이다. 불법 촬영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디에나 존재한다. 노인과 성매매한 일명 일베 박카스남의 최초 촬영자가 공무원일 줄은 누가 알았을까. 주위에도 일베나 소라넷을 한 사람, 성매매를 한 사람 혹은 국산 야동이라 불리는 불법 촬영물을 소비한 사람이 있을 것이란 생각은 호러영화 못지않은 공포로 다가온다.

하루가 멀다고 기사가 올라온다. 한 지역에서 100일간 여성 대상 범죄를 검거한 결과 4천 728명이 검거됐다고 한다. 전국이 아니고 경기 남부지역에서만 말이다. 이 중에는 수원의 특정 고등학교 학생들의 불법 촬영물을 텀블러에 유포하고 판매한 사건도 있다. 언제까지 이런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을 봐야 하고 많은 이들의 일상이 공포로 얼룩져야 하는가. 지금도 많이 늦었지만, 반드시 지금 강력한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더 이상 그녀들의 피해가, 죽음이 가벼워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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