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의 촌철살인]

[오피니언타임스=김철웅] 문재인 정권의 사회경제개혁 의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보수·진보 양측 모두에서 그렇다. 사안을 명쾌하게 하기 위해 세 개의 질문을 던져본다.

지난주 수요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제도 개선 촉구 국민대회’를 열었다. 비가 오는데도 3만 명이 모였다. 흔히 보아왔던 민노총 등 노동단체가 주도한 행사가 아니었다. 식당·편의점·PC방 등을 운영하는 사업자 단체들 중심이었다.

광화문광장은 2016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촛불집회가 뜨겁게 타올랐던 공간이다. 거대한 촛불의 함성을 통해 문재인 정권이 탄생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촛불혁명’이라고 부른다. 이제 첫 번째 질문을 던질 차례다. 그렇다면 이날 소상공인들의 외침은 반혁명, 반개혁적 성격이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이들 주장에는 경청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이기주의나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요즘 살기가 갈수록 팍팍해진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저임금 노동자나 영세 상인이나 가릴 게 없다.

지난 20016년 광화문 광장의 촛불들. ⓒKBS NEWS

이들은 ‘자영업자 생존권 위협하는 최저임금 인상 즉각 철회하라’고 외쳤다. 평이하지만 절박하다. 제갈창균 한국외식업중앙회장은 “저임금 근로자를 위한 최저임금 인상이 영세 사업자들을 궤멸시키고 영세 근로자를 실직자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최저임금 결정에 자영업자 의견을 반영하고, 재벌개혁 없이 자영업자에게만 고통을 전가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인 최저임금 인상이 소상공인들의 쌈짓돈을 저소득 근로자의 주머니에 옮기는 정책으로 비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주장을 나름대로 풀어보면 이렇다. ‘최저임금 인상 취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올해 16.4% 인상하고 내년에도 두 자릿수인 10.9% 오르는 건 감당하기 힘들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차등 적용하는 등 지역·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책정하는 보완책이 필요하다.’

두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소득 주도 성장론이 유죄일까. 보수 언론, 정치인, 일부 경제학자들은 소득주도성장이 경제를 망친 주범이란 공격을 퍼붓고 있다. 학자에 따라서는 소득주도성장이란 개념이 이른바 ‘듣보잡’이라며 경제상식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적어도 지난 20여 년간 많은 경제학자가 소득분배 개선과 사회복지 강화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해 말해왔다”며 “소득 성장과 혁신성장이 보완적으로 작용해 산업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 이뤄지는 것은 모범적인 선진국 발전의 역사”라고 말한다.

소상공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달포 전인 7월 중순 ‘촛불혁명의 완수를 기원하는 지식인 일동’ 명의의 지식인 선언문이 발표됐다. 아직 문 대통령이 70%를 넘는 지지율을 누리고 있을 때였다. (최근엔 최저치 56%를 경신했다.) 선언문 제목은 ‘문재인 정부, 촛불정부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가?-사회경제 개혁의 포기를 우려한다’였다.

비교적 장문인 이 글에서 이런 대목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무능하고 부패한 거악(巨惡)을 무너뜨린 감격도, 남북 정상의 두 차례 상봉 장면을 보는 감동도, 먹고사는 일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금세 기억에서 사라져버립니다. …‘촛불혁명’ 당시 많은 시민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넘어서 재벌개혁, 부자 증세, 노동인권 보장, 주거·교육·의료 서비스 확충, 생명농업 육성, 지역균형 발전 등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구를 제기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런 것이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 대통령 집권을 가능하게 한 결정적 표어는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였다. ‘촛불혁명’에 의해 정권이 교체된 현시점에서도 민심을 싸늘하게 만들 수 있는 게 바로 ‘먹고사는 일’, 경제다. 촛불민심이 지금 원하는 것은 민생과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유능한 진보정권이다.

it's the economy, stupid copy ⓒflickr

이 점에서 문재인 정권은 취약성을 드러냈다. 지식인 선언문은 이렇게 말한다. “이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했을 때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당연히 발본적 재벌개혁과, 영세 자영업자의 지급능력을 키워줄 경제민주화 정책이 뒤따라서 최저임금 인상 정책과 결합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게 웬일입니까?…” ‘언 발에 오줌누기’식 미봉책이 뒤따른 건 불문가지이다.

지난달 25일 후배 원희복 기자가 쓴 ‘촛불민중혁명사’ 출간 기념 저자와의 대화에 참석했다. 저자는 책 결론 부분에 이렇게 썼다. “그러나 촛불혁명 내내 정치권, 특히 야당이 적극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30년 전 6월항쟁을 학생과 정치권이 주도했다면 2016년 촛불혁명에서 야당 정치세력은 한 번도 촛불을 주동적으로 이끌지 못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이 정권의 사회경제 개혁이 삐꺽 대는 모습이 촛불혁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한 것과 관련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질문이다. 

   김철웅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국제부장,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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