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범의 동서남북]

[오피니언타임스=김준범] 정치개입과 민간인 사찰의 대명사로 인식돼 온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9월 1일 ‘군사안보지원사령부’(Defense Security Support Command, 약칭 안보지원사)라는 간판을 달고 새로 출범했다. 1990년 11월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사찰 폭로 사건 때 ‘보안사’에서 ‘기무사’로 개명(改名)한 지 28년 만에 또 다시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될 경우 예상되는 소요사태에 대비해 계엄 선포를 검토해야 한다는 이른바 ‘기무사 계엄 문건’이 발단이 됐다.

우여곡절 끝에 3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해 온 국군기무사가 그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시대를 뒤로하고 이제부터는 야전부대에 필요한 정보를 지원해 주는, 필요하고도 친근한 조직으로 거듭날 것을 다짐한 것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국군기무사령부. ⓒYTN

새로 출범하는 안보지원사(안지사)는 크게 3가지 즉, ▲불법적인 정치개입 근절 ▲민간인 사찰 금지 ▲대통령 독대 관행 금지 등을 사령부령(令)에 명시하고 있다. 안지사는 이제 더 이상 과거 기무사 시절처럼 군인과 군무원에 대한 동향관찰 보고서 작성 같은 월권적 행위를 할 수 없으며, 고유 업무인 보안과 방첩 분야만 불법·비리 혐의를 조사할 수 있게 됐다.

부대 훈령에는 이처럼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명확히 구분, 권한의 오·남용을 근본적으로 차단했다. 훈령에는 이밖에도 △정치적 중립의무 △불법 정보수집 금지 △특혜제공 금지 △특권의식 배제 △인권보호 의무 △수사권 범위 △위반행위자 조치사항 등을 명문화했다.

부대편성도 보안·방첩 임무 중심으로 완전히 새롭게 재설계 했다. 건물로 치자면 일종의 리모델링을 한 셈이다. 정원(定員)은 기무사개혁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30%를 감축했고, 장성 숫자도 기존 9명에서 6명(중장1·소장1·준장4)으로 줄였다. 특히 정치개입 논란이 일었던 사령부 융합정보실과 예비역지원과는 해체했고, 50여 개였던 예하부대도 사단 지원부대 20여 개를 해체해 30여 개로 대폭 감축했다.

부대 규모가 작아지고 장군 숫자도 줄었지만 사령관의 계급은 더 낮추지 않고 종전대로 중장급을 유지했다. 그것도 중장 직위인 특전사령관을 지낸 남영신(ROTC 23기) 육군 중장을 사령관에 보임한 것이다.

계엄업무는 본래 합참 소관이다. 합동참모본부 직제(제2조12호)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합참의장이 맡으며, 외부 도발 상황이 발생할 때 대비하는 것은 합참의장의 지휘에 따라 육군참모총장이 수명(受命)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이번 기무사 계엄문건에는 권한도 없는 육참총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아 전방의 병력을 마음대로 후방으로 이동시켜 놓고 휘하에 병력도 없는 합참의장에게 북한의 도발에 대비하라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닐 수 없다.

본래 독립 전투여단급 이상의 부대를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은 합참의장에게만 있다.(국군조직법 제9조). 또 계엄군 배치를 위해 부대를 이동하려면 군령권을 가진 합참의장의 명령이 반드시 필요하다.

‘안보지원사’ 공식 출범 뉴스 화면 캡처. ⓒKBS News

당초 군령권은 1990년 국군조직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각 군 참모총장에게 있었다. 그런데 위수령(衛戍令)에는 이 개정사항이 반영되지 않는 바람에 군령권이 종전처럼 육참총장에게 귀속된 것이다. 바로 이런 허점을 알고 있는 기무사가 이번 계엄문건에서 병력출동시 육참총장의 명령에 따르도록 하고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에게는 사후에 보고하는 식의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기무사가 작성했다는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과 ‘세부계획’ 등 두 개의 문건은 기무사 3처(대공처) 산하 TF팀에서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문건은 너무도 구체적이어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도상훈련일 뿐’이라는 답변은 한낱 변명에 지나지 않음을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계엄사령관은 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이 맡아야 하는데, 기무사 문건에는 육군참모총장이 맡는 것으로 돼 있다. 각 군에 대한 작전 지휘권, 즉 군령권은 합참의장이 행사할 수 있으며, 각 군 참모총장은 자군에 대한 군정권(행정·군수·교육 등)만 행사할 수 있게 돼 있다.

문건은 또 국가정보원장도 계엄사령관의 지휘를 받도록 편제돼 있는데, 만약 그럴 경우 계엄사령관은 대통령 다음의 실권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1979년 10.26 직후 계엄 상황에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겸 합수본부장이 중앙정보부장까지 겸직함으로써 양대 정보기관을 장악했던 기억을 연상시킨다.

문건은 또 국회 동의가 필요한 점에 대비해 여당이 계엄령 해제를 결의하지 못하도록 출석을 저지하는 한편 언론 접수계획도 세워 두었다. 국민 여론을 장악하기 위해 언론 검열업무를 어떻게 할지, 몇 명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워 둔 것이다. 계엄사는 어디에 설치하고, 정부 각 부처에는 어느 정도의 병력을 배치할 것인지 등도 세부적으로 정해 놓았다.

예컨대 계엄이 선포되면 청와대에는 △보병 30사단 1개 여단 △1공수 여단 △탱크 40대 △장갑차 100여대 △무장병력 900명 △특전사 700명 등을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또 △세종로 정부청사 △헌법재판소 △국회의사당 △광화문 일대 등에 배치될 병력과 장비 수효도 정해 두었다. 이렇게 해서 서울에 투입될 총 전투력은 △탱크 200여대 △장갑차 550여대 △병력 4,800여명 △특전사 1,400여 명 등으로 잡고 있다.

기무사 계엄령 문건. ⓒYTN

그런 가운데 최근에는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2016년 10월말 광화문에 촛불시위가 시작되자 박근혜 청와대가 먼저 계엄령 선포를 검토했다는 사실이다. 일명 ‘희망계획’이라는 이름의 이 문건은 당시 국가안보실이 작성했다고 청와대 국방비서관실의 한 관계자가 진술한 것으로 군·경 합동수사단이 밝혔다.

이 문건에도 유사시 계엄사령관은 합참의장이 아닌 육참총장이 맡는 것으로 돼 있어 기무사의 문건과 동일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합수단은 청와대의 ‘희망계획’ 문건이 작성된 경위를 다각적으로 확인하는 한편 두 문건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만약 청와대의 문건이 기무사 문건 보다 먼저 작성된 것이라면 청와대가 촛불집회 시작 때부터 이미 계엄선포를 계획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그럴 경우 합수단은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불러 조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합수단은 청와대의 ‘희망계획’ 문건이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돼 현재 국가기록원에 가 있기 때문에 법원의 영장을 받아 반드시 열람할 계획이다. 현행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또는 관할 고법원장이 영장을 발부하면 사본제작이나 열람이 허용된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그 진위가 가려질 것이다.

지난 5월부터 기무사개혁위원회 위원장으로 안보지원사 출범의 산파역을 맡았던 장영달(전 국회국방위원장) 우석대 총장은 “이번 안보지원사 출범이 전군에 활력소가 되어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국방의 선진 정보 서비스 부대로 기능하기를 바란다”며 기대감을 표출했다. 과거의 불명예를 말끔히 씻고, 국민에게 친절하고 군에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없어서는 안 될 부대로 거듭나기를 모든 국민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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